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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회사원으로 9년 가까이 살다 정치 영역에 뒤늦게 발을 들였다. 회사 다니던 시절, 자주 듣던 '성차별 발언'이 있다.

"요즘 아가씨들은 큰일이야. 아이를 안 낳아. 나라가 큰일나게 생겼는데."
나 : "네, 그러면 육아휴직 쓰겠습니다."
"아이고, 요즘 아가씨들은 다 받아먹으려고 해서 (휴직) 큰일이야."
나 : "네, 그럼 출산하지 않고 일 하겠습니다"
"세상에, 요즘 아가씨들은 아이를 안 낳아서 큰일이야"


벗어날 수 없는 무한루프가 도는 신기루를 경험했다.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 20대 후반 이후 여성 대부분이 한 번쯤은 듣는 말이리라 확신한다.

직장에서 듣던 성차별 발언, 국회에서도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은 지난해 10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은 지난해 10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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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예전에 듣던 성차별 발언을 들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법사위 청문회에서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울산 중구)이 한 말이다. 이미 기사화가 많이 돼 해당 발언을 세세하게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의 발언 한 마디로 대신한다.

정갑윤 : "출산율이 결국은 우리나라를 말아먹습니다. 우리 후보자 정말 훌륭한 분이에요. 그것도 갖췄으면 정말 오늘 정말 100점짜리 후보자다."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생각하고, 낮아지는 출산율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출산하지 않는 여성이 원인이라는 전근대적 인식 수준이 보인다. 같은 날, 같은 당 박성중 의원은 최기영 과기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아내도 관리하지 못하는"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아직 어느 국회의원에게 여성이라는 국민은 '남편에게 관리 받을' 2등 시민의 존재인가보다.

고질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호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우먼 페스타에서 당원들이 무대 위에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 춤을 춰 논란을 일으켰다.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호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우먼 페스타에서 당원들이 무대 위에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 춤을 춰 논란을 일으켰다.
ⓒ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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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윤 의원은 일단 단어부터 똑바로 쓰시라. 미혼이 아니라 '비혼'이다. 출산율이 아니라 '출생율'이다. 이는 정갑윤 의원의 성차별 발언을 다루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비혼 후보자'라는 단어를 쓴 기사 제목은 없었다. 일상에서도 만연한 성차별을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에게서 들어야 할 때, 정치혐오와 무력감은 다시금 고개를 든다.

젠더 의식을 차치하더라도 정갑윤 의원에게 안타까운 것은 국민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출'산'율이라고 생각하면, 왜 출산율이 낮은가를 국민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공감하고, 구조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최소한 입법부 선출직 공무원의 기본 자질 아닐까. 출산의 주체를 여성으로 한정하고 여성이 할 일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남탓'으로 돌리는 단순·한심한 사고 수준은 다른 사회적 약자 문제에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물론 정갑윤 의원은 '왜 하필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속으로 볼멘소리 할 수도 있다. 지난 4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윤한홍 한국당 의원이 유방암 수술을 받은 병원과 일시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같은 당 김기선 의원은 초혼·재혼의 실제 결혼 날짜를 제출하라고 했다.

언제까지 청문회에서 여성 후보자가 출산과 육아, 결혼으로 자질이 아닌 '신상이 털리는' 모습을 보아야 할까. 무엇을 검증하는지 알 수 없는 청문회 덕분에 한국당 의원들의 수준을 검증할 기회는 얻었다고 감사해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청문회에서 성차별 발언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한국당에 비치는 모습이 있다. 얼마전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춤을 춘 장기자랑으로 물의를 일으킨 한국당의 여성 당원 캠프를 봐도,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는 단발성 일탈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당이 젠더를 어떻게 바라보고 당론 차원의 지향점을 두는지, 젠더에 관한 당 내 규약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여실히 보여진다고 생각한다. 엉덩이춤과 같은 기획이 사전에 스크린되지 않고 여성 당원만을 상대로 하는 행사에 문제없이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은 당 내부에서조차 성평등 문화를 가져올 시스템, 인식의 지평이 부실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신 물어드립니다... 의원님, 아직 경찰 출석 안 하셨죠?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2일 오전 열린 국회 정무위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자료 제출 요구 발언을 듣고 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2일 오전 열린 국회 정무위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자료 제출 요구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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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정갑윤 의원이 '출산율이 나라 말아먹는다'고 한 발언에 조성욱 후보자가 보였던 난감한 표정은 예전에 내가 성차별 발언을 들었을 때의 그것과 꼭 같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지만 할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차선으로 선택하는 당황스러운 감정의 발로.

능력과 자질이 아닌 결혼, 출산 타령 청문회를 받은 조성욱 후보자에게 감정이입이 돼서일까. "아직 결혼 안 하셨죠?"라고 물은 정갑윤 의원에게 대신 되묻는다.
 
의원님, 아직 경찰에 출석 안 하셨죠? 패스트트랙 정국 때 국회법 위반 혐의로 경찰 소환 통보 받았는데, 세 번이나 불응하셨잖아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병폐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국회의원들이 몸으로 법안 처리 진행 막고, 현행법 무시하는 일입니다. 수준 떨어지는 국회의원들이 결국 나라 말아먹습니다. 본인의 안위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가영씨는 정의당 여성본부 차장입니다.


태그:#인사청문회, #정갑윤, #자유한국당, #조성욱,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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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까비가 나보다 먼저 천국에 가면 다른 멍냥이들과 아주 즐겁게 지내다, 뒤따른 우리 가족을 맞아주길 바라는, 모든 존재의 평등을 꿈꾸는 꼬꼬마 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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