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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에 와서 당신과 저의 따뜻하고 행복한 삶, 행복한 대화, 삶 속에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사소한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화를 견딜 수 없어 하고, 그럴 때마다 이혼을 말합니다. 당신처럼 행동하면 어느 누가 서로 편하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겠어요. - 2007년 살해당한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 후안마이이ㅡ 베트남어 편지 중.
 

2007년 6월, 후안마이라는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이 결혼 한 달 만에 남편에게 맞아 갈비뼈 열여덟 개가 부러진 채 사망한다. 12년이 지난 현재 결혼이주여성들에 대한 가정 폭력 사건은 줄었을까. 안타깝게도 공포 소설 같은 현실이 여전히 펼쳐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결혼이주 여성 체류실태>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42.1%가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한국 국적 가정폭력 비율 12.1%의 3. 5배에 달하는 수치다. 남편에게 살해당한 결혼이주 여성의 수는 20명이 넘는다. 결혼이주 여성들은 10명에 4명꼴로 가정 폭력을 경험하지만 그 중 30% 이상이 가정 폭력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카니발 필리핀 결혼 이주 여성과 그녀의 딸이 겪는 시련을 형상화한 소설
▲ 카니발 필리핀 결혼 이주 여성과 그녀의 딸이 겪는 시련을 형상화한 소설
ⓒ 나무옆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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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진의 장편소설 <카니발>(나무옆의자)는 강박장애 딸의 입을 통해 드러내는 결혼 이주 여성이 겪는 가정폭력, 남편의 아내 살해, 다문화 가정 자녀에 대한 편견과 왕따 등 다문화 가정의 소외와 아픔을 다룬 작품이다.

소설은 필리핀 엄마가 개 도살을 직업으로 살아오던 아버지에게 동물을 도축하듯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딸의 고백과 엄마의 일기 형식으로 펼쳐진다. 화자인 예슬이는 피부색으로 인한 왕따로 강박장애를 동반한 외설틱과 동어반복틱을 앓는 투렛증후군 환자다. 화자는 현란한 욕과 말의 잔치로 결혼 이주여성과  이주 여성 자녀가 겪는 아픔을 토로한다.
 
엄만, 한국에,  한국에 오지 말아야 했죠. 엄마는 한국에 온 게 잘못이에요. 필리핀 네그로스 섬의 작은 마을에서 살았어야 했어요. 그곳에서 계속 살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실은 고향에서 살 수도 없었죠. 그게 문제였어요.

그 집안에는 아들 하나에 딸이 일곱이었고, 할배는 무능해 돈을 못 벌고, 땅조차 없어 농사도 지을 수 없었어요. 기껏 한다는 일이 돼지 사육이었죠. 소는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했고요. 유일한 벌이가 사탕수수 농장 인부였지만 일거리가 없어 노는 날이 더 많았죠. - 18쪽
 
60~70년대 한국의 농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기 땅 한 평 갖지 못한 빈농의 딸들은 남동생이나 오빠의 학업을 위해, 혹은 가족의 배고픔을 덜어주기 위해 도시에 나와 식모살이를 하거나 공장의 여공으로 젊음을 희생하며 집으로 돈을 송금해야 했다.

대한민국 남녀 성비율이 파괴되고 도시 여성들이 농촌 총각과 결혼을 기피하자 농촌의 남성들은 노총각으로 늙어갔다. 결혼을 하지 못한 농촌의 노총각과 도시 빈민들은 결혼중개업자를 통해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서 아내를 데려온다. 한국의 농촌 여성들이 대한민국 안에서 이동을 했지만 동남아 여성들은 국제적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설탕 가격이 널뛰기하는 통에 늘 불안했죠. 농장에서 일해도 임금은 항상 체불됐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외국으로 떠났어요. 앞집, 옆집, 뒷집 할 것 없이 노동자로, 식모로, 국제결혼으로 타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죠. 갈 수 있는 나라가 있으면 가리지 않고 비행기에 올랐대요. 어디로 가더라도 고향보다 나을 것이라 믿고요. 엄마 가족이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겠어요. -19쪽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을 중퇴한 필리핀 여성 조세피나는 결혼 중개인의 거짓말로 농촌에서 개 사육과 도륙을 하는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노총각과 결혼을 한다. 남편은 오므라이스를 맛있게 먹던 조세피나에게 오무라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준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우둔하고 건장한 근육질 남편과 달리 왜소한 체격에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시동생은 외고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며 뜨개질을 하는 여성스러운 남자다. 시동생은 형수의 불행한 삶을 안타까워하고 형수를 연모한다.

시어머니는 둘째 아들이 처음부터 형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며느리를 구박한다. 시어머니의 부당한 대우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꼬박꼬박 이유를 따져묻는 것이 못마땅한 남편은 폭력을 휘두른다.

어느 날 교회에서 주관하는 외국인 이주자를 위한 진주 쉼터 나들이에 동네 여성들도 동행한다. 오무라의 솔직함은 악소문을 만들어내는 불씨가 되고 소문은 돌고 돌아 시어머니와 남편 귀에 들어가 시동생과 불륜 관계라는 의심을 싹트게 만든다. 둘째 딸이 시동생의 아이일 것이라는 떠도는 소문으로 가정폭력의 강도가 높아지고 결국 살인이라는 비극을 부른다.
 
쉼터 근처에 장이 서서 구경을 하다가 삼촌을 만났다. 집에서와는 달리 삼촌은 얘기를 아주 잘했다. 오랜만에 실컷 영어로 말하니까 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삼촌의 얘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막 떠들었다. 삼촌과 헤어지고 교회 쉼터로 가니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무라는 좋겠다. 잘생긴 시동생이 있어서."
"진짜로 우리 삼촌은 잘생겼지예. 나는 잘생긴 사내가 좋아예."

그러자 사람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나중에 푸상 언니가 그런 소리는 하지 말라고 내게 주의를 주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잘생긴 사내를 잘생겼다고 했는데 뭐가 문제인가? - 77쪽
 
언어로 인한  불통은 결혼 이주 가정이 겪는 가장 큰 난제다. 소설 속에서는 사냥(hunt)과 상해(hurt)를 구분하지 못해 살인을 저지른 남편은 아내의 살점과 뼈를 갈아 돼지에게 먹인다.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어요. 술을 먹었는지 얼굴은 붉은색이었죠. 그의 손에는 개 잡는 몽둥이가 들려 있었어요.
"Don't hurt, Please......"
그녀는 다시 외쳤어요.

" hu..... hunt...... hunting, 사냥하지 말라고?"
그녀는 몸을 떨면서 "Don't hurt." 라고 외쳤죠.

"남편이 개 잡는 백정이라고 ...... 그래서 영어 잘하는 유식한 샘이랑, 절름발이 시동생 몸이랑 붙어묵었어! 공장에 고향 놈들한테까지 가랑이 벌리고 다니고...... 남편이 백정 짓 한다고, 짐승 짓 한다고, 점잖은 놈이랑 붙어묵고, 그것도 모자라 동남아 깜둥이 잡것들과도......"- 225쪽
 
실제로 국제 결혼 가정의 가장 큰 문제가 언어 장벽과 문화의 차이라고 한다. 폐쇄적인 농촌 사회에서 결혼 이주여성의 다른 문화적 행동과 말은 모두 부풀려진 소문이 된다. 

소설 속 동네 주민들은 소문으로 살인을 부르고도 자신들의 삶이 망가질 것을 두려워한다.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은 사람들의 암묵적 침묵과 묵인 하에 없었던 일이 되고 새로운 여성을 아내로 맞이해 결혼하는 날 아내의 살을 먹여 기른 돼지를 잡아 동네 잔치를 치른다. 

소설은 결혼 이주여성의 문제 전반을 풀어낸다. 언어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소통 부재와 폭력, 국제 결혼 자녀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등은 이주노동자 200만 시대에 우리가 넘어서야 할 과제다.

경제력이 낮다고 그 사람들이 열등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 문명이 아닌 야성적 삶에 더 친숙하다해도 그들 역시 고귀한 인격을 지닌 사람이다.
 
"나는 항상 짐승같이 뒹굴고 싶었다. 그렇게 서로를 핥고 만지면서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변태라고 손가락질한다 해도 그런 관계가 즐겁다. 나는 짐승처럼 물고, 빨고, 핥고, 씩씩대고 싶었다. 언제나..... 그러나 나는 짐승이 아니다. 인간처럼 살고 싶다." - 196쪽

덧붙이는 글 | 카니발/ 강희진 장폄소설/ 나무옆의자/13,000원


카니발

강희진 (지은이), 나무옆의자(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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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