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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 무렵 솔 출판사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셋을 재출간했단다. 불현듯 밀쳐 둔 책이 떠오른다. 서재의 책장을 훑는다. 다행히 있다. 그녀의 27년(1918~1941) 삶을 부린 <어느 작가의 일기>다. 당장 내키지 않아도 장차 볼 생각으로 사 둔 거다. 동성애자, 별난 부부관계, 정신 질환, 투신자살 등 가십거리로 유명세를 치른 작가라서. 20세기 전반부에 소설과 비평 영역에서 빼어났던 그녀의 속내를 이제야 들춘다.
 
<어느 작가의 일기>는 버지니아 울프가 스물여섯 권의 공책으로 남긴 방대한 일기를 남편 레너드 울프가 편집한 책이다. 주로 문필 관련 부분만을 추렸기에 사실상 가십거리를 위한 사이다 정보는 없다. 대신 일면식도 없는 그녀의 캐리커처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한 버지니아 울프와 접속할 수 있다. 그녀가 언제 행복한지를, 왜 노심초사하는가를, 정신적 물질적 자립이 피가 마르는 "고역"의 결실임을 공감하게 된다.
 
일단 일기 속 그녀는 놀랍도록 솔직하다. 그 중 인물평은 가차없다. 레너드의 편집 검열을 거친 내용임에도 그렇다. 특히 내 흥미를 끈 건 <율리시즈>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에 관한 그녀의 혹평이다. 그녀보다 먼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소설에 도입해 당시 문단을 뒤흔든 제임스에 대한 놀람과 거부감이 진하다. 홈스쿨링과 독학으로 아웃사이더의 내공을 쌓은 그녀가 굴곡진 그의 삶을 손가락질한 건 뜻밖이다.
 
"<율리시즈>를 다 읽었는데, 이것을 불발탄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천재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급한 종류의 것이다. 이 책은 산만하다. 불쾌한 느낌을 준다. 젠체하기도 한다. 통상적인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의미에서도 천하다. 일급 작가들은 쓴다는 일 그 자체를 존경하는 나머지, 남을 놀라게 하거나, 묘기를 부리거나 하는 따위의 재주는 부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줄곧, 초등학교 풋내기 생각이 났다. 재기와 능력은 충분히 있지만, 자의식 과잉에다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판단이 흐려져서 엉뚱한 짓을 하고, 잘난 체하고, 소란스럽고, 차분한 데가 없고, 선의의 사람들로 하여금 안됐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엄격한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 따름이다. 우리는 아이가 커서 지금처럼 되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조이스는 40살이니 그럴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나는 이 책을 주의 깊게 읽은 것도 아니고, 한 번 읽었을 뿐이다. 알기 어려운 책이다 그러니 틀림없이 내가 이 책의 가치를 부당하게 놓치고 있을 것이다. 무수히 작은 탄환이 날아왔다 다시 튕겨져 나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얼굴 한가운데 치명상을 입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톨스토이처럼. 그러나 조이스를 톨스토이와 비교하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102~103쪽)
 
장차 자신의 새 책을 향할 서평들을 지레 걱정하는 속내, 즉 "비평가들은 씹어 댈지 모르고, 그러면 매상은 줄지 모른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내가 하찮은 존재로 무시당하는 것이다"의 감성과도 어긋나는 동업자 무시다. 어쩌면 그건 모태 상류층인 그녀의 계급의식일 수 있다. 세계의 실상을 전하려는 <율리시즈>의 문체는 런던과 전원을 오가는 쾌적한 삶과 사교계의 의례적 대화에 익숙한 그녀에겐 불순 그 자체일 수도 있으니까.
 
어쨌거나 이후 제임스의 사망 소식까지 전하는 일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공습과 폭격으로 황폐해진 1940년 런던 풍경이 문학적으로 재현돼 있다. 그녀의 일기가 오롯한 작가정신을 엿볼 수 있는 문학적 자산일 뿐만 아니라, 당대의 사회인문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 확인에 참고할 만한 사료적 가치를 띤다는 얘기다. 물론 일기의 절대적인 비중은 동전의 앞뒤처럼 양면성을 지닌 그녀의 글쓰기 내용이 차지한다.
 
그 양면성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그녀의 정체성에 기인한다. 즉 <자기만의 방>에서 주창한 정신적 물질적 자립에 따르는 '행복한 고역'을 수용함이다. 그건 창의적 영감에 절로 빠져든 행복감이 글쓰기를 제대로 끝장내 매상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변질됨을 의미한다. 급기야 글 쓰는 "날마다의 일이 뛰어넘어야 하는 장애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기껍게 선택한 삶일수록 행복한 고역의 순간이 많지 않을까.
 
그녀는 그 장애물경주에서 매번 신기록(신작)을 내 사후 페미니스트의 선구자가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녀에게 천형 같은 두통과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심화시킨다. 고통과 두려움에 치이는 고독한 순간들이 일기에는 수두룩해 그녀가 딱할 정도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적으로 그녀가 부럽다. 무명의 서평가로 시작해 작가로 명성을 얻는 시간 속에 남편 레너드가 함께해서다.
 
레너드 울프는 케임브리지 출신의 젊은 지식인들로 구성된 '블룸즈버리 그룹'에 속한 평론가다. 오빠 덕에 버지니아도 그 그룹의 일원이다. 그는 남녀관계와 거리 먼 그녀의 결혼 제안에 응하고, 출판사를 운영해 외조를 하면서, 정치적 목소리도 활발히 내는 당시 저명인사다. <어느 작가의 일기>에는 레너드의 평가를 듣고 안도하거나 주눅 든 그녀가 보인다. 유서는 그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자살 동기를 암시한다.
 
"내 모든 행복은 당신이 있어 가능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은 한없이 참을성이 있었고, 또 믿을 수 없으리만치 잘해 주셨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누가 나를 구해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었을 거예요. 이제 나에게선 모든 것이 떠나고, 당신이 착했다는 확신만이 남아 있어요. 더 이상 당신의 인생을 망칠 수는 없어요. 나는 어느 두 사람도 우리만큼 행복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해요."(656쪽)
 
누구든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인생에는 불가항력적으로 유무형의 세상이 끼어드는 법이니까. 버지니아 울프 역시 그렇다. 그녀에게는 트라우마를 안긴 가족사가 있고, 평생 따라 다닌 정신 질환이 있다. 그래도 그녀는 자타가 인정하는 출중한 작가가 되었고, 소신대로 제 밥벌이를 했고, 늘 자기편이 돼 준 남편과 살았다. 그녀는, 누구나 자기 인생의 편집자란 관점에서, 들춰볼 만한 괜찮은 책이다.
 
<어느 작가의 일기>를 다시 책장에 넣는다. 돌려 말하기가 일체 없는 솔직함에 대해 박수 치면서. 아울러 꾸준히 문체 변화를 통해 스스로를 실험 공간으로 들이민 그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newcritic21/22)에도 실립니다.


어느 작가의 일기 -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문학

버지니아 울프 (지은이), 박희진 (옮긴이), 이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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