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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2018년 12월 25일 오후 서울크리스마스마켓에서 제로페이로 기부 선물을 구매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8년 12월 25일 오후 서울크리스마스마켓에서 제로페이로 기부 선물을 구매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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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2월 20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제로페이가 도입된 지 벌써 8개월을 맞이했다.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써보자! 제로페이' 등의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 서울의 웬만한 가게 출입문마다 정사각형의 제로페이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제로페이를 잘 사용하고 있을까? 특히, 박원순 시장의 단골집들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로페이를 사용하고 있을까? 지난 8월, '맛집 탐방'을 통해 시사 이슈를 풀어가는 대학생 모임, 초원복집연구회가 그중 몇 곳을 찾았다. 단골 식당은 '2018년 서울시장 업무추진비 결제 내역'을 기준으로 추렸다.

제로페이, 얼마나 사용하고 있을까

초원복집연구회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2018년 서울시장 업무추진비 결제 내역 식당 중 2위를 차지한 S식당이다. 이곳은 불고기 전골을 판매하는데, 서울시청 인근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실제로 초원복집연구회 취재팀이 세 차례 식당을 방문했을 때, 와이셔츠를 입은 직장인들로 붐볐다. 이곳에선 불고기전골을 끓여 고기를 먹은 뒤, 육수를 추가하고 날계란을 까넣어 익혀 먹는다. 사람에 따라 계란을 풀어 고기를 찍어 먹기도 하고, 아예 그대로 계란을 익혀 찜처럼 먹기도 한다. 달콤하고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불고기전골. (자료사진, 위 사진은 기사에 언급된 식당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불고기전골. (자료사진, 위 사진은 기사에 언급된 식당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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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은 훌륭한데, 제로페이 실적은 어떨까? 가게를 나서며 사장님께 제로페이 사용자가 많은지 물었다. "공무원으로 보이는 경우 외엔 많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시청 인근 가게들의 사정은 어떨까. 이번엔 Y식당을 방문했다. 서울의 3대 '한국식 판메밀' 식당이기 때문에 역시 점심시간이면 인근 직장인들로 붐빈다. 취재진 입맛에는 다른 3대 맛집인 M식당에 비해 간장이 다소 짜고 양에 비해 비싼 감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맛은 나쁘지 않았다.

이곳에서 제로페이로 결제하는 손님을 취재 시작 후 처음으로 목격했다. 하지만 손님의 목에 걸린 아이디 카드에는 '중소벤처기업부' 로고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정말 공무원만 제로페이로 결제하고 있는 것일까. 사장님께 더 여쭤보니 "공무원들에게 제로페이 사용 할당량이 있어서 결제하는 경우 외엔 없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취재진이 방문한 다른 프랜차이즈 떡집에서는 "제로페이 결제가 도움이 된다"며 말한 분도 있기는 하다.

마지막으로, 박원순 시장의 또다른 단골집 N식당을 찾았다. 이 식당은 인사동에 있는데, 박 시장이 시민단체 시절부터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러 종종 들렀다는 도시락집이다.

한옥풍 가게에 들어서자 정갈한 분위기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취재진을 맞았다. 안타깝게도 일정이 촉박하여 전통차는 시키지 못했지만(사실 차까지 먹기엔 좀 비쌌다) 식사는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떡갈비 도시락 세트를 시켰다.

주문 후에 조리를 시작하는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음식이 나왔다. 떡갈비와 나물을 비롯한 음식은 대체로 담백하고 정갈했다.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며 이번에도 사장님께 제로페이 사용자가 많은지 여쭈어보았다. 사장님께서는 "한 달에 두어 명 정도가 사용하고 있"고, "가게 입장에서 수수료가 안 붙어서 좋긴 한데, 소비자들이 번거로워서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제로페이 결제액 증가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제로페이 운영 실적
  제로페이 운영 실적
ⓒ 초원복집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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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제로페이 사용률이 저조하다는 여론을 뒷받침하는 통계가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아래 중기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7월 기준 가맹점 한 곳 당 제로페이 결제는 평균적으로 단 한 차례(월 1.23회) 이뤄지고 있다. 제로페이가 여전히 시장에서 보편적인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반면 서울시와 정부는 제로페이 결제액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제로페이를 통한 정부 기관의 업무추진비 결제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 온전한 의미의 확산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초원복집연구회가 서울시 정보소통광장을 통해 서울시 본청과 사업소의 월별 업무추진비를 분석한 결과, 유관기관의 결제액이 5%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4월 0.0%, 5월 0.9%, 6월 5.3%, 7월에는 일평균 결제액 2억3854만 원 중 5.5%인 1301만 원이 서울시와 유관기관이 업무추진비로 결제한 것이다.

또한, 제로페이 사용 확산을 위해 홍보비 등의 명목으로 많은 세금이 쓰인다는 것도 확인했다. 2018년 11월부터 12월까지 서울시는 홍보비 명목으로 총 34억 원을 사용했으며, 2019년 서울시(38억 원)와 중기부(60억 원)는 98억 원의 홍보예산을 책정했다.

또 2019년 중기부는 추경 예산안에 제로페이 가맹 인프라 확대를 위해 50억 원, 홍보비로 26억 원을 반영했다. 그나마 지난 8월 2일 추경 심사에서 제로페이 예산이 전액 삭감돼 더 이상의 지출은 막을 수 있었다. 7월 말 기준 누적 결제액이 213억 원에 불과한 제로페이가 투입 대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제로페이 확산이 저조하자 서울시와 정부는 일부 공공지출을 제로페이로 집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업무추진비 일부를 제로페이로 사용하도록 했으며, 특별교부금 300억 원을 각 자치구의 제로페이 실적에 따라 배분하기로 했다가 공무원노조의 반발로 철회했다. 정부 역시 지난 5월 지방 공공기관의 제로페이 사용을 위해 예산집행기준을 개정하고, 국무회의에서 지방회계법 시행령을 개정해 제로페이도 공금 결제 수단에 포함했다.

제로페이 왜 환영받지 못할까... "미비한 혜택-이용 불편"

왜 사람들은 제로페이를 사용하지 않을까? 원인은 명백하다. 제로페이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먼저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보다 혜택이 빈약하다. 제로페이가 내세우는 주된 장점은 연말 소득공제 40%와 서울식물원 30% 할인 등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혜택 정도다. 지자체의 한시적인 캐시백이나, 네이버페이 적립 등이 소비자 입장에서 그나마 의미 있는 혜택이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는 사용액에 대해 크고 작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소비자가 굳이 제로페이를 사용할 경제적 유인이 부족하다. 심지어 소득공제 혜택도 연소득의 25%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또, 제로페이 이용을 통한 '수수료 절감' 효과에 대한 소비자의 공감이 부족하다. 최근 '자영업의 위기'가 불거졌을 때, 카드 수수료가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됐다. 사람들은 영세 자영업자가 대형 가맹점보다 카드 수수료로 인한 부담을 크게 느낀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신용카드 우대수수료 혜택 도입 등을 통해 그 부담이 일부 경감됐음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카드 수수료보다는 최저임금 인상과 핫플레이스 중심의 임대료 상승이 더 주요한 원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자영업자가 카드 수수료 부담 때문에 어려우므로 제로페이를 사용해달라'는 정부의 호소는 다소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방기홍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상임회장 등이 지난 1월 24일 ‘제로페이 국민운동본부 발족식’에 참석해 제로페이 활성화에 적극 동참하기로 결의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박원순-소상공인단체, 제로페이 활성화 위해 결의 박원순 서울시장, 방기홍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상임회장 등이 지난 1월 24일 ‘제로페이 국민운동본부 발족식’에 참석해 제로페이 활성화에 적극 동참하기로 결의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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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 이용이 불편하다는 것도 핵심적인 문제다. 취재진이 방문했던 식당의 한 사장님에게 이 부분에 대해 물어보니 "결제완료 메시지를 매번 확인해야 해서 바쁜 식당 입장에서 번거롭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제로페이를 써보니 결제 자체는 빨랐지만, 업주가 결제 메시지를 직접 확인해야 하는 탓에 오히려 번거로워 보였다.

이는 비단 업주만 느끼는 단점은 아닌 듯하다. 제로페이를 사용하기 위해선 기존 은행 어플 등에서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결제를 진행하기 위해 바코드나 QR코드 인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계산대에서 바코드, QR코드가 인식되지 않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제로페이가 실제 자영업자들 모두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반응도 있다. 취재진이 만난 업주 중에서는 "영세업자는 혜택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큰 식당에서는 체크카드 수수료율과 비슷해서 큰 의미가 없어서 달갑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제로페이 이용이 활성화 되려면
 

지난 5월 7일 중기부는 <제로페이 기획기사> 보도자료를 통해 제로페이가 '국민 대표 결제 수단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제로페이의 가능성을 금융권에서도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제로페이를 시작으로 금융 혁신도 기대해본다"는 익명의 금융권 인사의 말을 인용했다.

제로페이 도입 8개월에 접어든 지금,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이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선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용자가 누릴 경제적 유인이나 부가서비스를 풍부하게 늘리고, 여타 민간 결제 서비스와의 차별점을 마련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비슷한 글이 초원복집연구회 브런치 등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제로페이, #초원복집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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