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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제목을 보자마자 더럭 겁이 났다. 왠지 책을 펴들면 마음이 너무나 아플 것 같았다. 책은 책꽂이에 한 달 넘게 꽂혀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책장 곁을 지날 때마다 자꾸만 이 책 제목에 눈길이 갔다. 결국 책을 들춰보고야 말았다. 책을 들추자마자 나는 이런 문장을 만났다. 더 이상 책 읽는 것을 미룰 수 없었다.
 
'저렇게 된다'고 어른들이 떠드는 동안 정말로 한 아이가 죽었다. (8쪽)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말에 담긴 폭력성

은유 작가가 서문에 쓴 저 문장에 내가 사로잡혔던 이유는 이 말이 내게도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일 테다. 나의 부모님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공부 못하면 상고 가서 기술이나 배워야 한다"고 하셨고,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을 배달하는 젊은이를 보고 때로는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하셨다.

때문인지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내겐 부끄럽게도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인문계와 실업계가 함께 있는 학교였다. 건물은 달랐지만, 운동장을 공유했고 같은 교복을 입고 다녔다. 종종 운동장에서 실업계 학교 친구들을 마주치곤 했다. 하지만 인문계 학생들과 실업계 학생들은 서로 인사를 건네지 않았고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고등학생의 이미지는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인문계 고등학생이 전부였다.

은유 작가는 '제 몸 써서 정직하게 일하는 노동의 귀함을 설파하기는커녕 한 아이의 삶을 부분 탈취하여 훈육과 통제의 도구로 삼는 행태는 천박하지만, 그런 무지막지한 경고가 극단적 현실로 드러나는 세상은 더없이 참담하다(8쪽)'고 적었다. 그리고 이런 경고가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특성화고 출신' 현장실습생들의 죽음이라며,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현장실습생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2014년 CJ제일제당에서 일하다 부당 노동과 작업장 내 폭력으로 목숨을 끊은 김동준군의 가족들을 만나고, 작업장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민호군의 아버지, 특성화고 담당 선생님과 재학생 및 졸업생의 목소리를 듣는다.

작가가 적어 내려간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종종 식은땀이 나곤 했다.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편견은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 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10쪽)는 작가의 표현처럼 특성화고 학생들을 인식조차 하지 않고 살아온 나 역시 폭력에 가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은유 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돌베개, 2019)
 은유 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돌베개, 2019)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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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하는 어른들

책 속엔 나처럼 회피하려는 어른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목숨을 잃은 사고 현장엔 분명 어른들이 있었는데도 아무도 고등학교 3학년인 현장실습생들을 돌보지 않았다. 오히려 적은 월급을 주어도 되는 현장실습생 신분을 악용해 과다 노동을 시켰다.

동시에 사회에 적응하라는 명목으로 아직은 여린 학생들에게 술, 담배를 강요한다. 그러다 생명을 포기하는 일이 발생해도, 오히려 모질게 버텨내지 못했다는 비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회사 측은 '돈'을 앞세워 아이들의 죽음을 '없던 일'로 만들기에 급급할 뿐이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 책임은 모두가 회피한다. 책 속 부모들의 절규처럼 그저 아이를 특성화고에 보낸 부모만이 죄인일 뿐이다.

어른들은 슬픔을 나눠지는 것 역시 회피한다. 김동준군의 어머니 강석경씨는 아들을 먼저 보낸 후 사람들이 "석경아 너 힘들잖아, 이야기하지 마"라며 아들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했던 일들이 오히려 서운했다고 털어 놓는다.
 
 "살고 죽고 아프고 병들고... 생로병사도 삶이에요. 애들 결혼이나 연애만 삶이 아니고 아프고 죽는 것도 삶이고 그 과정을 이기는 것도 삶인데. 왜 그런 얘기를 편안하게 못 들어 넘길까. 그게 서운해요." (60쪽)

"그런데 그 사람도 실은 같이 가슴 아파하기 싫은 거예요. 보통 사람들은 감정이 전염이 돼요. 기쁜 것도 전염, 슬픈 것도 전염, 슬픈 감정을 거부하는 거지." (74쪽)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죽음'을 담은 책 앞에서 한동안 주저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자신을 지키는 법' 가르쳐주지 못한 어른들의 후회

인터뷰에 응한 모든 어른들이 아픔을 견뎌내며 깨달은 바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지키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였다. 비극을 겪은 아이들은 모두 권위에 순종하고 부당해도 참고 견디다 극한 상황에 이르게 됐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할 때 어른들이 해준 말은 '일단 버텨라, 그래도 회사는 가라'는 말이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습 나가서 '힘들다'고 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말 역시 '힘들어도 버텨라'다. 물론, 버티고 있는 아이들의 일자리를 바꿔주는 정도의 개입은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권리를 표현하고 부당한 대우에 대항하는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노동인권 교육 없이 노동시장에 던져지는 아이들은 그래서 참고 또 참으며 버티거나 '단절'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는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두발단속, 복장단속, 신체적 체벌이 당연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던 나 역시 이런 규제에 순종하는 법만 배웠다. 부당한 대우에 대처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아무리 불합리해도 학교는 가야 했고, 선생님 말은 무조건 들어야 했다. 권위에 순종하는 것만이 살아가는 법이라고 배웠다. 결국 한국의 학생들은 자신을 정당하게 지키는 법에 대해서는 전혀 배우지 못한 채 자라나는 것이다.

때문에 아픔을 겪은 책 속의 어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조언한다.
 
"싫으면 하지마. 넌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권리가 있어. 기존의 잣대로 널 재려고 하지마. 그 자가 틀렸을 수도 있어.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넌 자유롭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도 있어. 때론 가족도 너 자신보다 중요하진 않아." (95쪽, 김동준 이모)

"어른 말 듣지 마라. 선생님 말 착하게 잘 들으면 바다에 빠져 죽는다. 회사 가서 윗사람들 말 듣지 마라. 대한민국은 착하고 말 잘 듣는 사람은 죽는 거야." (141쪽, 이민호 아버지)

뭉클했던 건, 이렇게 아픔을 겪고 있는 가족들이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힘을 내 연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작가의 인터뷰를 계기로 김동준군의 가족과 이민호군의 가족이 만났다. 그 후 또 다른 산업재해 피해자인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의 대외적 활동을 계기로 '산업재해 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이 결성됐다.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 가족이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그야말로 역경을 통해 성장을 일궈가는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작가는 가족들의 연대를 바라보며 후지이 다케시의 <무명의 말들> 구절을 인용한다.
 
"유가족들이 계속 싸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피해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해자임을 깨닫고 자신을 가해자로 만든 위치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23쪽)

특성화고 학생들의 존재를 망각한 채 살아오다 이들이 겪은 슬픔을 담은 이 책을 외면하려 했던 나 역시 가해자인지도 모르겠다. 이 위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 자신 먼저 점검해보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은이), 임진실 (사진), 돌베개(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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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