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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명량대첩축제가 9월 27일부터 3일간 해남과 진도 일원에서 열립니다.

'구례 통제영의 출정 결의가 명량대첩 승리의 초석이 되다'라는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이순신의 백의종군로와 수군재건로를 걷고자 합니다.

1597년 9월 위대한 전투인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중이던 4월 26일 구례에 입성했습니다. 온갖 고문으로 피폐해진 몸과 모친을 잃은 찢어지는 마음에도 임금의 명을 받아 백의종군 길에 오른 이순신 장군은 남원에서 권율 도원수가 순천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순천으로 가기 위해 구례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옛길은 남원 외평마을에서 구례 산동으로 이어지는 숙성치를 넘어야 하지만 사유지 문제 등으로 '밤재'로 백의종군로가 조성되었습니다.
 
 남원과 구례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던 밤재
 남원과 구례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던 밤재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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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구례로 입성한 후 100여 일 후인 1597년 8월 중순, 물밀 듯이 쳐들어오던 5만여 명의 왜군은 이곳의 고개(숙성치, 밤재 등)를 넘어 만여 명이 지키던 남원성으로 향하였던 왜군 침입의 길목이기도 한 곳입니다.

예전 남원과 구례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던 밤재를 출발해 본격적으로 백의종군 입성 길을 걸었습니다.
 
 지리산둘레길 산동-주천 구간 중 밤재
 지리산둘레길 산동-주천 구간 중 밤재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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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무더위가 한풀 꺾여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옛길을 걷다 보니 멀리 지리산 능선에 걸린 흰 구름이 마치 백의종군을 위해 구례에 입성하는 이순신 장군을 따뜻하게 맞이했던 구례 사람들의 은근한 정이 느껴집니다. 내리막 옛길을 걸어 구례군 산동면으로 이어진 백의종군로는 걷기 좋은 흙길과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반복되는 지리산둘레길 구간으로 숲이 주는 싱그러움과 시골 풍경이 주는 소박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구례 계척마을 편백나무 숲길
 구례 계척마을 편백나무 숲길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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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를 출발해 초록의 숲길과 피톤치드가 뿜어 나오는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 계척마을 산수유시목지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이곳은 남도이순길 백의종군로가 시작되는 곳으로 이순신 장군의 행적과 성곽 등이 조성되어 있어 '이순신성'이라고 부릅니다.
 
 구례 계척마을 이순신성
 구례 계척마을 이순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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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시목은 1200여 년 전 중국 산둥성 처녀가 구례로 시집을 오면서 가져온 산수유나무가 자라 시목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매년 3월에 열리는 구례 산수유꽃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풍년기원제가 열리는 곳입니다.
 
 구례 산수유시목
 구례 산수유시목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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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척마을을 지나 지리산 능선에 내려앉은 구름을 벗 삼아 느긋하게 걷다 보면 최근 MBN <자연스럽게>가 촬영 중인 현천마을에 도착하는데 마침 촬영 중이어서 조용히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구례 현천마을 현천저수지
 구례 현천마을 현천저수지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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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의 대표적인 산수유마을인 현천마을은 마을 입구의 현천 저수지에 비친 노란 산수유꽃의 반영이 아름다운 마을로 계단식 논인 다랭이논에는 어느새 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벼가 익어가는 구례 현천마을 다랭이논
 벼가 익어가는 구례 현천마을 다랭이논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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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의 백의종군 입성 길은 산동면사무소, 운흥정, 구만저수지 이순신벽화를 지나 구례읍 손인필비각까지 이어집니다. 손인필은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백의종군 중 이순신 장군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인물로 당시 군자감 첨정으로 구례현 주변의 사창(곡식창고)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구례 구만저수지 이순신벽화
 구례 구만저수지 이순신벽화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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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관직을 내려놓은 백의종군 중이었지만 군사, 무기, 군량미 등과 왜군의 움직임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던 장군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으며 가장 힘든 시기에 힘이 되어준 손인필은 장남인 손응남과 함께 이순신 장군을 따라 노량해전에서 순절했습니다.
 
 구례 손인필비각
 구례 손인필비각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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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입성은 고난의 시기에 희망을 갖게 된 결정적인 시기였으며 죄인이었고 관직도 없던 장군을 가장 따뜻하게 맞이한 백성이 바로 이원춘 현감과 손인필을 비롯한 구례의 백성들이었습니다.
 
1597년 4월 26일 흐리고 개지 않았다
일찍 밥을 먹고 길에 올라 구례현에 이르니 금오랑(도사, 이사빈)이 먼저 와 있었다. 손인필의 집에 거처를 정하였더니, 고을의 현감(이원춘)이 급히 보러 나와서 매우 정성껏 대접하였다. 금오랑도 와서 만났다. 내가 현감을 시켜 금오랑에게 술 마시기를 권하게 했더니, 현감이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밤에 앉아 있으니 비통함을 어찌 말로 다하랴.

'고을의 현감은 병 때문에 나오지 않았다.', '종을 보내고...',' 사람을 보내어 문안했다.'등의 기록과 비교하면 구례 사람들의 대접은 매우 이례적으로 정성이 담긴 대접이었습니다. 이러한 구례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와 손인필 등의 디양한 정보 제공은 훗날 재기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구례 #백의종군로 #명량대첩축제 #손인필비각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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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를 읽어주는 윤서아빠 임세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