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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이었던 고 이한빛PD의 동생 이한솔이 쓴 책 <가장 보통의 드라마 - 드라마 제작의 슬픈 보고서>에 대한 엄마의 이야기 연작입니다[편집자말]
 한빛센터 이한솔 이사.
 한빛센터 이한솔 이사.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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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이는 책 <가장 보통의 드라마>에서 형 한빛 PD의 유지를 이어받아 방송 노동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슬픔을 딛고 한빛아빠와 한솔이가 이 일에 매달린 이유는 방송사 및 미디어 산업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및 취약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복지 증진 그리고 낡은 방송제작환경 개선을 위해서였다. 사람을 위로하고 기쁘게 만드는 콘텐츠를 제작하지만 정작 존중받지 못하고 소외된 카메라 뒤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카메라 뒤에 종사하는 사람들, 방송 제작과 관련해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의 삶을 사실 그대로 노출했고 고발했다. 지금까지 영상의 앞면만 보아온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사실에 놀랐고 슬펐다. 지금의 이 시스템이 지속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방송 제작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도 책을 통해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방송 관련 실상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이 책을 읽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드라마를 찍는 누군가가 현장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다치거나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우리 가족이 겪은 끔찍한 순간이 다른 누군가와 가족에게 일어나선 안 된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붙잡았다.

책에는 방송제작 현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위로하고 지지하기 위한 따뜻함도 녹아 있었다. 곳곳의 내용에 한빛을, 수많은 한빛을 대입하면서 위로받았기 때문이다. 책을 쓴 한솔이가 고마웠다. 방송제작현장과 카메라 뒤에 있는 많은 이한빛들이 이 책으로 격려도 받고 치유도 되었으면 좋겠다.

결국 이 책의 주인공들은 '청년'이었다

결국 이 책의 주인공들은 '청년'이었다. 한솔은 '청년'을 이야기하면서 민주시민의식에 대해 조심스럽게 자신의 견해를 펼쳤다. 정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한솔이가 그동안 나름대로 민주시민의식에 대한 사회학적 고민과 실천이 있었다는 것을. 아울러 민주시민교육을 통한 시민적 역량에 대한 절실함을 항상 주장하고 있음도.

2013년 여름, 한솔이가 처음 대학 총학생회장 후보에 출마한다고 하자 겁부터 났다. 툭 던진 말이기에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회장 경험이 있지만 대학 총학생회장과는 다르지 않은가? 군사독재 시절 학생회장들의 수난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기에 두려웠다.

'지금 세상도 옛날과 다를 바 없는데 그러다 일 당하면 어떻게 해? 취업하기도 힘들다는데 공부나 하지' 하니 한솔은 "문제점이 보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잖아요. 어차피 누군가는 나서야 개선이 돼요"라고 답했다. '너 말고도 똑똑하고 잘 난 애들이 얼마나 많을 텐데 왜 너야? 회장 같은 건 여유 있거나 의식이 확실한 애들이 하는 것 아냐'라고 말하려다 꾹 참았다.

'엄마는 네가 대학 생활을 즐겁고 평범하게 보냈으면 좋겠어. 공부를 통해 학문의 희열을 느끼고 해외 배낭여행도 하며 견문을 넓히고 연애도 하고. 대학 시절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데. 사회 나가봐. 아무 것도 못해. 네가 인생을 잘 몰라서 그래' 하려다가 또 입을 닫았다. 한솔 생각이 옳은 데 무슨 할 말이 있으랴? 가슴은 답답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불안해서 '너도 흔히 말하는 운동권이니? 정치사회 문제도 관여하는 거야'라고 묻자 한솔은 "그런 개념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학내상황이나 우리 청년들의 고민도 함께 힘을 모아야 하니까 나서는 거예요"라고 했다.

나중에 학생회 친구들과 친해진 후 "너희는 어디에 속했어? 운동권? 비권?"하고 물었다. "어머니, 저희는 그때 학생이자 학생회로서 할 수 있는 운동과 활동을 했어요"라고 한 친구가 답하자 모두 "맞아요. 어머님" 하며 한바탕 웃었다. 그들의 젊음이 눈부셔 가슴이 울컥했다.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후 한솔은 휴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건 또 뭐지? 학생회 활동 때문에 1년을 유예한다니? 어리석은 것 아닌가?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과 미리 얘기했었어요. '당선이 되면 학생회 활동에 전념하자, 진정성 있는 실천을 통해 최선을 다해보자'고 했어요. 친구들도 한 학기 휴학하기로 했어요."

같이 힘들게 뛰어도 공로는 회장 몫일 텐데 아이들은 억울하지 않을까? 직책을 갖고도 학교에 다닐 수 있을 텐데? 이런 게 의리인가? 동지의식인가? 내 얄팍한 상식으로는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이후 그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젊은 그들에게 배운 것은 아름다운 공동체 의식,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그래. 한솔아 열심히 해. 엄마는 아무 도움도 못 주겠지만 너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옳은 일이니 잘 되도록 기도할게"하고 격려하며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작은 불안감을 씻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수많은 한빛들의 이야기

지금은 이런 내가 가증스럽다. 한심하다. 가치의 정의도 모르면서 어렸을 때부터 두 아이에게 가치 있는 삶을 강조했던 것을 후회한다. 이런 나의 태도가 한빛을 힘들게 했겠지. 세상일은 참 묘했다. 학생회 활동을 같이 했던 한솔 친구들은 한빛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함께해주었다. 그들은 한빛이 살아가고자 했던 가치를 존중하고 그 가치를 살려내며 회사의 사과를 받아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설립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취업 준비 하기에도 벅찰 텐데 한솔의 친구들은 자주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귀한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했다. 나에게는 그들이 모두 한빛이고 한솔이기에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카페가 문 닫는 시간까지 협의하고 다시 날짜를 잡고 헤어지는 '청년'들을 보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고맙고 고마웠다. 이 빚을 어떻게 갚을까? 갚을 수는 있으려나?

한솔이가 말한 것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수많은 이한빛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비추는 하나의 빛으로 함께할 마음이 든다면 많은 사람이 이 책에 담겨 있는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카메라 뒤에 가려진 이들에게 보내는 힘찬 응원이기도 하니까.

덧붙이는 글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홈페이지에도 탑재할 예정입니다.


가장 보통의 드라마 - 드라마 제작의 슬픈 보고서

이한솔 (지은이), 필로소픽(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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