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던 반담표 영화, 재미를 보장하는 킥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특정 배우의 작품에 꽂히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우연히 혹은 추천을 받아 작품을 보다가 주인공의 매력에 흠뻑 빠져 그 배우가 나오는 다른 작품을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경우다. 과거 군대 선임 같은 경우 '목이 긴 여성'을 이상형이라고 습관처럼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할리우드 스타 기네스 팰트로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 그녀가 나오는 영화라면 닥치는 대로 찾아보며 광팬 같은 기세를 드러낸 바 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장르라고해도 팰트로가 나온다 싶으면 가리지 않고 봤다.

그래서 스타 시스템이 필요하고, 영화계에서 검증된 배우 혹은 개성 있는 연기자를 쓰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고정된 팬 층이 있는 배우가 등장할 경우 일부러라도 영화를 찾아볼 팬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회에서 학창시절 성룡, 이연걸 영화를 믿고 봤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군 시절 전후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작만 나왔다 하면 챙겨보는 배우들이 있었다. 장클로드 반담, 니콜라스 케이지 등이 바로 그들이다.
 
 장클로드 반담은 자신의 출세작 <킥복서 어벤져>의 리메이크 작품에서는 주인공을 지도하는 스승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장클로드 반담은 자신의 출세작 <킥복서 어벤져>의 리메이크 작품에서는 주인공을 지도하는 스승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 영화공간

 
반담은 나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를 보냈던 또래 남자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국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엄밀히 따졌을 때 톱스타라기보다는 다작형 액션배우였지만 내놓는 작품마다 기본 이상은 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나 주변 친구들은 반담영화라면 가리지 않고 봤다. 비디오 테이프를 빌릴 때 줄거리를 유심히 보던 동네형도 반담 영화만큼은 무조건 챙겼던 기억이 안다.

반담은 이소룡(李小龍)의 뒤를 이어 세계에 발차기 열풍을 몰고 온 주인공이다. 이소룡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지만 한시대 발차기 전문배우로서 확실한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발레와 가라데를 통해 다져진 탄탄한 몸을 자랑했던 그는 유연한 다리 찢기와 일명 '헬리콥터 킥'이라 불리는 360도 공중회전 돌려 차기를 통해 스크린 속에서 수많은 악당들을 때려눕혔다.

반담 매니아가 된 시작은 <킥복서 어벤져>를 보게 되면서부터이다. 무에타이 본고장 태국을 찾은 미국 킥복싱 챔피언 에릭은 현지 강자 통 포에게 무참하게 패배를 당하고 충격으로 장애까지 얻게 된다. 동생인 커트는 은둔하고 있던 고수를 찾아가 뼈를 깎는 수련 속에서 무에타이를 수련하고 결국 통 포를 꺾고 복수에 성공한다.

하늘을 나는 무협영화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어벤져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근육질 남성들이 무에타이로 대결하는 실전 액션은 무협과는 또 다른 재미가 느껴졌다.

어벤져는 이후 2016년, 2018년 또 다른 버전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2016년 판에서는 전 WWE 챔피언인 데이브 바티스타가 통 포 역으로 열연했으며 케인 벨라스케즈, 조르주 생 피에르, 파브리시오 베우둠, 지나 카라노 등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로 파이터들이 조연으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2018년 작품에서는 마이크 타이슨이 등장해 존재감을 뽐낸다.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반담이 주인공을 수련시켜주는 스승으로 등장한다.

다작 액션스타답게 반담은 정말 많은 영화를 찍었다. 앞서 언급한 어벤져를 비롯 비슷한 느낌의 격투 배틀물 <투혼> 그리고 <블랙 이글>, <사이보그>, <지옥의 반담>, <이탈자>, <더블반담>, <유니버셜 솔저1·2·3·4>, <탈주자>, <하드 타켓>, <스트리트 파이터>, <타입캅>, <서든 데쓰>, <맥시멈 리스크>, <퀘스트>, <더블팀>, <넉오프>, <리전에어>, <리플리컨트>, <웨이크 오브 데쓰>, <식스블릿츠: 분노의 추적>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반담 영화를 즐겨봤던 이유는 성룡, 이연걸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배경, 색깔은 조금씩 다르지만 특유의 무술액션을 통해 기본적인 재미를 제공하는지라 모든 작품이 무난하게 볼 만했다. 킬링타임용 영화로서 아주 좋았다. 최근 들어 부쩍 늙어버린 반담의 모습 속에서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는 생각도 든다.
 
 스티븐 시걸은 이동준 주연의 <클레멘타인>에 출연하면서 화제가 되기도했다.

스티븐 시걸은 이동준 주연의 <클레멘타인>에 출연하면서 화제가 되기도했다. ⓒ 엔터모드

 
<더 록> 그리고 니콜라스 케이지
 
당시 반담표 영화에 빠져들었던 또래 남자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다름 아닌 스티븐 시걸이다. 반담이 발차기로 주목을 받았다면, 스티븐 시걸은 관절기로 명성을 떨쳤다.

193cm의 장신으로 공수도, 아이키도 등 일본 정통무술의 달인으로 유명한 시걸은 화려한 발차기와 과장된 액션이 주를 이루던 시절에도 짧고 간결한 타격과 실용적인 관절기 등을 고집하는 등 수십 년째 그만의 스타일로 팬들에게 어필해왔다. 대전 격투게임 <용호의 권>과 <더 킹 오브 파이터즈(이하 KOF)>에 등장하는 로버트 가르시아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형사 니코>, <복수무정1·2>, <죽음의 표적>, <언더 씨즈1·2>, <글리머 맨>, <파이널 디씨전>, <하프 패스트 데드>, <피스톨 휩트>, <플라이트 오브 퓨리>, <어게인스트 더 다크>, <본 투 레이즈 헬>, <리벤지>, <비밀요원>, <F.O.E.: 에프.오.이>, <거트샷 스트레이트>, <앱솔루션> 등에서 특유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2004년에는 한국영화 <클레멘타인>에서 이동준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시걸 역시 반담 못지않은 액션배우로 명성을 떨쳤지만 개인적인 선호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반담 같은 경우 초반에는 상대에게 당하다가 이후 각성하여 역전승으로 마무리 짓는 패턴이 많았다. 초반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안겨주다가 마지막 순간 극도의 몰입감 속에서 짜릿한 통쾌함을 느끼게 해줬다.

당시에 유행하던 전형적인 액션히어로의 공식을 따랐다. 반면 시걸은 일방적으로 상대를 두들겨 패고 던지는 액션이 주가 되었던지라 상대적 긴장감이 덜했다. 외려 악당이 불쌍하게 느껴져 악당을 응원(?)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군입대 전까지의 나는 군대가 주가 되는 액션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군에 있다는 소속감 때문이었을까. 복무 시절 당시 그러한 장르에 흠뻑 빠진 적이 있다. 뭔가 군복만 봐도 남 같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유달리 군 관련 영화가 집중이 잘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군대 영화를 보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힘을 얻거나 파이팅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1996년작 <더 록(The Rock)>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1996년작 <더 록(The Rock)>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모션 픽처스

 
데미 무어 주연의 <지. 아이. 제인(G.I. Jane)>을 통해 발동이 걸렸던 군 액션 영화는 이후 마이클 베이 감독의 1996년작 <더 록(The Rock)>에서 절정에 달했다. 숀 코너리, 니콜라스 케이즈, 마이클 빈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과 화려한 액션이 압권이었다. 특히 군인이었던 나에게 크게 다가왔던 것은 생화학무기였다.

생화학무기의 위험성과 이에 대처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잠시도 영화에서 눈을 떼 지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 생화학무기 전문가 스탠리 굿스피드 역할을 했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명연기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싸움 같은 것은 제대로 할 줄 모르는 평범한 과학자가 인간병기 수준의 군인들에 맞서서 끝내 엄청난 사건을 종결까지 시켜버리는 활약상은 몇 번을 다시 봐도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영화의 영향이었을까. 이후 한참동안 나는 케이지의 영화를 일부러 찾아봤다. 성룡, 이연걸, 반담 등의 전문 액션배우와 달리 영화를 찍는 소재가 매우 다양한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얼떨결에 꽂혀버린 케이스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시티 오브 엔젤>, <콘 에어>, <페이스 오프>, <윈드 토커>, <내셔널 트레져>, <고스트 라이더1·2>, <시즌 오브 더 위치: 마녀 호송단>, <스네이크 아이>, <8미리> 등 정말 고르게 봤다.

어찌보면 케이지는 영화를 보는 나의 시각을 넓게 해준 배우가 아닌가 싶다. 액션 그것도 무술 액션에 집중하던 당시, 케이지 덕분에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게 됐고 그 결과 '물리적으로 싸우지 않는 영화도 재미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됐다.

케이지의 1999년작 미스터리 스릴러 <8미리(8MM)>는 지금도 후반부 대사가 떠오를 만큼 인상 깊었던 영화다. 한 사설탐정이 금고 속에 은밀하게 보관되어 있던 8미리 필름의 정체를 추격하는 내용인데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충격적인 내용이 많았다. 특히 어린 소녀를 무참하게 죽이고 그 과정을 스너프 필름으로 만든 괴한의 대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사설탐정 역으로 나온 케이지는 괴한에게 "왜 소녀를 죽이고 그 장면을 영상으로까지 담았느냐?"고 묻는다. 그에 대해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주변의 평판까지 좋은) 괴한은 "괴물이라도 기대했나? 난 학대 받고 자라지 않았어.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효자로 소문났어. 난 원래 이런 놈이야. 다른 이유 같은건 없어. 사연 같은 건 없다고. 내가 그런 짓을 좋아하기 때문이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악당은 특별하다는 영화 속 편견을 무참하게 깨버린 대사였던지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

케이지로 인해 액션 편중화에서 벗어난 나는 이후 <포레스트 검프>, <타이타닉>, <중경삼림(重慶森林)> 등 수작으로 꼽히던 작품들은 물론 맥 라이언으로 대표되던 로맨틱 코미디 장르까지 뒤늦게 두루 경험하며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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