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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외로움'을 들겠다. 세상에 오직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느낌. 강 건너로 화려하고 북적이는 세상이 보이는데 나만 홀로 외딴섬에 고립돼 끝없이 고행을 반복하는 느낌. 다시는 사회에 나가지 못하고 능력(그런 게 있다면) 발휘를 하지 못한 채 마르고 닳도록 다른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죽을 것 같은 느낌. (정아은, <엄마의 독서> 중에서)

두 아이를 낳고 3년 동안 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단 1분도 없었지만 살면서 가장 외로웠고, 시도 때도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정말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이들이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벌게진 얼굴로 작은방에 들어가 온몸을 벅벅 긁으며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아이들이 "응애" 울 때 나도 그 앞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애들 밥 먹이면서도 울고, 설거지하면서도 울고, 화장실에서도 울고.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인 줄 알았을 거다.

전적으로 나에게 의존하는 갓 태어난 어린 존재가 너무 부담스러웠고, 무서웠다. 갑자기 '엄마'가 되어 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아는 게 별로 없었고 삶에 서툴렀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내가 누굴 돌본다는 말인가.

물론 아이들은 사랑스러웠고,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하지만 나는 '엄마' 말고 내 이름으로도 살고 싶었고,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엄마'라는 이름이 나에게는 너무 무거웠다. 단 한 시간만이라도 나를 짓누르는 그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원서 읽기는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
 
 <나를 잃기 싫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정민, 이윤경 지음, 위즈덤하우스(2019)
 <나를 잃기 싫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정민, 이윤경 지음, 위즈덤하우스(2019)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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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파업이야! 지쳤어, 정말!"
버럭 소리를 지른 뒤 그대로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아이가 울어도, 남편이 문을 두드려도 절대 흔들리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침대로 쏙 들어갔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멈춘 곳에 몇 개월 동안 관심을 두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책들이 있었다. (10쪽)

참 부족하고 형편없는 아내, 엄마임을 자각했지만, 계속해서 낮아지는 자존감과 무기력함, 나란 존재의 가벼움을 느낄 때마다 눈물이 났고, 마음껏 공부하고 일하던 과거가 그리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11쪽)

<나를 잃기 싫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정민, 이윤경 두 자매가 함께 원서를 읽고 공부를 하면서 기록한 일상과, 원서를 읽을 때 도움이 될 만한 팁들을 블로그에 연재하며 얻은 경험을 적은 책이다.

책에는 저자가 원서를 읽게 된 계기, 원서를 읽으며 느낀 점, 독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와 공부 방법이 꼼꼼히 적혀 있다. 원서라고 해서 어려운 책 아니라, <이솝 우화>와 같이 아이들과 함께 읽고 공부하기 좋은 책들을 많이 소개했다. 온 가족이 놀이처럼 공부하는 데 도움 될 만한 실용서다.

저자 이정민은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 일리노이공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과학, 금융, 법을 전공했다. 지금은 미 동부 코네티컷 주의 작은 도시에서 남편과 딸아이와 살며, 뉴욕에서 친구들과 작은 로펌을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을 함께 쓴 '리딩 메이트'이자 동생인 이윤경과 블로그에 '리딩으로 익히는 배움 영어'라는 코너를 만들어 연재 중이다.

이 책을 읽다가 저자의 이력을 보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미국에서 18년을 살아온 사람이 새삼스럽게 무슨 영어 공부를? 그것도 미국에서 대학원도 나오고 로펌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영어로 의사소통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도대체 왜?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갸웃했던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가 새삼스럽게 원서를 읽으며 영어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엄마'로만 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이를 낳고 무너져 버린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그에게 필요한 건 '시간'과 '공부'였다. 잠시 아이와 떨어져, 집중하고, 배우고, 느끼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이라도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앞으로 자랄 아이와 더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는 미국에서 18년 동안 살았지만,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나 원어민으로 자랄 터였다. 즉 겉모습은 같은 한국인이지만, 깊은 곳에는 서로 다른 문화를 품고 살아갈 것이었다.

아이는 미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엄마와는 사용하는 어휘부터 생각하는 방식까지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영어를 습득해가는 아이를 보면서, 나중에 아이가 더 자라면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고 한다.
 
나는 아이에게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뿐인 아이와의 대화 단절, 소통의 부재가 발생한다면 부모로서의 방향성마저 상실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토종 한국인인 내가 미국에서 낳고 자란 미국인 딸아이와 친구 같은 사이가 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어볼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온 답은 하나였다.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공부!' (24쪽)

'원서 읽기'는 아이를 낳고 주저앉아 울고 있던 저자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저자는 관심사와 상황이 맞아떨어져 영어 원서 읽기를 선택했지만, 꼭 영어가 아니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그냥 편하게 누워 잠도 자고, 바깥에 나가 싸구려 커피를 한잔 마셔도 좋다. 중요한 건 그 시간만큼은 철저히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할 것. 그래야 미치지 않고 살 수 있다.

나도 두 아이가 모두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두 아이를 모두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침에는 배시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제 좀 살겠다' 싶었다.

한 달 정도는 혼자 있는 시간에 딱히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몸은 조금 편해졌지만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자존감은 계속 바닥이었고,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멍청해지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글을 쓰는 일이었다. 글이라고는 일기 말고는 써본 적이 없으니 책을 읽고 독후감이라도 써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더듬더듬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비록 내가 쓴 글은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워도, 내가 무언가를 집중해서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내 안에서 어떤 에너지가 조금씩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독한 외로움 끝에 찾아온 변화

그럼에도 여전히 무언가 결핍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갈증이었다. 남편과 아이 말고는 대화할 상대가 없었고, 밖에 나가도 만날 사람이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독서모임을 검색해 봤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이런저런 모임들이 참 많았다. 그동안 몰랐을 뿐이다.

처음 모임에 나가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래도 좋았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있다는 것 자체가 상쾌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면서 나는 많이 변했다. 남편은 내가 모임에 나가면서 전보다 훨씬 밝아졌다고,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말한다. 내가 모임에 나가는 저녁에는 남편이 아이들을 돌본다. 남편도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그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말해준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나는 조금 더 잘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나는 늘 아이를 내 인생의 전부라 여기지 않고, 아이에게 엄마로서 한 희생을 보상받으려 하지 않는 것이 건강한 부모와 자식 관계라고 생각해왔다. 그러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아이를 낳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나'부터 되찾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나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없던 시간을 만들어냈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영어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시간을 통해 폭풍처럼 일렁이던 마음이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적어도 원서를 펴들고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기에 나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늘 원서를 펼친다. (85쪽)

이 책의 저자도 말했지만, 역시 자존감을 키우는 데는 '공부'만한 것이 없다. 학생 시절 시험을 위해 억지로 했던 공부 말고,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공부. 몰랐던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그게 얼마나 기쁘고 뿌듯한지 모른다. 요즘 나는 서양미술사 수업을 들으며 새삼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무엇이든 혼자 하기보다는 사람들과 같이하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내 시간을 보내는 지금, 나의 딸들이 전보다 더 예뻐 보인다. 하루 종일 붙어 있던 때보다 화를 덜 내고 자주 안아줘서일까. 딸들도 전보다 더 많이 웃어준다. 거울 속의 나도 예전보다는 조금 더 환해졌다.

아이도 중요하지만 우선 나를 먼저 돌봐야 한다.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의 부록에 실린 '이솝우화 30Days Reading'을 펼쳐 하루에 한 편씩 체크하면서 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일단 뭐라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잃기 싫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 작은 성취감으로 자존감을 높여주는 짬짬이 영어 공부법

이정민, 이윤경 (지은이), 위즈덤하우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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