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약령시 한의약 문화관
 약령시 한의약 문화관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대구의 본래 이름 '달구벌'은 이제 거의 쓰이지 않는다. 프랑스 지리학자 샤를 바라(1842∽1893)가 1888년에 와서 보고 "북경성보다 더 아름답다!"고 찬탄했던 대구읍성도 1906~19077년 친일파 대구군수 박중양 일당에 의해 완전히 파괴됐다.

대구는 3000여 기의 고인돌을 보유해 지구상 가장 많은 청동기 거석문화를 자랑한 고장이었지만 해방 전후 모두 잃고 이제는 100여 기만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호수로 구성된 곳이었지만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그 이미지조차 사라진 삭막한 도시가 되고 말았다.  

대구에서 사라져간 안타까운 역사 문화유산들

달성토성은 서울 풍납토성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대 흙성 축성술을 보여주는 국가 사적인데도 동물원이나 공원으로만 인식되는 안타까운 역사유적이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1905년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그 후에는 동학 토벌을 구실로 군대를 주둔시키기도 했고, 1914년에는 신사까지 설치했다.

해방 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신사는 1966년에야 철거됐고, 대한민국 정부는 토성을 1969년 들어 더욱 현대화된 공원으로 재탄생시켰다. 1970년에는 급기야 토성 안에 동물원까지 개원했다. 그 결과 오늘날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의 대부분은 '달성토성'이 아니라 '달성공원' 또는 '동물원'을 다녀왔다고 생각하는 실정이다. 
 
 약령시 한의약 문화관 내부
 약령시 한의약 문화관 내부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대구에서 없어졌거나, 없어져가는 안타까운 문화유산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구약령시'이다. 그냥 약령시가 아니라 '대구약령시'이다. 약령시 한의약 문화관은 관광객들에게 소형 홍보물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홍보한다.

"대구약령시는 우리나라 전역은 물론 만주와 중국, 몽고, 아라비아, 일본, 베트남, 독일, 영국, 러시아,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 한약재를 공급함으로써 국제적인 한약 물류 유통의 거점으로 명성을 떨쳤다."

또한 "천하제일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의 꽃으로 피어나다"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자화자찬은 자기 혼자만 알아주는 황당한 격찬이 아니다. 대구약령시는 한국기네스위원회가 '가장 오래된 약령시'로 인증한 바 있고, 문화관광부가 '문화의 거리'로 지정하기도 했다. 객관적으로 역사적 의의를 인정받은 전통과 역사의 약령시라는 말이다.

천하제일 대구약령시, 지금은 안타까운 모습

그런데 그와 같은 대구약령시가 '반쯤 죽어가고' 있다. 흔히 '약전골목'이라 부르는 대구약령시의 현장, 즉 남성로에 가보면 세심히 살펴보지 않아도 비극은 한눈에 확인된다. 이미 거대한 백화점의 뒷골목으로 전락한 약전골목은 커피집과 찜닭집 등이 반쯤을 점령해버렸다.

대구경북연구원의 송은정, 송재일 연구위원과 황희정 부연구위원이 2019년 5월 27일 〈대경CEO브리핑 588호〉를 통해 밝힌 '대구 관광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연구는 지난해 대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방문지(중복응답)가 동성로와 중구 시내가 64.2%로 가장 많고, 서문시장(59.8%), 김광석 길(38.1%), 팔공산(31.4%), 약령시(29.7%) 순이었다고 말해준다.
 
 한약방 간판들 위로 보이는 현대백화점의 웅대한 모습. 지금 약령시 점포들의 반쯤은 커피숍, 찜닭집 등으로 바뀌었다. 이 사진은 그러한 변화를 짐작하게 해주는 풍경이다.
 한약방 간판들 위로 보이는 현대백화점의 웅대한 모습. 지금 약령시 점포들의 반쯤은 커피숍, 찜닭집 등으로 바뀌었다. 이 사진은 그러한 변화를 짐작하게 해주는 풍경이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서문시장과 약령시를 묶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둘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역사적 논거가 있다. 1658년(조선 효종 9) 당시 관찰사 임의백이 처음 약령시를 개장했을 때 경상감영 객사 주변을 위치로 잡았다. 왜냐하면 약령시가 약만이 아니라 '령'을 주요 거래품목으로 취급하는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령은 관공서 자체와 그곳 출입자가 주고객인 문방구 종류를 뜻한다. 따라서 경상도 제일의 관공서인 경상감영 객사 옆에 령을 판매하는 시장이 설치된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그곳은 경상감영에서 조선 3대 시장인 서문시장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약령시 이름의 '약'과 '령'을 함께 되살리는 방안 필요

다만 현대사회는 문구류의 고객이 과거와는 다르다. 학생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사실이 단적인 차이이다. 대구약령시에 대형 문구점을 유치하면 학생 고객이 대거 유입될 수 있을 법하다. 수학여행도 주로 학생들이 온다.

요약하면, 현 위치로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대구약령시를 서문시장 안으로 옮기자. 나아가 예전처럼 약과 령이 동시에 대량으로 거래되는 구조로 바꾸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듯하다. 계성학교 담장을 이루고 있는 상가나 동산병원 맞은편 도로변에 한약방들이 줄지어 서서 한약 향기를 은근히 풍기면 세계적 명소로 각광을 받을 것이다.  
 
 에코 웰빙 한방 체험관, 오른쪽 적벽돌 건물은 대구 독립운동 현장 중 한 곳인 교남YMCA이다.
 에코 웰빙 한방 체험관, 오른쪽 적벽돌 건물은 대구 독립운동 현장 중 한 곳인 교남YMCA이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한 가지 더, 관광객을 여기저기 배회하게 만들어서는 설득력이 없다.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방문지(중복응답)가 동성로와 중구 시내 64.2%, 서문시장 59.8%, 김광석 길 38.1%, 팔공산 31.4%, 약령시 29.7% 순이라는 사실은 시사점을 준다. 동성로를 중심으로 하는 여정과 서문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여정이 2대 중심축이다.

김광석 길, 팔공산, 약령시는 부수적인 답사지이다. 팔공산은 위치상 홀로 관광권을 형성할 수밖에 없지만 김광석 길은 시내와 묶고, 약령시는 서문시장과 일원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 커피집과 식당류의 무지막지한 공세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서문시장 이사를 고려할 만하다. 계성학교 담장을 이루고 있는 상가나 동산병원 맞은편 도로변에 한약방들이 줄지어 서서 은은한 한약 향기를 뿜어내면 세계적 명소로 각광을 받을 것이다.    

최제우 처형지도 약령시 입구에 있다

약령시를 현 위치에서 살려내려면 특별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커피집과 식당류가 주둔군처럼 밀려오는 현실이야 어쩔 수 없지만, 교남YMCA 건물, 구 제일교회 건물, 대구읍성과 영남제일관 터, 1919년 3월 8일 만세운동로의 일부로서의 자취, 그해 3월 10일 이후 덕산정시장 만세운동 터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

특히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의 마지막 삶의 장소가 약전골목을 끼고 있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동학은 구한말 우리 역사를 상징하는 정신사적 자산이다. 동학을 계승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그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벌이는 여러 행사들을 다른 곳 아닌 이곳에서 펼쳐야 마땅하다. 종교에서는 창시자의 출생지, 득도지, 창교지, 전교지, 고난지, 순교지 등이 중요 현장인데, 최제우가 투옥돼 있다가 마침내 처형된 곳이 바로 대구 아닌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장편소설 <소설 의열단><소설 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