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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가 논란입니다. 몇 회에 걸쳐 이 책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국제논전연구소>에서 발언하는 이우연 연구위원(국제논전연구소 홈페이지)
 "국제논전연구소"에서 발언하는 이우연 연구위원(국제논전연구소 홈페이지)
ⓒ 국제논전연구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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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신우익) 학자이자 <반일 종족주의> 공동 저자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일본 측의 자금 지원을 받고 일제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YTN에 의해 보도됐다. 26일자 YTN은 이우연 연구위원에게 자금을 제공한 인물이 후지키 슌이치라고 보도했다.

후지키는 최근 상영된 위안부 다큐영화 <주전장>에 등장해 궤변을 쏟아냈던 극우 인사다. 2017년 제36회 국제연합 인권이사회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비판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그는 "정대협은 북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면서 "그들이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본을 헐뜯고 돈을 요구하고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다"라고 발언했다.

일본 자금 받고 인권이사회 회의 참석해 강제동원 부정 

YTN은 후지키가 이우연 위원에게 인권이사회 정기회의 참석을 제안하고 여행 경비를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후지키의 지원을 받은 이우연 위원이 지난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정기회의에 출석해 "한국인 노무자들의 임금은 높았고, 전쟁 기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살았다"고 발표했다는 게 YTN 보도 내용이다.

이우연 위원은 이 사실을 부분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26일자 페이스북에서 그는 후지키 슌이치로부터 자금을 받은 사실을 부정했다. 그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비를 지불한 곳은 일본역사논전연구소라는 곳이다. 이 연구소는 유엔 제네바 본부에서 '군함도의 진실'이라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연구소는 내게 조선인 전시노동자 일반에 대한 발표를 요청했고, 나는 수락하여 그곳에서 발표했다. 이 연구소는 민간 연구소이며, 이 행사를 위한 비용은 모금으로 조성되었다." 

이우연 위원은 언론에 보도된 국제경력지원협회가 자금을 제공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일본역사논전연구소가 지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키지 슌이치와의 인터뷰를 소개한 8월 26일자 MBC <뉴스데스크>는 "영화 <주전장>에도 등장해 궤변을 쏟아내면서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한 이 남자는 이씨에 대한 비용 지원을 인정했습니다"라면서 "다만, 비용은 ICSA가 직접 준 게 아니라 자신이 회원인 또 다른 일본의 우익단체 국제역사논전연구소에서 지원했다고 말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이우연 위원은 일본역사논전연구소라고 말했고, 후지키는 국제역사논전연구소라고 말했다는 차이만 있을 뿐, 이우연 위원이 후지키의 주선에 의해 돈을 받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우연 위원은 '일본인들이 주관한 행사에 초청됐다면 그쪽에서 여비 지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정대협이 유엔 제네바 본부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일본인 발표자를 초청한다면, 그 여비는 그 일본인 본인에게 지불하라고 할 것인가?"라며 자신을 정당화한다.

맞는 이야기다. 국제 행사를 주최하는 쪽에서 외국인 참가자의 여행 경비를 대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에 부합한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다루는 학술 발표를 하면서 일본 자금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돈을 받게 되면 주최 측을 거스르는 발언을 하기 힘들다. 식민지배에 관한 발표를 할 때는 일본의 돈을 받지 않는 게 상식적인 행동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연구윤리를 위반했는가

이영훈 교수와 함께 펴낸 <반일 종족주의>에서 이우연 위원은 제5장 '강제동원의 신화', 제6장 '과연 강제노동·노예노동이었나', 제7장 '조선인 임금 차별의 허구성'을 담당했다. 그중 제7장에서 이우연 위원은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식민지배의 부당성을 주장한 어느 한국 학자가 자료 내용을 충실히 소개하지 않았다면서 이우연 위원은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분명히 이 표를 보았을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없는 자료, 자신의 주장을 오히려 훼손할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자신의 저서에서는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연구자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연구윤리로 볼 때 일종의 사기이며 역사왜곡, 나아가 악의적 선동입니다." 

이우연 위원은 연구윤리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정작 연구윤리를 위반한 쪽은 이 위원이다. 그가 일본 돈을 받고 유엔 회의에서 강제징용을 부정한 것 역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연구윤리"의 문제다. 과연 일본 돈을 받고 식민지배 문제를 공정하게 연구할 수 있겠는지를 가슴에 손을 얹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우연 위원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발언한 내용이 <반일 종족주의> 제5장~제7장에 설명돼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맹렬한 어조로 비판한다.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일본 기업으로 하여금 한국인 1명당 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 또한 명백한 역사왜곡에 근거한 황당한 판결입니다." 

그는 '일본에 의한 강제징용 자체가 없었고, 한국인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했으며, 한·일 간의 민족 차별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대법원 판결이 황당하다는 것이다.

강제연행이나 강제징용은 한국인들의 왜곡된 역사인식?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 이전에는 일반 모집의 형식을 빌려 한국인들을 일본 내 토목공사장이나 광산에서 집단노동을 시켰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는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통해 본격적인 강제징용을 실시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동원된 한국인만 해도 113만 혹은 146만이나 된다고 한다. 한편, 일본 정부는 이 숫자가 66만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동원된 한국인들은 탄광이나 군수공장 혹은 건설 현장에 투입됐다. 이들이 노예와 다를 바 없이 착취를 당했다는 점은, 평양 미림비행장 노동자 8백여 명이 공사 후 기밀 유지를 위해 집단 학살된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만행은 다른 곳들에서도 자행됐다.

그런 불행한 역사를 외면한 채, 이우연 위원은 강제징용 자체가 없었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강제연행이나 강제징용이라는 말조차 없었습니다"라면서 "강제징용이라는 개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징용 자체가 강제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징용이란 말에도 '강제'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 왜 굳이 '강제'를 붙이느냐는 이의제기다. 그는 '노예노동'과 '강제노동'이란 표현에도 거부감을 표시한다.
 
"이러한 말도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이 가진 왜곡된 역사인식일 뿐입니다." 

강제징용·노예노동·강제노동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이런 표현들을 쓰지 말자는 것은 궤변에 가까운 말이다. 이 세상에 어느 정치권력이 그런 표현을 써가며, 혹은 그런 인상을 풍기며 민중을 동원하겠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숲은 안 보고 나무만 보는 격

그는 일본이 징용을 실시한 기간도 길지 않다고 주장한다. "1944년 9월부터 가장 길게 잡아 1945년 4월경까지 약 8개월 동안 단기간에 실시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기간에는 징용을 거부할 시 1년 이하 징역 혹은 1백엔 이하 벌금이 부과됐지만, 1944년 9월 이전에는 그런 형벌이 없었으므로 강제징용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 중인 1940년부터 일본은 국민총력조선연맹 등을 통해 한국인의 인력과 물자를 침략전쟁에 강제로 동원했다. 그 당시는 일본이 한국인 전체를 압박하는 살벌한 전시 상황이었다. 식민 당국이 굳이 형벌을 예고하지 않더라도, 공포 분위기 때문에라도 한국인들이 징용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징용 불응에 대한 형벌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처럼 살벌한 전시 상황 하에서 한국인들이 징용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파악하지 않고, 징용 불응에 대한 처벌이 없었던 기간이 길었다는 점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숲은 안 보고 나무만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권력은 마적떼와 다르다. 마적떼는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고 끌고갈 수 있지만, 정치권력은 법과 제도를 통해 합법적으로 행동한다. 일본 식민당국도 정치권력이므로 합법적 방법을 이용했다. 하지만, 합법성이 곧바로 정당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뉴라이트와 낙성대경제연구소의 논리대로라면, 법과 제도를 만들어놓기만 하면 그 법과 제도를 이용해 어떤 악행을 범하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강제징용을 부정하기 위해 이우연 위원은 식민지 한국 청년들의 '로망'까지 거론한다. "징용이 실시될 때도 그 전과 마찬가지로 많은 조선인이 브로커에게 고액을 주고 작은 배에 목숨을 의지한 채 일본으로 밀항을 시도하였습니다"라면서 "당시 조선인 청년들에게 일본은 하나의 로망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많은 청년들이 '재팬 드림'에 빠져 징용에 스스로 응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재팬 드림이 실제 존재했다고 양보하더라도, 그 환상에 빠져 있는 일부 한국인들의 심리를 일본이 악용했다는 점은 눈 감는 것이다.

일과 후 여가 즐길 수 있느냐 없느냐로 노예노동 판단  
 
 강제동원 조선인 노동자들
 강제동원 조선인 노동자들
ⓒ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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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는 강제징용으로 동원된 한국인들이 도저히 노예로 볼 수 없는 삶을 살았다고 주장한다. 근무 끝난 뒤에 외출도 하고 술도 마시고 '위안소'도 방문한 사실을 거론한다. 노예노동이었다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노예에 상응하는 제도가 중세 유럽에서는 농노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는 노비라는 이름으로 있었다. 농노와 노비도 가족을 갖고 재산을 축적했다. 그들 역시 술을 마시고 춤을 췄다. 외형상으로는 자유인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유인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하루 노동이 끝난 뒤에 여가를 즐길 수 있는가 없는가는 노예노동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사람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감시자를 붙여 강제노역을 시키는 시스템은 인류 사회의 극히 일부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 식의 노동이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벌어졌다면, 인류 역사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민중 혁명이 벌어졌을 것이다. 일제 식민당국이 한국인 노동자들을 쇠사슬로 묶지 않았다고 해서, 또 일과 후에 외출을 허용했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노예노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우연 위원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본인에 비해 차별을 받았다는 주장도 배척한다. 예컨대, 탄광에 배치된 한국인 노동자의 월급이 적은 것은, 농민 출신인 그들이 탄광 일에 익숙하지 않아 생산량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변호한다.

또 한국인들이 탄광 내부의 위험한 장소에 배치된 것은 "젊고 건강한 조선 청년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젊고 건강했기 때문에 그런 곳에 배치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산업재해를 많이 당한 것과 관련해 "조선인의 재해율이 높은 것은 인위적인 민족차별이 아니라 탄광의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이 맞아 떨어진 불가피한 결과였습니다"라는 모호한 설명도 내놓는다.

일제강점기 민족차별 본인도 모르게 인정

전시 상황에서 한국인 노동자가 좋은 대우를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그는 재미있는 실수도 범한다. 제7장 마지막 문단에 이런 대목이 있다.
 
"조선인이 일본의 탄광에서 일한 것은 1910년대에도 종종 발견되는 모습이었습니다. 1920년대가 되면 그 수가 부쩍 늘어납니다. 이때 조선인의 임금은 일본인의 절반 정도로 보입니다. 이렇게 컸던 차이가, 전쟁과 함께 조선인이 일본으로 동원됨과 동시에 크게 감소하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조선인의 임금이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 되었던 것입니다." 

위 대목은 전쟁 중에 징용된 한국인들이 좋은 대우를 받았다는 점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중에 나왔다. 열심히 설명하는 도중에 '전쟁 전에는 한국인 월급이 일본인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쟁 중에 임금 차이가 크게 개선됐다'는 엉뚱한 말이 나온 것이다. 일제강점기 전체를 놓고 보면 한국인이 민족차별을 받은 게 확실하다는 점을 본인도 모르게 인정한 셈이 된다.

본인도 모르게 자신의 결론을 무의식적으로 뒤엎을 만큼, 이우연 연구위원은 일제에 의한 강제징용을 부정하는 데에 대단한 열의를 갖고 있다. 일본인들이 자금을 제공해서라도 유엔 인권이사회에 세울 필요가 충분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이 그를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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