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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로 책을 방치한다고 해서 좋은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 다른 책을 찾기 위해서 뒤적거리다가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책을 오랜만에 보면 오랜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아! 내가 이 책도 가지고 있었구나! 라는 감탄도 생기고 새삼 그 책에 얽힌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다.마침 오랜만에 본 책이 '현암사'에서 나온 '나쓰메 소세키'의 <우미인초>라면 단지 반가운 정도가 아니다. 

골목길을 별다른 생각 없이 걷다가 갑자기 맞은편에서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의 이성이 걸어올 때 느낄만한 설렘이 느껴진다. 현암사는 2013년 9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풀베개>, <태풍>을 시작으로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을 출간하기 시작했는데 2016년에 전 14권의 완간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말하는 <우미인초>는 이 전집 중의 한 권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만을 모아서 전집을 펴낸 것만으로도 독자로서는 고마운 일인데 수려하고 아름다운 표지디자인으로도 더욱 찬사를 하고 싶다. 많은 독자가 책을 살 때 표지 디자인을 고려하며 나 또한 그렇다.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속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동차, 전자제품만 보아도 디자인이 구매를 결정할 때 중요한 요소인데 굳이 책에만 디자인을 무시하라는 법은 없다. 

아름다운 문학전집 표지라는 주제를 생각해보면 빨리 떠오르는 책들이 있다. 민음사에서 나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솔출판사의 <버지니아 울프 전집> 그리고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전집>이다. 개인적으로 <나쓰메 소세키 전집>의 표지를 가장 좋아한다. 현암사에서 나온 <나쓰메 소세키 전집> 표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나쓰메 소세키의 조국인 일본에서 나온 '이와나미 쇼텐(株式会社岩波書店Iwanami Shoten Publishers)판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우선 말하고 싶다. 
 
표지 사진 표지
▲ 표지 사진 표지
ⓒ 이와나미 쇼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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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나미 쇼텐'은 株式会社岩波書店이라는 한자표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와나미 시게오'라는 사람이 '세계 최고의 책의 거리'로 소문난 도쿄의 진보초에서 1913년 문 연 고서점 전문 서점에서 출발했다. 한편 '나쓰메 소세키'는 '이와나미' 서점이 문을 연 다음해인 1914년 4월 20일에서 8월 11일에 걸쳐 그의 장편 소설 <마음>을 연재했다. 

이제 막 헌책방을 개업하고 근근히 운영하던 이와나미 쇼텐의 창업자 이와나미는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던 <마음>을 읽고 감동한 나머지 무작정 나쓰메 소세키를 찾아갔다. 이유는 뻔했다. <마음>을 자신이 출간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쓰메 소세키 입장에서는  받아줄 이유가 전혀 없는 제의였다.

데뷔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단박에 인기 작가가 됐고 말년에 접어든 국민작가로서 펴내기만 하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 분명한 그의 소설을 출간하고 싶었던 대형출판사들이 그의 간택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대형출판사에서 출간하면 훌륭한 제작과 마케팅이 보장되었고 엄청난 인세 수입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또 그 당시 대학교수 자리를 집어치우고 전업 작가로 살기로 해서 안정적인 수입이 중요했던 나쓰메 소세키 입장에서는 굳이 '극본도 없는' 헌책방 주인과 계약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더 어이없는 것은 대문호의 소설을 출간하겠다고 덤비는 이가 출판사 사장이 아니고 1년 전에 문을 연 동네 헌책방 주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나쓰메 소세키>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흔쾌히' 헌책방 주인과 책을 내기로 약속했다. 대작가로 추앙받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신출내기 헌책방 주인의 '간곡한 부탁'에 감동을 한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출간 계약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이 헌책방 주인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더 끔찍한 제안을 한다. 본인은 돈이 없으니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가 출간에 필요한 비용을 투자해달라고 부탁한 것. 이 부탁마저도 일본의 대문호는 허락한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마음>은 자비로 출간된 속사정이다.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지 못해서 자기 돈으로 책을 내는 그 자비출판과는 차원이 다른 경우였다. 

어쨌든 이 역사적인 출간을 계기로 이와나미 쇼텐은 서점에서 출판사로 새로 문을 열었다. 본인의 소설로 첫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가 미덥지 못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문학 인생을 정리하는 대작에 대한 애착이 강했는지 나쓰메 소세키는 표지와 광고문구까지 직접 기획했다. 1914년 9월 26일 자 <시사신보>에는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가 기획한 광고문이 실렸다.

"자기의 마음을 가다듬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사람의 마음을 가다듬는 이 책을 추천합니다."

물론 이와나미 쇼텐에서 출간된 <마음>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작가가 사망한 이후인 1918년 1월 일본 최초의 <소세키 전집>을 출간했다. 이 전집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와나미 쇼텐은 진보초의 작은 헌책방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굴지의 출판사로 성장했다. 1918년에 '이와나미 쇼텐'이 출간한 <소세키 전집>의 표지는 1914년에 나온 <마음>의 표지 디자인을 기반으로 삼은 것이다.

이와나미 쇼텐판 <소세키 전집>은 표지에 얽힌 사연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게 된다. 나에게 이와나미 쇼텐판 <소세키 전집>이 각별한 것은 표지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너무 좋아해서 한 권씩 나올 때마다 사서 읽는(심지어 여자 주인공 '시오리코'의 피겨까지 샀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권의 첫 번째 에피소드 주인공이 바로 이와나미 쇼텐판 <소세키 전집 신서판>이다. 

신서판이란 '이와나미 쇼텐'이 좋은 교양도서를 저렴한 가격으로 일반 독자들에게 공급하겠다는 기획하에 103x182mm 크기로 제작된 문고판 크기의 시리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의 남자 주인공 다이스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문제의 <소세키 전집 신서판>을 발견했다. 이 책에 '나쓰메 소세키'의 서명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그 가치를 알기 위해서 고서점의 주인이자 고서에 관한 모르는 것이 없는 여주인공인 시오리코를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오리코의 입을 통해서 <소세키 전집>에 대한 사연을 좀 더 알 수 있는데 과연 이와나미는 소세키와 인연이 깊어서 작가의 제자와도 교류를 이어나갔으며 1918년에 나온 첫 전집은 이와나미와 소세키의 제자가 서로 힘을 합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2016년에 완간된 현암사 판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은 이와나미 쇼텐처럼 소세키가 기획한 표지디자인을 채택하지는 않았다. 이와나미 쇼텐에서 나온 <소세키 전집>이 작가가 직접 만든 표지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현암사의 표지는 디자인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소재와 질감을 통해서 고풍스러운 멋을 발산한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발전된 작품이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처럼 몇 년에 걸친 야심 찬 대작을 펴낸다면 가격을 좀 비싸게 책정하더라도 구부러지지 않고 안정감이 있는 튼튼한 하드커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암사의 생각은 좀 달랐다. 종이로 표지를 만들었는데 코팅을 비롯한 후 가공을 하지 않았다. 마분지를 선택한 다음 코팅을 하지 않음으로써 까칠한 섬유 재질과 같은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제작했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전집' 중 '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전집" 중 "마음"
ⓒ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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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팅이 되어 있지 않으니 쉽게 때가 묻고 표지 인쇄가 변색할수도 있는데 이 점이 오히려 표지의 주인이 오래된 고전이라는 점을 잘 말해주는 매력이 될 수도 있겠다. 세월이 흐르고 독자의 손때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빈티지 효과가 생기도록 의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암사 판 표지는 각 권마다 내용을 함축하는 그림이 수려하게 새겨져 있는데 얼핏 보면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책을 사자마자 띠지를 버리는 독자라도 이 책만은 그러면 안 된다. 띠지에 인쇄된 문구는 표지에 적힌 한시를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세키가 한 번 더 표지 디자인을 할 기회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현암사'의 디자인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번역의 질 또한 훌륭해서 외관의 아름다움을 보필한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세트 - 전14권

나쓰메 소세키 (지은이), 송태욱 (옮긴이), 현암사(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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