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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군들이 서울을 탈환하고자 한강 도하작전을 펼치고 있다(195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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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도하작전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유엔군이 경인 지역에서 인민군 후방을 공격하자 여유가 생긴 미 해병 제1사단과 국군 해병연대는 서울 수복작전에 나섰다. 또한 미 제7사단과 국군 제17연대는 낙동강 반격부대와 연결을 하기 위해 안양, 수원, 오산 방향으로 진출했다.
유엔군들이 한강 남쪽으로 빠르게 진출하자 인민군은 서울시민을 동원해 서울 주변 고지대와 중요 지역에 전투진지를 구축했다. 이때 인민군이 서울 방어에 배치한 부대는 제18사단, 제25여단, 제78독립연대, 제9사단 87연대였다 병력은 약 2만여 명 정도였다.
9월 18일 국군과 유엔군은 김포를 탈환한 뒤, 20일부터는 한강 도하작전을 시도하여 그날 행주산성까지 진출했다. 이어서 21일 저녁에는 한강 우측 65고지 - 104고지 - 백련산을 잇는 능선을 확보한 뒤 중앙청으로 진출할 태세를 갖췄다.
이번 회는 1950년 9월 19일부터 9월 22일까지의 사진들로, 이 시기는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유엔군들이 서울 탈환작전을 펼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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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천 상륙작전으로 폐허가 된 인천시가지(1950. 9.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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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천, 상륙한 유엔군을 환영하고자 몰려든 인천시민들(1950. 9.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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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서울을 탈환하고자 인천에서 서울로 진격하는 미 해병들(950. 9.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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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유엔군들이 인민군 포로를 연행하고 있다(1950. 9.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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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인천항 부두에 정박한 상륙정들(195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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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인천, 폐허가 된 시가지에 돌아오는 피란민들(1950. 9.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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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영복이 쓴 <6.25전쟁사>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