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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소설가가 통찰력 있게 그려낸 여성 서사를 통해 여성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합니다. 여성에게 의미 있는,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더 많은 여성 서사가 우리 삶에 스며들길 기대합니다. - 기자말
 
 배재어린이공원, 거사전야상.
 배재어린이공원, 거사전야상.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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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며칠 전 서울 중구에 자리 잡은 배재어린이공원을 찾았다. 올해 2월, 2.8 독립선언과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항일독립운동 여성상 제막식이 열린 곳이다. '거사 전야'란 제목으로 세워진 여성상은 두 소녀를 형상화했다. 오른편에 앉은 댕기머리 소녀는 등불을 비추고 있고, 왼편에 앉은 단발머리 소녀는 독립선언서를 찍고 있다. 두 소녀는 그날 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까. 

공원에 오기 전 찾아본 블로그에선 소녀상 바로 앞까지 다가가 찍은 사진들이 보였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은 멀찍이에서 소녀들을 바라봤다. 두 소녀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며 댕기머리 소녀가 등불을 든 팔의 형태, 단발머리 소녀가 독립 선언서 낱장을 두 손으로 들고 있는 모습, 또 단발머리 소녀 왼쪽 어깨에 내려앉은 비둘기 등을 마음에 담았다. 그게 무엇이든 소녀들의 모습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

멀리서도 어쩐지 소녀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결연함과 뜨거움. 이렇듯 정적이면서도 고요하게 조형된 그녀들이지만, 그녀들의 그 시절은 결코 정적이거나 고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 같은 삶과 삶다운 삶을 가르는 경계에서 결연하게 용기 내고 뜨겁게 행동했을 것이다. 나는 머릿속에 그려봤다. 거사가 치러진 낮, 두 소녀가 전날 밤 등사한 독립 선언서를 한쪽 팔에 끼고 정동 거리로 뛰쳐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두 팔을 쭉 펴며 대한 독립을 외치는 모습을. 

단발머리 소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비둘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눈으로 보듬고는, 기념비 뒤로 돌아가 뒷면을 바라보며 섰다. 왼편에는 조형물 건립 위원회의 취지문이, 오른편에는 항일독립운동 여성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공원을 가로질러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제외하곤 사방에선 매미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수컷 매미들이 암컷 매미를 유혹하는 소리를 들으며 '오늘 그들 여기에'란 제목으로 쓰인 취지문을 읽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독립투쟁에 여성은 남성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항일 여성들은 의병, 의열단, 조선의용대, 광복군으로 무장투쟁에 가담했습니다. (중략) 항일 여성들이 독립투쟁에 참여하려면 남성보다 훨씬 강한 용기와 의지가 필요했습니다. 국권을 빼앗긴 데 따른 고통은 남녀가 따로 없이 겪지만, 항일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권위주의 때문에 독립투쟁에 참여하면서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는 독립 운동가는 몇 명일까. 막상 이름을 대보려면 몇 명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중 여성 독립 운동가는 몇 명일까. 유관순 열사 외에 알고 있는 여성 독립 운동가가 또 있을까. 부끄럽게도 나 역시 아는 여성 독립 운동가가 몇 명 없었다. 한 손으로 다 꼽을 수 있을 만큼이었다.

하지만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3.1 운동 당시만 해도 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 운동가는 많았다. 학교에서, 집에서, 기방에서 뛰쳐나와 만세를 외친 여성들. 그중 일부는 3.1 운동 이후 경성에 남아 지하조직에서 활동하거나 상해, 만주, 모스크바 등지로 떠나 광복을 위해 싸웠다.

취지문에 이어 항일독립운동 여성들의 이름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모르는 이름들과 아는 이름들을 속으로 발음하며 읽었다. 역시나 아는 이름이 몇 개 없었다. 아나키스트 박열의 아내이자 일왕 암살을 계획했던 가네코 후미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이자 독립 운동가였던 조마리아 여사,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선생, 소설 <체공녀 강주룡>으로 알게 된 강주룡, 유관순 열사.

그리고 나는 주세죽이란 이름을 찾았다. 2007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독립 운동가이자 비극의 여인 주세죽.  

사실 내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최근에 새롭게 알게 된 항일 여성 혁명가들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지 싶어서였다.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여성 해방 운동가였던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조선희 소설 <세 여자>의 주인공들이다. 셋 중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은 독립 운동가는 주세죽뿐.

소설가 조선희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이중 소외'라는 말을 썼다. "사회주의 계열이어서 묻혔는데, 여자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묻혔다." 해방 후 북으로 넘어가 고위 관리로 일했던 허정숙과 몽양 여운형의 측근에서 활동했던 고명자는 아직 대한민국에서 이중으로 묻혀 있다.
 
 겉표지
 겉표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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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 트로이카

두 권짜리 소설 <세 여자>를 읽는 내내 나는 혁명가들과 살았다. 소설엔 수많은 혁명가가 등징하는데, 이름 석 자로 나오는 모든 이들은 실존 인물이다. 조선희가 말하길 그들의 생애는 역사기록을 충실히 따랐다고 한다. 기록에 저자의 통찰력과 상상력이 가미됐다. 이들 혁명가들은 "조국해방을 한 뼘 앞당길 수 있다면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했고, 실제 그런 삶을 살았다. 소설의 세 여자 주인공들도 그런 삶을 살았다. 조국 해방을 위해서라면, 그녀들은 못할 것이 없었다.

소설을 읽으며 무엇보다 20세기 초에도 이처럼 씩씩하고 거침없는 여성해방가이자 신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아는 신여성은 나혜석뿐이었는데, 아니었다. 신여성은 여기 또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삼종지도에 발이 묶여 남자들의 그늘에서 숨죽이며 살고 있었다면, 극소수의 여성들은 자유로이 사상을 펼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했다. '세 여자'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도 그랬다.

허정숙은 고베 유학을 다녀온 1919년, 뒤늦게야 3.1 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을 물먹어버렸다는 사실"에 화가 난 그녀는 1920년, 부모 몰래 상해로 간다. 열여덟 살부터 여성 계몽 운동에 나섰던 정숙의 야심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모든 것이 되고 싶었다." 상해로 떠나기 전, 정숙은 항일 변호사인 아버지 허헌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 나이 내년이면 꽉 찬 스물입니다. 혼기를 놓쳤다는 부모님의 걱정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외람되오나 이 여식은 나이 스물에 혼처를 정하는 일보다 인생의 뜻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여겨집니다. 넓은 바깥세상도 구경하고 외국어도 연마하고자 하오니 너무 허물치 말아 주십시오."

1902년에 태어난 조선 여성이 결혼을 하는 것보다 "인생의 뜻을 세우는 일"을 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니, 그리고 생각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정말 생각대로 일생을 살 수 있었다니 놀랍다.

그 시대에 일본, 중국, 소련, 미국에서 유학할 수 있던 것도, 5개 국어에 능숙했다는 것도, 하고 싶은 일은 기어코 했고, 사랑하고 싶은 남자는 기어코 사랑했다는 것도. 그녀가 부잣집 딸에다 진보적인 아버지를 두었다는 건 부차적인 이유 같았다. 그녀가 그녀처럼 살 수 있게 한 건 그녀 내면의 동력, 자신의 욕망을 당당히 대면할 수 있던 용기였으리라 나는 생각했다.

주세죽은 1919년에 3.1 운동에 나섰다가 한 달간 유치장에 갇혀 고문을 받았고, 학교에서도 퇴학당했다. 그녀의 마음엔 분노가 일었고, 곧 마음을 굳혔다. 상해로 가리라.

1920년에 상해로 떠난 조선 젊은이들은 "자기 마음속의 이미지로 세상을 리셋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세죽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동시에 꿈도 이루고자 했다. 음악 공부를 하고 돌아가 음악 선생이 되어야지. 상해로 떠나는 그녀의 마음은 단단했다.
 
"반드시 꿈을 이뤄야 한다. 이제 마음먹은 대로 하면 된다. 뭐가 문제인가. 어머니를 두고 고향을 떠나 상해까지 나왔는데.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온 것이다. 가난함이나 배고픔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독립만세도 불러보고 고문도 당해보고 감옥살이도 해봤는데 두려울 게 무엇인가."

정숙과 세죽이 본격적으로 여성해방 운동에 나선 것은 경성에 돌아오고 나서였다. 1924년, 조선 최초 여성동우회가 창립됐다. "여자들끼리 모여 단체를 만든다는 것, 공개적으로 여성인권을 얘기한다는 것, 그 자체만도 천지개벽할 일이었"지만, 두 여자는 마치 순리를 따르듯 자연스럽게 척척 앞서 걸어 나갔다.

정숙의 논리는 이러했다. 민족이 해방됐는데, 여성이 해방 안 되면 무슨 소용인가. 여성이 해방됐는데, 민족이 해방 안 되면 무슨 소용인가. 여성이 해방됐는데, 유산계급 여성만 해방되면 무슨 소용인가. 그러니, 다 해방되게 해야 한다! 

이화학당을 다니고 있던 고명자는 두 여자를 경성에서 만났다. 친구 손에 이끌려 여성동우회에 얼떨결에 발을 디뎠다가 특히 정숙의 박식함에 매력을 느껴 그곳에 눌러앉았다. 대대로 양반 지주 가문의 여식이었던 명자는 태어나 빗자루를 쥐어 본 적도, 시중드는 아이 없이 집 밖을 나선 적도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여성주의와 공산주의는 별세계였지만, 그녀는 금세 정숙과 세죽의 사상적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자유연애를 부모 몰래 시작하기도 했다. 공산주의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모스크바 공산대학으로 혼자 유학도 떠났다.
 
 청계천에서 세 여자, 왼쪽부터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청계천에서 세 여자, 왼쪽부터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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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는 한 장의 사진에서 이 소설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주세죽과 박헌영의 딸 비비안나 박이 1991년 한국에 왔을 때 그녀 손에 들려 있던 사진이다.

사진엔 밝은 표정으로 청계천에 발을 담그고 있는 세 여자가 보인다.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다. 세 여자의 표정에선 일본의 압제와 가부장제의 억압에 의한 고통이 읽히지 않는다. 도리어 여유롭고 남들의 시선 따윈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조선희는 사진 속 세 여자의 표정을 보며 그녀들은 분명 그 순간 희망에 차 있었으리라 추측했다. 새로 받아들인 사상과 뜨거운 젊음이 미래를 희망하게 한 것일까. 

이 사진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세 여자의 단발머리. 당시 조선에서 여자들이 머리를 싹둑 자른다는 의미는 "나, 독립된 인격체요"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여성은 철저히 객체로만 머물러야 했던 시대에, 그녀들은 머리를 자름으로써 스스로를 주체로 내세운 것이다.

조선인들의 눈에 신여성이란 존재는 이해불가였다. 노골적으로 탐탁지 않아 하는 시선도 많았고, 신여성의 사생활을 소비하는 데 재미 들린 시선 또한 많았다. 실제로 정숙의 남성 편력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녀의 지금 남편이 세 번째인지, 다섯 번째인지 수군대는 소리가 정숙 귀에까지 들렸다.

책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엔 세 여자의 연애사와 그 연애가 불러온 숙덕거림에 관해 상세히 기록됐는데, 잡지 <삼천리>엔 정숙이 아버지의 성이 다른 둘째 아이를 낳았다는 거짓 기사까지 실려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 세 여자는 여성 트로이카로 불릴 만큼 주목받았다. 가뜩이나 유명한 여자들이 머리를 자르고 청계천에서 시간을 유유히 흘려보내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화제였겠는가. 이를 두고 또 얼마나 많은 비아냥과 모욕적인 말들이 쏟아져 나왔겠는가. 하지만 남들이 쑥덕거리든 말든, 신여성 세 여자는 머리를 싹둑 자른 결기로 그녀들의 삶을 조국 독립에 투신한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두려워서 숨는 대신, 두려워도 나선다.

그래도 후회하진 않는다

이 소설은 두 가지 시선으로 읽을 수 있다. 여성 혁명가의 시선,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가의 시선. 언젠가 봤던 프랑스 영화가 생각난다. 영화에서 오십 대 중반에서 육십 대 초반 정도의 교수는 식탁에서 자식들로부터 놀림을 받는다. "엄마, 예전에 사회주의자였잖아." 그러자 그녀는 조금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다 그랬어, 그게 좋은 줄 알았거든."

1920년에 상해로 몰려든 조선 젊은이들도 그랬다. 그게 좋은 줄 알았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역사가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흥망성쇠를 다 알지만, 소설 속에서 20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공산주의자들에겐 공산주의가 현재이자 미래였고, 그들에게 공산주의는 인간 해방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좁고 위험하지만 그 길의 끝엔 필시 모든 계급의 평등하고도 행복한 삶이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래서 혁명가들은 지금을 사는 우리가 우리의 신념과 이상을 따라 매일을 살아내듯, 그렇게 공산주의자의 신념과 이상을 품고 매일을 살아냈다. 그들이 공산주의자가 된 이유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명료했다. 
 
"그들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착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농부는 자기 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아프면 돈이 있건 없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람이 평등해야 존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젊은 혁명가들의 일상은 혁명 속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저자가 당시의 시대상과 상상력을 잘 버무려 만든 흥미로운 장면도 있다. 박헌영과 주세죽의 결혼식. 주례를 맡은 여운형은 이제 곧 부부가 될 두 사람에게 앞으로도 서로 사랑하겠느냐 묻는 동시에 조국 독립과 무산자 계급 해방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는지도 함께 묻는다. 그러자 두 사람은 독일어판 <자본론>에 손을 얹고 "네" 하고 대답한다.

축가는 사회주의 민중가요인 <인터내셔널가>다. 당시엔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집회에서든 <인터내셔널가>를 불렀다고 한다. 이 장면을 읽으며 그 시절 공산주의자들의 삶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에겐 사랑보다도, 가정보다도, 혁명이 먼저였던 것이다. 사랑도, 가정도, 혁명 안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세 여자와 세 여자의 남편이자 애인은 모두 공산주의자였고, 조선에서 공산주의가 부침을 겪을 때마다, 그들의 삶도 격랑에 휩싸였다. 이제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미래를 희망하던 시간은 지나갔다.

1925년 일본은 치안유지법을 공표하며 공산주의자들을 굴비 엮듯 감옥으로 엮어 들어갔다. 세 여자도 차례대로 체포됐다. 이후 형무소에서 풀려난 세죽은 남편 헌영을 옥바라지한 끝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남편과 함께 모스크바로 건너갔고, 정숙은 반복된 형무소 생활을 뒤로하고 무장 투쟁을 위해 새 남편과 중국 남경으로 떠났으며, 명자는 애인 단야와의 짧은 모스크바 생활 후 모진 고문 끝에 원치 않은 전향을 했다.

공산주의가 소멸하거나 변질되면서 그녀들의 삶도 함께 꺼졌다. 그녀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테러당하거나 숙청당하거나 총살당했고, 그녀들의 삶이라고 해서 안전하지 않았다. 세죽과 명자의 후반생은 가슴 아릴 정도로 처참하고 고단했다. 고립됐고, 불행했고, 배고팠고, 외로웠다. 세 여자의 말년은 서로 접점 없이 끝났다. 정숙은 해방 후 사상의 고향 북을 택해 그곳에서 장수했고, 세죽은 시베리아 유형 생활 끝에 외롭게 죽었으며, 명자는 전향 후 스산한 삶을 살다가 혼자 죽었다.

스무 살 갓 넘은 나이에 세 여자는 독립 운동가가 됐다. 이후 그녀들의 삶은 투쟁의 역사였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는 일에 온 삶을 바쳤다. 그녀들은 조국을 위해 소중한 것들에게서 자주 등을 돌려야 했다. 평범한 일상도, 꼬물거리는 자식도, 고향에 두고 온 부모도.

그래서 힘겨운 삶이었지만, 때론 자신들의 한 많은 인생을 생각하며 가슴 치기도 했지만, 그렇더라도 지난 선택들을 후회하진 않았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 겪은 모든 행복과 불행은 그녀들이 한 선택의 결과였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지도 몰랐다. 세죽은 언젠가 말했다.
 
"그동안 땅 밑이 꺼지는 것처럼 힘들 때도 많았고 죽고 싶은 적도 있었어.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바깥이 춥다고 껍질 속으로 도로 들어가겠니? 죽도 밥도 아닌 그런 인생은 생각도 하기 싫어."

배재어린이공원에 서 있던 날, 나는 며칠 전에 읽은 소설의 여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독립을 위해 했던 모든 일들, 그 일들을 하는 과정 중에 겪은 모든 고초들, 그녀들의 화끈하거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들, 그리고 그녀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했을 법한 생각들이 여전히 내 일상과 함께였다. 소설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소설을 읽고 어딘가를 찾아올 정도로 벗어나지 못한 적은 별로 없었다.

벗어나지 못하는 이 상태가 오래도록 지속돼도 좋을 것 같았다. 알아야 했지만 알지 못했던 누군가를 이제라도 긴 시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지금 내가 그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같아서였다. 

세 여자 2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한겨레출판(2017)


세 여자 1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한겨레출판(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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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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