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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읽는 고전'은 30대를 통과하고 있는 한 독서인이 뒤늦게 문학 고전을 접하며 느낀 재미와 사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보통의 독서인으로 살아갈 경우엔 그다지 많은 고전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평생에 걸쳐 읽고자 하는 고전을 젊은 시절에 발견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자신 있게 드리는 말씀인데, 정신 차리고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면, 저절로 고전이 한 권, 두 권, 그것도 일생에서 아주 소중한 무언가가 될 작품이 여러분에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 중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딱히 무엇을 읽어야겠다 생각하지 않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 책을 오래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전에 눈길이 가게 되는 것 같다. 나도 그렇게 고전을 한 권, 두 권 찾아 읽고 있는데, 그게 생각보다 재미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기쁘게도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작가를 만났다. 오에의 표현대로 '일생에서 아주 소중한 무언가가 될, 평생에 걸쳐 읽고자 하는 고전'을 만난 것이다.  
바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다. '변신'은 이전에도 읽은 적이 있다. 중학생 때 처음 읽었고, 이십 대 중반 즈음에 한 번 더 읽었던 기억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린 인간을 그린 우화 정도로 이해했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가장의 존재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단순히 돈을 벌어다 주는 것만으로 집안에서 대장 노릇을 하려는 가장에 대해서. 그런 권위적인 가장이 돈 버는 능력을 상실했을 때, 그는 그저 귀찮은 존재, 성가신 벌레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면서 혼자 속으로 '권위적인 아버지'들을 비웃곤 했었다.

세 번째로 '변신'을 읽은 지금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인간,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한없이 비참해지는 인간에 대한 연민. 이 가여운 인간들을 도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적당히 그것들을 이용하면서 주체적으로 살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 휩싸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변신'을 쓴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7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낮에는 보험국 관리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며 소설가의 삶을 살았다.

작품해설을 쓴 전영애 교수는 그를 "프라하와 자신의 답답한 생활을 퍽 벗어나고 싶어 했건만 결국 떠나지 못한 사람, 세 번이나 약혼했으나 평생 독신이었다가 마흔한 살 생일을 앞두고 결핵으로 죽은 사람, 문학에 유례없을 만큼 모든 것을 걸었으면서도 작품을 불사르게 하고 나머지도 없애라고 유언을 하고 간 작가, 또한 그 작품에 대하여 무수한 해설서가 있어도 불가해하기만 한 작가"라고 정의했다.

'변신'은 1915년에 출간됐다. 카프카가 32세였을 때다. 길지 않은 글인데도 읽는 과정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멈칫하게 되는, 몇 번이고 곱씹게 되는 문장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물음표와 느낌표가 무수히 떠다녔다.

돈 못 벌면 사람 취급 못 받는 세상
 
 <변신,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옮김
 <변신,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옮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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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자체는 단순하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눈 떠 보니 자신이 흉측하고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이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가 출근하지 않자, 직장에서 매니저가 집으로 찾아온다. 매니저와 가족들은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를 발견한다. 놀란 매니저는 그 길로 집을 뛰쳐나가 버리고, 가족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한동안 가족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슬퍼하며 그레고르의 방도 청소해주고, 먹을 것도 챙겨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족들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심지어 훼방을 놓기까지 하는 그를 그저 성가신 존재로 여긴다.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거나 이 집을 나가버렸으면 하고 은근히 바란다. 그 사실을 알아챈 그레고르는 어느 날 먼지와 쓰레기들로 가득한 자신의 방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가족들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각자의 삶을 이어나가며 소설은 끝이 난다.

내용은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그의 문장과 행간 속 메시지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잠자, 그는 무엇을 의미할까. 일할 능력을 잃은 사람, 가족에게 물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을 굳이 벌레로 그린 건, 물질만능 사회 속 인간 존재의 하찮음을 말하려는 의도 아니었을까. 나 또한 그런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부정할 수도 없기에 씁쓸하고 아프다.
 
'이 얼마나 고요한 생활을 식구들은 영위하고 있는가' 하고 말하며 그레고르는 자기 앞의 어둠을 물끄러미 응시한 채 스스로가 부모와 누이에게 그러한 삶을 마련해 줄 수 있었다는 데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모든 고요, 모든 유복함, 모든 만족이 졸지에 충격으로 끝나버린다면 어떨까? (33쪽)

그러니 이제 어쩌면, 집 안을 돌아다니는 것도 힘이 들 만큼 호흡이 가빠져서 하루 건너 열린 창가 소파에서 시간을 보내는, 천식으로 고생하는, 늙은 어머니가 돈을 벌어야 한단 말인가? 열일곱 살에다 아직 어린아이이고 지금까지의 사는 방식이라곤 예쁘장하게 옷 입고, 실컷 자고, 살림을 조금 돕고, 몇 가지 소박한 오락이 끼이고, 무엇보다 바이올린이나 켜는 것이 고작이었던 누이동생이 돈을 벌어야 한단 말인가?

이야기가 이 돈을 벌어야 할 필연성에 미치면, 우선 언제나 그레고르는 문을 떠나 문 곁에 놓인 서늘한 소파에 몸을 던졌다. 수치와 슬픔으로 몸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41쪽)

아빠는 왜 새우처럼 자야만 했을까

예전에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레고르의 아버지, 그리고 그레고르에게 느꼈던 감정은 조소에 가까웠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돈 벌어다 주는 것이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는 양 식구들을 자기 아랫사람 대하듯 무시하는 소설 속 두 인물의 모습이 이 시대의 아버지들과 닮았기 때문이다.

소설을 다시 읽은 지금은 그들에게 조소보다 연민을 더 크게 느낀다. 느닷없이 아빠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당황스럽게도 코끝이 찡해지고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아빠는 평생 몸 쓰는 일만 해왔다. 온몸에 기름때를 묻혀 늘 거뭇거뭇했고, 여름이건 겨울이건 땀을 뻘뻘 흘렸다. 수십 년을 그렇게 일했다.

그렇게 고되게 일하고도 밤에는 편히 누워 자는 법이 없었다. 항상 무슨 고민을 하는 자세로, 새우처럼 옆으로 누워 한쪽 팔로 머리를 높이 받쳐 들고는 꾸벅꾸벅 졸았다. 편하게 누워 자라고 몸을 흔들면 불에 덴 듯이 화들짝 놀라 깨서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이내 같은 자세로 꾸벅꾸벅 졸았다. 그리고는 새벽같이 일어나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집을 나서곤 했다.
 
아버지는 완전히 옷을 차려입은 채 자기 자리에서 졸고 있었다. 마치 언제나 일할 태세가 되어 있고 여기서도 상사의 명을 기다리고나 있는 듯이. 그리하여 처음부터 새 옷 티가 안 나던 제복이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온갖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청결함을 잃어, 그레고르는 자주 저녁 내내, 온 사방에 얼룩이 지고 언제나 닦여진 금단추로 빛나는 옷, 그 옷에 감싸여 늙은 잠자 씨가 지극히 불편하게 그러면서도 고요히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57쪽)

무엇이 한 인간으로 하여금 밤에 편히 잠들지도 못하게 하는가. 아빠는 무슨 걱정과 고민이 그리 많았기에 그 오랜 세월 동안 편히 자지도 못하고 잠결에도 한숨을 쉬었을까.

본인의 몸과 영혼을 갈아 넣어 처자식을 먹여 살린 아빠는 어쩌면 인생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아빠는 정말 처자식만 보고 그 힘든 시간을 살아낼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가슴속에 희미하게나마 자신의 인생에 대한 어떤 희망 같은 걸 품고 있었을까.

그레고르가 결국 먼지와 쓰레기로 가득한 방에서 쓸쓸히 죽어버린 뒤, 가족들은 새집으로 이사한다. 다소 후련해 보이기까지 한 모습이다. 그리고 부모의 눈에는 아들이 떠나고 하나 남은 자식인 딸이 보인다. 어느새 훌쩍 자라 '아름답고 풍염한 소녀'가 되어버린 딸의 모습이. 나는 이제 슬프게도 그녀의 미래에서 희망 같은 것을 볼 수가 없다.
 
잠자 씨와 잠자 부인은 점차 생기를 띠어가는 딸을 보고 거의 동시에 딸이, 아름답고 풍염한 소녀로 꽃 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수가 적어지며 또 거의 무의식적으로 눈초리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내외는 이제 딸을 위해 착실한 남자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목적지에 이르러 딸이 제일 먼저 일어서며 그녀의 젊은 몸을 쭉 뻗었을 때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좋은 계획의 확증처럼 비쳤다. (78쪽)

변신.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지은이), 전영애 (옮긴이), 민음사(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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