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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은 가입한 적도 없고, 트위터는 계정은 있지만 접속한 지 삼사년은 족히 지났다. 페이스북은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잠깐 이용해보았지만, 재미는 없고 놀랄 일만 있어서 그만두었다. 십여 년 전 소개팅으로 딱 한 번 만났던 사람이 말을 걸 줄이야.

차 한 번 마셨을 뿐인 사람에게 딱히 악감정은 없으나, 갑자기 그 알고리즘이 불편해졌다. 그 옛날 소개팅을 주선했던 직장 동료와도 연이 끊긴지 오래였으니 말이다. 나로서는 신문물의 이 영특함이 반갑지 않았다. 

여전히 SNS를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다. 그녀 말로는 매일을 기록하는 일기장으로 이용한다는데, 과연 그렇기만 할까. 오랜만에 만났는데 포스팅할 사진 촬영이나 SNS 확인에 밀려 대화의 흐름이 끊길 때마다 '뭣이 중한디' 생각해보곤 한다. 함께 있는 나인가, SNS 속 세상인가.  

SNS 속 완벽한 그녀, 삶도 완벽할까
 
 <훔쳐보는 여자> 책표지
 <훔쳐보는 여자> 책표지
ⓒ 한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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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카 켄트의 스릴러 소설 <훔쳐보는 여자>의 오텀은 SNS 중독자에 다름 아니다. 오텀은 이웃집 여자 대프니의 SNS를 샅샅이, 그것도 수백 번 보고 또 보는 것도 모자라 전부 캡처한다. SNS 상에 거짓말이 판을 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대프니의 아름답고 행복한 삶만큼은 진짜라고 확신한다. 
 
"(그러니) 인스타페이스는 언제나 맑음이다. 그 맑음이 연출된 거라할지라도… 다만 대프니는 예외다. 대프니의 인스타페이스는 정말로 진짜다. 그녀는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낼 필요도 없고,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굳이 연출할 필요도 없다. 그녀의 가족은 두말할 것도 없이 완벽하다."(p107)

오텀은 대프니의 삶을 온라인으로 엿보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진짜 이웃이 되어 실제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대프니의 이웃 벤을 유혹하기까지 한다. 이에 성공한 오텀. 오텀은 벤과 함께 하는 자신의 삶엔 관심없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대프니의 삶을 바라보며 더욱 희열을 느낀다. 

오텀이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십 년 전, 낳자마자 입양을 보내야 했던 자신의 딸, 그레이스를 보기 위하여. 대프니는 그레이스를 입양했고, 그 후 두 명의 자녀를 낳아 삼남매를 키우고 있다.
 
"내가 인생에서 바라는 건 그레이스가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행복하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리고 내가 꿈꿔왔던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즐기고 있는 그레이스를 지켜보는 것이다. 이게 전부다."(p48)

오텀이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는 대프니. 대프니의 삶은 오텀이 생각하는 것처럼 진정 완벽하고 행복하기만 할까.
"나는 겉으로만 아름다운 삶 속에 사는 죄수다. 겉으로만 번지르르할 뿐 내면은 보잘것 없는 삶의 노예."(p169)

대프니는 오직 남편을 위해 그레이스를 입양했던 것을 후회한다. SNS엔 부지런히 '#엄마라서행복해요'라는 해시태그를 달아가며 사진을 올리지만, 삶은 지치고 힘겨울 뿐이다. 자신이 집의 붙박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으로 전락한 것만 같다. 

무엇보다, 대프니는 남편의 갈수록 대담해지는 불륜 행각에도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어 절망스럽다. 남편이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대프니. 고등학생이던 때 남편을 만난 이후로 대프니의 삶은 온통 그로 채워졌다.
 
"그때 난 열일곱 살, 그를 향한 내 사랑엔 논리가 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 그 사랑이 이렇게 변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서른여섯 살, 여전히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집요하고 비이성적이고 분별없는 사람이다. 아내가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육체적인 본능을 좇아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자, 나는 그런 남자의 아내로 남아 있다."(p133)

연기하는 삶

그녀를 사랑하고 아꼈던 남자는 더이상 없다. 쉴 새 없이 그녀를 기만하는 남자만이 남았을 뿐. 절망에 몸부림치던 대프니는 우연히 마약거래상 미치를 만나게 되고,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일탈을 하게 된다. 끝내려고 생각하지만 마음 뿐. 부적절한 만남은 계속 이어진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오텀. 오텀은 급기야 자신의 환상 속 완벽한 가정의 일원이 되기 위해, 대프니의 집에 아이 돌보미로 들어가게 된다. 대프니를 행복의 상징으로 바라보던 오텀과 남편의 불륜 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는 대프니의 만남. 오텀은 대프니의 삶의 실체를 보게 되고, 이야기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대프니와 오텀은 닮았다. 끊임없이 연기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이들의 거짓된 삶엔 자기 자신이 없다. 또한 이들의 지독한 자기연민은, 자신이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불행으로 치닫게 만든다. 살아가기 위해 때로 자기연민은 필요하지만, 오직 자기연민만 있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나.  

물론 여기서 밝힐 수 없는 이들의 속사정 또한 있으니, 그건 책을 직접 읽는 독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비밀로 해 둔다. 날이 제법 선선해졌지만, 아직은 여름이다. 이야기의 즐거움에 빠지며 휴가같은 주말을 보내기엔 스릴러가 제격이다. 

다만, 이야기를 조금만 더 압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한다. 그랬다면 심장이 더 쫄깃했을텐데. 이렇게 구시렁대긴 하지만, 한 번 펼친 책을 앉은 자리에서 꼼짝않고 끝까지 보았다. 분명 이 책만의 매력이 있었던 것.

문득 걱정스럽다. 내 글도 너무 길어진 건 아닌가. 자기연민과 자칫하면 늘어지는 내 원고에 대한 경계. 스릴러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장르의 소설을 펼쳐들며 기대한 바는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소득을 얻어가니, 독서란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훔쳐보는 여자

민카 켄트 (지은이), 나현진 (옮긴이),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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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