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포스터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포스터 ⓒ 영화사 진진

 
간혹 경계는 누가 만드는 걸까 생각한다. 경기도 부천에 살며 서울특별시 온수의 성공회대학교에 다녔던 나는 서울과 경기도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경험했다. 부천에서 오면서 '어서 오세요. 지금부터 서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보면 서울로 학교를 다닌다는 일종의 자긍심도 생기곤 했다. 나도 이럴진대 경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서울 사람인지 경기도 사람인지, 이곳과 저곳을 나눈다는 것은 인위적인 행위다. 자연은 무엇도 나누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서로 다름을 인지하고 차별한다. 공간을 만들며 시간을 녹여내는 디아스포라 건축가 '이타미 준'의 영화를 보자 그때가 생각났다.

일본에 살면서도 한국인 정체성 잃지 않은 건축가, 이타미 준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이타미 준'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후지산과 바다를 보며 시즈오카에서 자랐다. 하지만 어릴 적 부모님에게 배운 한국인의 자긍과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귀화하지 않고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산다는 것은 어려움과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스스로 디아스포라가 되어 살았다. 몸은 일본에 있지만 뿌리는 한국에 두며 평생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첫 째 딸의 이름은 유이화(이화여자대학교와 같은 한자, 梨花)로 지으며 한국 남자와 결혼하라 당부했다.

이타미 준이란 예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면서도 고집스러운 면모가 반영되었다. 성(姓)인 유(庾)는 일본에는 없는 한자일 뿐더러 본명으로 일본에서 활동할 수 없어 만든 이름이다. '이타미'는 그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공항의 이름이며 공항의 속성처럼 국제적이고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을 가졌다. '준'은 평소 깊은 교감을 나눈 작곡가 '길옥윤'의 마지막 글자 '윤'의 일본어 발음에서 따왔다. 즉, 자유로운 세계인이 되고자 했던 의미를 갖는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이타미 준은 스스로 이방인이라 칭하지만 한국성을 지키기 위해 한국 고건축물을 찾아다니며 여행했고, 고미술품도 여럿 모은 수집가이다. 건축가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 화가를 꿈꾸기도 했다. 부친의 반대로 건축학과에 진학했지만 꾸준히 회화 작업을 이어가며 건축과 현대미술의 접점을 찾았다.

2003년 프랑스 국립기메박물관에서 건축가이자 아시아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며 고미술품을 기증하기에 이른다. 프랑스 예술 문화훈장 '슈발리에'와 '김수근 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일본 최고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예술가이기도 하다. 태어난 나라를 떠나 살았지만 한시도 잊지 않은 고국에 대한 애착과 고민이 건축물 곳곳에 새겨져 있다.

어린 이타미 준과 노년의 이타미 준의 조우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건축 소재를 다룰 때는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 활용하고,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자연의 변화와 시간의 맛을 표현했다. 폐허가 되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건축의 숙명을 인간 생의 주기에 빗댄다. 따스한 인간미가 스며든 건축,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고 주변과의 조화를 이루는 건축, 건축주와의 교감으로 만들어낸 건축물이 이타미 준의 건축이다. 국적을 초월하며 자연의 일부이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도 버리지 않았다. 따스한 온기와 차가운 어두움을 딛고 건축 역사를 다시 썼다.

온양 미술관, 먹의 집, 바(Bar) 주주, 수. 풍. 석 미술관, 방주교회, 제주 핀크스 클럽, 포도호텔 등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 영화를 보고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빛과 어둠, 사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과 건축, 미술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하고 싶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 영화사 진진

 
영화 <이타미 준>은 그가 평생을 추구했던 신념과 건축 철학을 담은 정다운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곳에 있는 듯 생생하다. 이색적인 점은 다큐멘터리의 기본 설정을 따르면서도 어린 이타미 준과 노년의 이타미 준의 조우를 만든 재연 드라마를 삽입했다는 것이다. 이는 강과 바다 경계가 뚜렷하지 않듯 자연의 야성미와 화합을 염두에 둔 독특한 연출이다. 유지태의 사려 깊은 목소리를 통해 진한 여운은 배가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이타미준 유동룡 건축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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