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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경제 갈등 속에서 맞이한 74회 광복절은 분노 섞인 애국심을 한 층 더 고취했고 같은 날 벌어진 일본 우익 인사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잇따른 망언은 분노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한껏 달아오른 분노 때문일까,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 19일, 대전의 한 유니클로 매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남성이 물건을 사는 손님들에게 "일본 제품인데 꼭 사야 하냐"며 항의했고, 결국 이 남성은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해당 기사에 달린 네티즌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불매운동의 취지는 좋지만, 타인에게 강요한다면 이는 폭력이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불매 운동이 장기화 될수록 비슷한 갈등은 잦아질 것이다. 누군가는 일제 물건 소비를 비난하고 다른 누군가는 개인의 자유를 이야기할 것이다. 한편 국내외를 둘러싼 경제 위기론은 더욱 국민을 압박할 테고, 그 모든 상황이 모여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피로감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렇게 될까 두렵다. 

한 번 멈추어 설 필요가 있다.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돌이켜봐야 한다. 발단은 이러했다. 지난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1인당 1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장 일본은 1965년에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정'을 들어 반박했다. 한국이 대일 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에 합의했던 이 협정이 유효한 이상 피해자들은 더는 개인적인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논리다. 

반박이 통하지 않자 이번엔 협박에 나섰다.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고, 이런 한국이 과연 대북제재는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수출 우대국 명단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무역전쟁의 발단은 우리의 아픈 역사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었다. 국가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가 자국민의 억울함을 외면했던 긴 시간 동안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자력으로 증거를 모으고, 역사를 연구하고, 양심 있는 일본 변호사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긴 투쟁으로도 받아낼 수 없었던 건 1억 원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가족의 유골조차 받아보지 못한 피해자들의 호소가 여전하다. 심지어 일부 유골은 일본인 전사자들의 유골과 섞이고, 일본인으로 분류되어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를 받는 처지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꾸준히 논란이 제기되어왔는데도 일본은 "당시 일본인 이름으로 살다 희생된 사람들이므로 신사에 유골을 두는 게 당연하다"라는 망언과 "종교적인 영역(신사)에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식의 회피만을 이어왔다. 일본 정부야 그렇다 쳐도 한국 정부는 더는 자국민의 문제를 회피해선 안 된다.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국가가 자국민의 아픔을 직면하고 책임에 나선 첫걸음이다. 경제적 배상은 '이것으로 모든 것이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면죄부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사죄와 피해자 유골 수습으로 나아갈 첫 단추가 되어야 한다. 

장기화되는 불매 운동 속 국민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퇴근길을 달래주던 맥주 한 잔, 기대에 부풀어있던 여행을 포기했고 이제는 숨어있는 원산지까지 꼼꼼히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 역시 고민이 깊다. 수출 의존도가 G20국가 중 세 번째로 높은 (37.5%) 우리나라가 수출 규제로 인해 받게 될 타격은 불가피하다. 워낙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경제 갈등 속에서 문제를 해쳐나갈 갈피를 잡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개인의 불편과 국가의 경제적 타격을 모두 감안하면서 되찾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볼 때다. 우리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길 원했고 그로 인해 국가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원했다. 좋아하는 맥주를 내려놓는 이유, 수출 타격으로 인한 장기 침체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 순간에도 대법원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적을 잃지 않는 싸움은 결코 질 낮은 보복전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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