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스페셜 > '속터지는 엄마, 억울한 아들'

< SBS 스페셜 > '속터지는 엄마, 억울한 아들' ⓒ SBS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아들만 둘을 키웠다. 이런 기자를 보고 주변 사람 대다수는 '딸이 없어서 어떻게 해요'라며 혀를 찼다. 마치 세상에 행복한 순간을 놓쳐버린 사람을 보듯이 말이다. 18일 방송된 < SBS 스페셜 > '속터지는 엄마, 억울한 아들'을 보면 아들을 키우는 일은 요즘 말로 '헬(지옥)'이다 싶다. 

방송에 따르면 슬하에 아들을 둔 엄마들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아들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한 엄마가 무려 응답자의 85%에 달했다. 심지어 83%의 엄마가 아들을 키우면서 우울감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들이 뭐기에,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일까? 

충남 천안의 박효선씨네는 9살, 8살, 6살 아들 셋을 키운다. 엄마의 생일날, 아빠가 마련한 편의점표 미역국과 아들들의 우렁찬 생일축하 노래로 파티가 시작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엄마가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끈 지 10분도 되지 않아 난리가 났다. 아들들은 서로 자기가 생일 케이크를 자르겠다고 떼를 쓴다. 한 아이가 자른 케이크 모양이 흐트러져서 먹지 않겠다고 해서 달래 놓으면, 다른 한 명이 방에 가서 울고 있고... 결국 으르고 달래다 남편 말로 '포악'해져야만 아들들은 좀 잠잠해진다. 정작 생일을 맞은 엄마 입엔 케이크 한 입 들어갈 틈이 없다.

목동의 주한이 엄마는 딸 둘에 아들 주한이를 키운다. 그런데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은 엄마가 한 번 말하면 해야할 일, 준비할 물건을 잘 챙기는 반면 두 살이나 위인 3학년 주한이는 그렇지 못하다. 당장 학원에 가야 하는데, 학원 숙제를 잊어버리는 건 기본이고 다음날 등교를 위한 가방 준비 또한 당연히 엄마 몫이다. 겨우 공부 좀 하라고 방으로 들여보내지만, 귀는 거실에 있는 가족들의 대화를 듣느라 여념이 없다. 당연히 공부를 끝내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경기도 남양주시 연년생 윤이 형제를 키우는 김수정씨라고 다를까. 큰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초코과자를 먹고 싶다고 엄마를 조르고, 엄마는 준비한 아침을 먼저 먹어야 한다고 맞서지만, 결국 눈물 투쟁을 벌인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낸다. 마음이 약한 엄마와 엄마가 자신의 눈물에 약하다는 걸 아는 여섯 살 아들의 싸움의 승자는 언제나 아들이다.

아들과 엄마,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 SBS 스페셜 > '속터지는 엄마, 억울한 아들'

< SBS 스페셜 > '속터지는 엄마, 억울한 아들' ⓒ SBS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아들을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가방, 일기장, 핸드폰까지 뭐든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되는 부족한 존재이며, 그래서 손이 많이 가는 대상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도대체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 엄마들은 입을 모아 한 마디로 아들을 정의 내린다. 아들은 '비글'이라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애초 아들이 엄마의 말을 잘 못알아듣는 존재로 태어난 것일까? 아니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가정 버전'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저 '내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의 틀에 아이를 무조건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방송에 나온 전문가들은 엄마 역시 '여성'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이 '존재'로써 반응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우선 남성과 여성이 다른 이유는 뇌량의 차이 때문이다. 아들은 흔히 엄마들이 하는, "밥먹고 들어가서 문제 풀고 책가방 싸고 독서 해라"는 식의 '지시'를 수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딸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신경 다발인 뇌량이 넓어 한꺼번에 다양한 정보를 수용하기 쉬운데 반해, 아들은 가늘고 길어 한꺼번에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는 이른바 '멀티'가 어렵다고 한다. 

또한 대뇌 피질의 성격 자체가 아예 다르다. 남성이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나 논리적인 접근이 쉬운 반면, 여성은 언어적 학습적 능력이 뛰어난 공감적 반응에 우수하다는 것이다.

방송은 이런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실제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남자 초등학생 3명과 여자 초등학생 3명, 총 6명과 함께 문래동의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향한다. 선생님과 함께 떠난 길, 선생님은 계속 아이들의 주의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주변부로 관심을 돌리며 종착지에 도착한다. 거기서 부터 남자 아이들 그룹과 여자 아이들 그룹으로 나뉘어 출발지를 찾아가도록 한다. 

물론 남자 아이들도, 여자 아이들도 원래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판이하다. 여자 아이들이 출발과 동시에 자신이 어떤 길로 왔는지 헷갈려하며 이 길 저 길 찾아보며 혼란스러워 하는 것에 반해, 남자 아이들은 자신이 왔던 길을 정확하게 기억해내며 쉽게 출발지에 도착했다.  

공간 감각 능력, 공간 지각 능력이 높은 남자 아이들에게 유리한 미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방송은 왜 남자 아이들이 길을 잘 찾는가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남자 아이들은 주변 환경에 대해 '시각'으로 지각을 하기에 여자 아이들보다 길을 잘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오는 과정에 있었던 풍경에 대한 기억도 훨씬 상세하다. 반면 여자 아이들은 '청각'적 자극에 더 예민했다. 오는 과정에 친구와 통화를 했던 내용에 대해 남자 아이들이 무심하게 반응한 것과 달리 여자 아이들은 그 세세한 내용과 함께 선생님의 감정적 상태까지 기억한다. 언어적 공감 능력이 좋았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결과물이다. 

전문가는 말한다. 남자 아이들은 청각적 예민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대화의 상호 작용도 떨어진다. 이 때문에 '엄마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라는 엄마들의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엄마는 연속적으로 이야기하지만 그게 한 번에 '접수'되지 않고, 결국 엄마가 '감정적'으로 폭발할 상황에서야 '메시지'가 전달되며 '엄마가 나를 미워하나?'라는 오해를 하기가 십상이란다. 

나와 다른 아들을 이해하는 방법  
 < SBS 스페셜 > '속터지는 엄마, 억울한 아들'

< SBS 스페셜 > '속터지는 엄마, 억울한 아들' ⓒ SBS

  방송은 '엄마 수업'을 통해 나와 다른 특성을 지닌 아들에 대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흔히 아들이니 무조건 신체적 놀이만 하면 되겠지 하는 엄마에게 '신체 놀이'와 '대화 놀이'의 균형을 제시하고, 무엇보다 놀이 과정에서의 '대화'와 '소통'에 집중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남자 아이들은 규칙을 따르는 것에 익숙하니, 규칙을 세분화 하여 미리 정하고 협상을 통해 갈등을 줄여나갈 것을 제시한다. 더불어 남자 아이는 산만하다고 탓하기 전에, 시각적 자극에 취약한 특성을 잘 이해하고 파악해 시각적 유혹의 여지를 줄여나갈 것을 권한다. 

방송에서 제시한 지침을 따른 앞서의 문제 가정들은 한결 평화롭고 행복한 모자 관계의 단초를 마련한다. 하지만 어디 '가정' 뿐일까?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 특히 초등학교에는 여자 선생님들이 대부분이다. 그곳에서 남자 아이들은 산만하고 말 안 듣는 문제아가 되기가 십상이다. 

멀쩡한 남자 아이들을 사람 속 터지게 만드는 문제아로 만드는 사회. 어쩌면 이와 같이 여성과 남성에 대한 오해를 걷어내는 일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젠더 갈등을 푸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다큐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 졌다. 엄마가 원하는 건 소통일까?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일까? '엄마 수업'의 목표는 나와 다른 아이에 대한 이해일까? 엄마 말에 따라 문제도 성실하게 푸는 공부 잘하는 아이일까? 혹여 '규격'에 맞지 않는 남자 아이들을 아파트 숲의 환경에서 잘 길들이는 방식을 가르치기 위한 '엄마 수업'은 아닐까? 왠지 좀 씁쓸함이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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