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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6월 1일 오전 11시 15분]

줄거리가 아닌 마음을 읽는 책이라는 흐름으로 책이야기를 풀어 봅니다. 어린이는 어떤 마음인가 하고 헤아리면서, 어린이 시집 세 가지를 나란히 읽고서, 이 세 가지에 흐르는 마음을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따사로운 길을 읽는 마음, 갑갑한 어른과 어버이 곁에서 고단한 마음, 즐겁게 놀고 싶은 마음, 어서 다른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갖가지 마음을 어린이가 손수 쓴 시에서 새삼스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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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시집 ㄱ

- 민들레는 암만 봐도 예뻐
 울산 아이들
 전국초등국어교과 울산모임 단디 엮음
 삶말
 2018.3.15.


있는 그대로 쓰는 글이기에 더 낫거나 좋지는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쓰는 글은 오롯이 "있는 그대로"입니다. 생각을 그대로 쓰든, 생각을 지어서 쓰든, 생각을 펼쳐서 쓰든 매한가지예요. 어느 쪽이 낫지도 좋지도 않아요. 결이 다른 글이요, 쓰임새나 자리나 느낌이나 맛이 다른 글일 뿐입니다.

어린이도 얼마든지 생각날개를 펴서 글을 쓸 만합니다. 꿈에서 본 이야기를 살려서 쓸 만합니다. 앞으로 이루고픈 일을 쓸 만합니다. 눈으로 본 모습이 아닌 마음으로 본 모습을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랑이나 노래나 웃음이나 눈물로 본 모습을 쓸 수 있습니다.

<민들레는 암만 봐도 예뻐>에 흐르는 어린이 노래꽃을 지켜봅니다. 울산 어린이는 울산이란 터에서 어버이를 만나고 동무를 사귀는 나날을 누리면서 노래 같은 꽃을 한 줄씩 적습니다. 때로는 길게 때로는 단출히 저희 마음을 밝힙니다. 있는 그대로 쓰기도 하고, 살살 꾸며서 쓰기도 합니다.

그때그때 흐르는 마음을 사랑하면서 씁니다. 암만 봐도 예쁘고, 암만 봐도 밉습니다. 암만 봐도 아프고, 암만 봐도 사랑스럽습니다. 이 마음을 어린이 스스로 살리도록 곁에서 북돋우는 어른(교사와 어버이)이 차근차근 늘면 좋겠습니다. 모든 노래는 우리 가슴에서 씨앗으로 있습니다.
 
토요일이면 엄마는 직장에 간다. / 엄마는 힘들다. // 일요일에는 청소하고 쉬는데 아빠가 / 잔소리해서 엄마는 힘들다 // 아빠는 토요일마다 청소 / 나와 형은 설거지하면 엄마는 덜 힘들까? (엄마는 힘들다, 청솔초 4년 김도환/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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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시집 ㄴ

- 내 마음이 우르르르 흘렀다
 평택 아이들 104명
 다섯수레 엮음
 삶말
 2018.12.5.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빈틈없이 가눌 줄 아는 어린이가 드물게 있습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엉성하기도 하지만, 아직 한글을 잘 읽지 못하기도 하고, 제 뜻이나 생각을 한글로 담아내기 어려운 어린이가 무척 많습니다.

어른은 어떨까요? 우리는 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살펴야 할까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보다는, 글에 담을 이야기를 살필 노릇 아닐까요? 먼저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살짝 손질해 줄 일이라고 느낍니다. 또는 사투리로 여겨 가볍게 지나가 주어도 됩니다.

<내 마음이 우르르르 흘렀다>는 평택 어린이 이야기가 흐르는 동시집입니다. 아이들은 입으로 말하듯 홀가분하게 글을 씁니다. 때로는 글씨가 틀리고, 때로는 띄어쓰기가 어긋납니다. 그러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ㄱ이나 ㄲ 받침을 틀린들, ㅅ이나 ㅊ을 가리지 못한들, 무엇이 대수롭겠습니까.

어른도 매한가지예요. 어른도 맞춤법이며 띄어쓰기를 얼마든지 틀릴 만합니다. 한글을 못 읽어도 되어요. 입으로 말을 술술 하면 넉넉하고, 스스로 살아낸 이야기하고 살아갈 꿈을 신나게 들려주면 아름답습니다. 우르르르 마음이 흐릅니다. 쏴르르르 마음이 물결칩니다. 화르르르 마음이 타오릅니다.
 
학교 끝나고 / 차에서 엄마가 말했다. / "오늘은 저녁으로 피자 먹자." /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 마음껏 먹으라 해놓고선 / 왜 이렇게 많이 먹냐고 했다. / 그래도 좋다. (운수 좋은 날, 죽백초 4년 손형주/24쪽)

걸어가는데 벚꽃을 봤다. / 벚꽃은 아주 힘든 과정을 거쳐서 피는데 / 겨우 일주일밖에 못 산다. / 벚꽃에게 힘을 돋우어 주고 싶다. (벚꽃, 죽백초 4년 이지성/27쪽)

내 시험지에 빨간 비가 내리면 / 생각나는 / 엄마 // 오늘은 / 집에 / 늦게 들어가야겠다. // 엄마한테 / 혼나기 전에 / 놀다 가야겠다. (시험지, 평택이화초 5년 서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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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시집 ㄷ

- 치마가 짧아서 심장이 벌룽벌룽

 전국초등국어교과 전주모임 봄동
 삶말
 2019.6.1.


아이들은 두 가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씁니다. 첫째, 어느 누구 눈치를 살피지 않고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펴고 글을 짓습니다. 둘째, 둘레 눈치를 잔뜩 살피면서 둘레에서 바라는 목소리를 마치 흉내를 내듯이 꾸역꾸역 따릅니다.

지난날 반공웅변이나 새마을웅변은 어린이 목소리를 짓밟는 끔찍한 얼개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입시가 단단히 서고, 초등학교조차 학원이라는 짐이 짓누르니 아이들이 다시금 힘겨워요. 우리는 언제쯤 환하게 노래하는 어린이 놀이가 피어나는 글을 마주할 만할까요?

<치마가 짧아서 심장이 벌룽벌룽>를 읽습니다. 전북 전주에서 뜻있는 교사하고 글꽃을 피우는 어린이 목소리가 흐릅니다. 이 책에 깃든 어린이 목소리를 듣노라면, 어른들 눈치를 살핀 글이 더러 나오지만, 어른들 눈치를 아랑곳하지 않는 홀가분하며 씩씩한 글이 꽤 많습니다.

우리는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지 싶어요. 아이들이 바라는 놀이를, 삶을, 나라를, 꿈을, 기쁜 웃음을, 동무랑 어깨를 겯고서 즐겁게 나아갈 길을 곱게 그려 나갈 수 있기를 빌어야지 싶어요. 아이들은 노리개도 아니지만 톱니바퀴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아이입니다. 새로 피어나고 싶은 숨결입니다. 우리 어른은 '새로 피어나고 싶은 숨결'로 태어나서 '새로 피어나고 싶은 숨결'을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입니다.
 
내가 배 안에 갇혀있다면 / 엄마 생각도 하고 / 아빠 생각도 하고 / 동생 생각도 하고 / 언니 생각도 하고 / 친구들도 생각하고 // 배 안에 / 갇힌 사람들도 / 그랬을까? (생각-이주하, 장승초 6년/59쪽)

우리 아빠는 맨날 / 중학생, 중학생 한다. / "중학생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 공부 공부 공부 / 그딴 공부 / 개나 줘버렸으면 좋겠다. (중학생-류진, 진앙중앙초 6년/69쪽)

연구발표회를 한다고 / 학교 청소를 사흘이나 했다. / 유리창 닦는 것만 이틀을 했다. / 당일이 되니까 선생님들도 / 180도 바뀌었다. / 갑자기 친절해 지셨다. /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나? / 웃기면서도 신기하다. (청소-민진홍, 송풍초 6년/81쪽)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내 마음이 우르르르 흘렀다

다섯수레 (엮은이), 삶말(2018)


민들레는 암만 봐도 예뻐

단디 (엮은이), 삶말(2018)


치마가 짧아서 심장이 벌룽벌룽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봄동 (엮은이), 삶말(2019)


태그:#어린이시집, #동시집, #글쓰기, #마음을읽는책, #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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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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