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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오랫동안 지키며 살아온 섬사람들. 과학기술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섬살이를 해오고 있다. 김준 실장은 그것을 '경험'이라 했고, 경험은 과학보다 앞선다고 했다.
 섬을 오랫동안 지키며 살아온 섬사람들. 과학기술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섬살이를 해오고 있다. 김준 실장은 그것을 "경험"이라 했고, 경험은 과학보다 앞선다고 했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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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너무 좋습니다. 섬의 모습은 변하더라도 섬마다 고유한 특징이 잘 살아 있어요. 그 점이 좋아요. 섬의 고유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섬이 지닌 가치를 다른 사람들, 특히 도시민과 나누고 싶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섬을 지키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고요."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문화관광연구실장의 얘기다. 김 실장이 〈섬문화 답사기〉를 쓰는 이유다. 그의 〈섬문화 답사기〉는 모두 8권으로 기획돼 있다. 그 동안 '신안편', '여수·고흥편', '완도편'을 낸 데 이어 '진도·제주편' 발간을 앞두고 있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문화관광연구실장이 그동안 펴낸 3권의 〈섬문화 답사기〉 표지. 그의 〈섬문화 답사기〉는 모두 8권으로 기획돼 있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문화관광연구실장이 그동안 펴낸 3권의 〈섬문화 답사기〉 표지. 그의 〈섬문화 답사기〉는 모두 8권으로 기획돼 있다.
ⓒ 보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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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섬과 바다, 섬사람과 어민들의 속내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아요. 육지의 눈과 생각으로 재단을 하잖아요. 그때 정말 화가 납니다. '바다를 멀리해라', '물을 조심해라'는 말도 그렇고요. 삼면이 바다이고 물과 바다와 친하게 지내며 미래가치를 만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멀리 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 3일 기자와 마주한 김 실장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는 기성세대들이 말로는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이라고 하면서도, 무한한 가치를 지닌 섬과 바다를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기술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게 섬살이입니다. 섬살이는 경험이고, 과학보다 앞선 것이 경험이에요. 섬에는 오랫동안 섬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이상 섬과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섬지기들이죠. 이 분들의 섬살이는 과학보다 앞선 경험이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면서 만든 독특한 문화입니다."

현대인에게 섬문화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자 돌아온 김 실장의 답변이다.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받는 세상에서 "오랜 세월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섬지기들의 이야기가 생명 존중과 자연보호를 외치는 현대사회에 긴요한 지혜를 선물해 줄 것"이라는 얘기다. 그가 섬문화를 기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은 김준 실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섬 자체가 민속이요, 사람이 보물입니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실장. 그의 일상은 섬을 드나듦이다. 더 많은 섬과 섬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한테 하고 싶어 한다. 그가 〈섬문화 답사기〉를 쓰는 이유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실장. 그의 일상은 섬을 드나듦이다. 더 많은 섬과 섬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한테 하고 싶어 한다. 그가 〈섬문화 답사기〉를 쓰는 이유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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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에 들어가는 일을 일상으로 삼고 있는데요. 보통 섬 여행은 번거롭고 불편하다는 선입견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어려운 점은 없는지?
"시간입니다. 섬의 시간은 뭍의 시간과 달라요. 섬은 바다의 영향을 받잖아요. 섬사람들의 일상은 밀물과 썰물, 물때에 따라 달라져요. 이 분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바다의 시간에 맞춰야 합니다. 다른 어려운 점은 없어요."

- 네 번째 〈섬문화 답사기〉 발간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진도와 제주를 한데 묶은 이유가 무엇인지?
"인천에서 시작된 뱃길이 서해안을 따라 내려와 진도 서쪽 조도군도를 지나 제주도로 이어집니다. 목포에서 시작되는 뱃길도 진도와 해남 사이 울돌목을 지나 제주도로 이어지고요. 옛날에도 그 뱃길은 유효했어요. 뱃길만이 아니죠. 삼별초부터 근현대사로 이어지는 질긴 끈이 있었어요. 쌀과 소금이 부족한 제주에서 미역과 귤을 가지고 들어왔던 곳도 진도, 해남, 완도였으니까요."

- 진도와 제주만의 매력을 꼽는다면?
"진도는 민속의 보고입니다. 씻김굿, 다시래기, 만가, 남도들노래 등이 마을과 골목에서 불리는 곳입니다. 죽은 자를 불러 산 자를 해원케 하는 진도씻김굿의 지혜도 바다에서 태동한 것이고요. 진도의 민속과 소리가 감동을 주는 이유입니다. 조도의 다도해는 짭조름한 미역을 먹고 사는 섬이고요.

제주도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제주해녀, 세계농업유산 밭담, 오래된 포구와 원담, 집안에 들여놓은 우영팟, 몸국 등 제주인의 삶과 지혜가 끝이 없습니다. 제주의 속살과 가치에 공감하고 싶었어요. 돌, 물, 한라산, 오름, 바다, 음식 등에 제주사람들의 아픔과 기쁨까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와 문화를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바다와 섬의 시간에 맞춰 사는 섬사람들. 섬의 시간은 뭍의 시간과 달리 바다의 영향을 받는다. 섬사람들의 일상은 밀물과 썰물, 물때에 따라 달라진다.
 바다와 섬의 시간에 맞춰 사는 섬사람들. 섬의 시간은 뭍의 시간과 달리 바다의 영향을 받는다. 섬사람들의 일상은 밀물과 썰물, 물때에 따라 달라진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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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진도만의 가치와 문화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한국민요를 대표하는 아리랑, 그 가운데 '진도아리랑'은 그 자체로 민중시입니다. 민족 음악이며 민속 음악이죠. 섬사람의 삶을 잘 표현해 남도 전체의 민요를 상징하기도 하고요. 진도는 많은 예인들과 무형문화재를 배출한 곳입니다. 진도는 간척지가 많고 육지 농사가 많이 행해지고 있어 '섬 같지 않은 특징을 지닌 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진도문화의 기저에는 바다가 있고, 섬만의 독특한 소리와 문화가 전승되고 있죠. 섬 자체가 민속이요, 사람이 보물입니다. 진도를 '민속의 원형' '보배로운 섬'이라고 부르는 이유죠."

- 진도의 많은 섬 가운데, 하나만 소개한다면 어디를?
"소마도.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작은 섬입니다. 하지만 농사지을 땅이 충분하고, 이웃 섬에까지 나눠줄 만큼 충분한 물을 보유하고 있어요. 섬사람들에게는 논밭보다 소중한 갱번(갯바위)도 좋은 곳이죠. 미역 공동작업을 하면서 생계를 잇고 있는 섬입니다. 쑥도 가득한 섬입니다."
   
- 제주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비양도 얘기를 해볼까요. 큰 화산암에 새겨진 '천년기념비'가 반기는 섬인데요. 해안도로에 보행기가 늘어서 있더라고요. 아이가 아닌, 물질하는 잠녀들이 이용하는 보행기였습니다. 보행기가 제주 해녀들의 저승과 이승을 이어주고 있더라고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주도의 많은 섬 가운데서도 외지인 때문에 생긴 몸살을 가장 늦게 앓은 곳이죠. 제주다운 섬이었고, 그래서 제 마음에 남아 있는 작은 제주였습니다.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섬사람과 만나는 김준 실장. 그는 틈나는 대로 섬을 찾아다니며 섬과 섬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섬사람과 만나는 김준 실장. 그는 틈나는 대로 섬을 찾아다니며 섬과 섬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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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만의 독특한 섬살이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제주의 마을사를 보면,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공동체 문화를 곳곳에서 엿볼 수가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서귀포의 대평리 '케매기 문화'와 사계리 '베늘 문화'입니다. 제주의 말과 소는 방목을 하잖아요. 그래서 쉽게 밭, 묘지, 집 등을 넘나들곤 했는데요. 대평리처럼 담 쌓을 돌을 구하기 쉽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공동으로 '케매기'를 조직했어요. 밭이 잘 보이는 곳에 관리 망대를 만들고 '켓집'이라는 관리인을 둔 겁니다.

베늘 문화에서도 제주만의 공동체 문화가 보여지는데요, 모래밭이나 사구에서 자라는 순비기나무는 그물망처럼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모래를 붙잡는 역할을 하죠. 여기에 '베늘'을 세워서 마을의 순비기나무 지역을 공동으로 관리합니다. 제주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죠."

- 끝으로, 〈섬문화 답사기〉를 쓰는 이유는?
"섬지기들은 나이가 많습니다. 운이 좋아서 자식이 대를 잇기도 하고 새로운 섬지기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해요. 이 분들은 외래종이 넘치는 세상에서 섬문화를 지키는 씨앗 같은 존재입니다. 섬지기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섬문화도 함께 사라지고 있어요. 섬의 이야기와 문화를 보존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섬주민들로부터 제가 받은 무한한 은혜에 대한 작은 보답이기도 하고요."
  
김준 실장의 일상은 바다와 섬에 맞춰져 있다. 가는 곳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섬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김준 실장의 일상은 바다와 섬에 맞춰져 있다. 가는 곳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섬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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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문화 답사기 2권 세트 - 전2권 - 여수 고흥편 + 신안편

김준 지음, 서책(2012)


태그:#섬문화답사기,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살이, #진도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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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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