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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 '마이 플레이스'를 벗어나,바람 좋은 강변 식당. 코사모이, 코팡안으로 향하는 여객선 선착장 옆에 있다.
▲ 찜질방 "마이 플레이스"를 벗어나,바람 좋은 강변 식당. 코사모이, 코팡안으로 향하는 여객선 선착장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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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 모크 국제 수행림은 태국 남부의 여행 관문 도시인 '수랏타니(Surat Thani)'에서 53km 떨어진 곳에 있다. 1989년 문을 연 이곳은 매월 1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어로만 진행하는 10일간의 명상 집중 코스를 제공하고 있다.

코스 시작일이 열흘이나 남았지만 나는 방콕에서 12시간 걸리는 수랏타니행 기차에 후다닥 몸을 실었다. 지난 번 센터에 찾아갈 때 생고생한 탓도 있지만 최소 여행 경비로 두 달을 버티려니 체류비가 적게 드는 남쪽을 택한 것이다.

기차가 수랏타니역에 닿자 객차마다 외국인 여행자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와 기차역 앞에 즐비한 코사무이, 코팡안으로 실어다주는 전세 버스에 올라탄다. 나도 그들처럼 멋진 섬과 바다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가격 착하고 평점 좋은 시내 한 게스트하우스에 정박한 채 9일간을 보냈다.

좋은 사람들의 도시

마이 플레이스 호텔 4층 객실은 섬을 오가는 하룻밤 배낭 여행자들로 가득하다. 착한 가격 때문인데 비밀은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다. 200바트(약 7000원)짜리 이 방은 새벽과 아침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찜질방으로 변한다.

아침은 바나나 한두 개로 때우고 점심으로 40바트(1570원)짜리 식사를 하고 노점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지출을 줄였다. 후끈한 방은 물에 적신 목욕 수건을 이불로 사용하여 견뎌냈다.

하지만 밤이면 밤마다 야시장의 숯불꼬치구이와 창(Chang, 태국 맥주)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돈이면 에어컨 빵빵한 방에서 쉬거나 맛나는 요리를 먹을 수 있는데 이런 멍텅구리가 어디 또 있을까.
 
무료로 음식을 나누는 화교 행사. 화교들의 입지와 친화력이 돋보였다.
▲ 무료로 음식을 나누는 화교 행사. 화교들의 입지와 친화력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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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2만의 수랏타니는 이름 뜻 그대로 '좋은 사람들의 도시'였다. 사람도 차도 적절하여 번잡하지 않았다. 아침 시장은 사고파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대지와 강, 바다가 내어준 풍요로운 재료는 밤마다 열리는 야시장의 산해진미로 변신한다. 한낮의 열기가 식은 뒤 열리는 야시장은 태국 사람들에게 최고의 낙인 듯했다. 집에 주방 시설이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친구, 연인, 가족들이 야시장 먹거리를 즐긴다.

야시장 중앙에는 사원이 하나 있는데 입구와 경내에서 버젓이 새우구이와 닭꼬치를 팔고 있다.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어야 정신적인 삶도 모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아침 시장의 생계는 야시장의 생계로 이어진다. 서로가 서로의 생계를 도우며 선순환하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따삐강변 공원에는 함께 어울려 춤추고 운동하고 놀이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여기 시민들은 그렇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건강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매일 저녁 함께 어울려 집단 군무를 즐기는 시민들. 춤은 단순하고 음악은 경쾌해 지나가면 절로 흥이난다.
▲ 매일 저녁 함께 어울려 집단 군무를 즐기는 시민들. 춤은 단순하고 음악은 경쾌해 지나가면 절로 흥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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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드는 외국인, '명상 휴양' 붐을 확인하다

1월 31일 등록일에 맞추어 미니버스를 타고 수안 모크로 갔다. 학교 숙제로 견학가는 여학생들과 나와 목적이 같은 미국, 독일 남자 둘이 동석했다. 국제 수행림(International Dharma Hermitage)은 수안 모크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연간 1000여 명의 외국인이 10일 집중 수행 코스에 참가한다. 국제 수행림은 근현대 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선사 아잔 붓다다사(1906~1993)의 외국인 제자들이 머물던 꾸띠(kuti, 작은 토굴)가 있던 곳이다.

등록을 받는 식당채에는 어디서 몰려왔는지 외국인들로 한가득이다. 친구, 연인, 부부 등 짝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종교가 아닌 영성(spiritual)을 찾고 명상 휴양하는 요즘 서구 젊은이들의 트렌드가 엿보였다.

이곳은 등록비로 2000바트(한화 약 7만원)를 먼저 내야 한다. 함께한 인원은 150여 명, 남녀성비는 반반, 국적은 다채롭다. 대부분 젊은 초급자들이고 일부 나이든 숙련자들도 눈에 띄었다.

여기는 스님과 재가자 선생님들이 함께 명상하고 법을 가르친다. 완전 채식의 하루 두끼 식사와 5계, 묵언을 기본으로 지키며 좌선(가부좌 하고 정신에 집중하는 수행)과 행선(가볍게 걸으며 하는 수행)을 병행하고 매일 아침 한 시간 반 요가 수업도 있다. 하루 일정은 빼곡하지만 식사 후 휴식 시간에는 독서를 하거나 천연 노천 온천에서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등 규율은 엄격하지 않다.
 
등록일, 오리엔테이션 시간. 이날 저녁부터 10일간 묵언을 지켜야 한다.
▲ 등록일, 오리엔테이션 시간. 이날 저녁부터 10일간 묵언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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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만 평이 넘는 숲속, 거대한 열대 나무들 사이에 지어진 명상홀에서 하루만 머물러 보면 왜 CNN이 세계 10대 명상센터 중 한 곳으로 이곳을 뽑았는지 쉽게 알게 된다. 메인 명상홀은 2중 지붕에 벽이 없다. 열기는 막고 바람은 잘 통하게 설계한 것이다. 이곳의 건물들은 꾸밈 없고 목적에 맞게 지어졌다.

잡음이 들리지 않는 고요한 명상홀에서 떠오르는 아침해, 한낮의 새소리, 그리고 저녁이면 울려 퍼지는 풀벌레의 합창과 반딧불이가 펼치는 빛의 공연, 손에 잡힐 듯 쏟아지는 별빛을 보고 듣고 있노라면 명상과 휴양을 함께 누리는 기분이 절로 든다. 명상 휴양지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곳이다. 자연 속에서 내면의 본성(Nature)을 찾기에 이렇게 좋은 환경이 또 있을까 싶다.
 
매일 아침 연못으로 모여 뜨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하는 명상가들. 말없이 천천히 걷고 멈추며 지금 이순간을 음미한다. 초세속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 상태 이지만 때론 장소도 중요한 듯 하다.
▲ 매일 아침 연못으로 모여 뜨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하는 명상가들. 말없이 천천히 걷고 멈추며 지금 이순간을 음미한다. 초세속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 상태 이지만 때론 장소도 중요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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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요가 수업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는 중국계 미국인이 가르쳤는데 만족도가 높았다. 그는 요가와 태극권을 버무려 '휴식의 무브먼트 요가'를 선보인다. 수업의 3분의 1은 격하지 않게 움직이고, 3분의 2는 누워서 쉬며 몸의 변화를 관찰한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긴장된 마음과 뭉쳐진 다리 근육들이 풀렸다. 나는 이 요가를 '해장 요가'라 불렀다.

87세 노선사와 하루 두 번, 두시간씩 함께 명상을 했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날이 갈수록 좌정한 어른의 모습은 그 자체로 경외감이 들었다. 평생 간결하고 청정하게 살아온 노장은 그렇게 침묵으로 평정심의 경지를 가르치고 감화를 주었다.

어른의 젊은 수제자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미들 웨이(middle way), 중도를 강조한다. 좌선 자세는 너무 타이트하지도 너무 루즈하지도 않게 하고 눈은 반쯤 뜨고 숨은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중간쯤으로 쉬라고 한다. 너무 길거나 짧게 쉬다가는 다음 숨을 영영 못 쉴 수도 있다며.

명상을 방해하는 두 가지
 
차를 마시며 독서를 하시는 노선사 아잔 포. 영문판 코스모스를 조그마한 영어 사전을 옆에 두고 읽어신다. 이곳의 가풍이 보인다.
▲ 차를 마시며 독서를 하시는 노선사 아잔 포. 영문판 코스모스를 조그마한 영어 사전을 옆에 두고 읽어신다. 이곳의 가풍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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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명상(meditation)과 의학(medicine)은 어간(medi)이 서로 같다. 명상은 자신에게 박힌 독화살(삼독: 욕망, 화, 어리석음)을 스스로 뽑아내는 자가 치유술이라고 볼 수 있다.

붓다다사 선사는 고대로부터 전해진 이 치료법을 자신의 저서 <아나빠나삿띠>에 세밀하게 밝혀 놓았다. 먼저 수행자의 기질을 여섯가지(욕망형, 분노형, 무지형, 맹신형, 지성형, 사변형)로 구분하였고 40가지의 명상 주제 중 각 기질에 맞는 명상 주제를 일러준다. 하지만 40가지 주제 중 가장 기본이며 가장 뛰어난 들숨 날숨에 마음을 집중하는 '아나빠나삿띠'를 모두에게 권한다.

치료는 몸, 느낌, 마음, 법칙, 네 단계로 나누고 각각 네 단계씩 더해 16단계로 풀어 놓았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아나빠나삿띠의 첫 번째(몸의 관찰) 네 단계는 수식(數息), 상수(相隨), 접촉, 고정이다.

수식은 호흡이 긴지 짧은지를 숫자를 붙여 측정하는 것이며 상수는 호흡이 들어오고 나갈 때 코끝, 가슴, 배 순으로 마음이 호흡을 따라가는 것이다. 접촉은 코끝에 호흡이 닿는 지점에 집중하는 것이고 고정은 접촉에 대한 마음 집중이 완전히 성취되어 집중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멈추는 상태다.

하지만 여기 닿기까지 수많은 방해요인을 만난다. 산만함, 기대, 갈망, 망각, 태만, 흥분 등은 마음이 불건전한 상태에서 일어난다. 명상 중 가장 힘든 장애는 잡념인데, 대부분 이미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과거는 마음을 산만하게 만들고, 미래는 마음을 동요하게 한다. 과거의 대상들은 과거의 인상 또는 인식에 의존해서 나타나고, 미래의 대상들은 느낌과 일으킨 생각에 의존해서 나타난다. 마음에서 마음의 불건전한 상태를 제거하려면 두 가지 방법, 즉 의지력과 지혜로운 이해를 이용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집중 대상에 향하게 하고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느낌 등 뒤엉킨 생각들은 모두 실체가 없는 무상하고 고통스러운 것임을 지혜롭게 고찰하라는 것. 이렇게 마음의 기능들이 강화될 때 수행자는 열의, 정진, 지혜 등이 성취되고 마음은 완전히 정화된다고 붓다다사 선사는 말한다.

읽고 쓰는 것도 금지... 깊은 침묵과 더없는 경건함

힘겨운 3일이 지나고 익숙한 일주일이 흐른 뒤, 9일째는 대침묵의 날이다. 책읽기, 글쓰기도 금지되고 식사는 아침 한끼만 먹는다. 여성 리더는 이것은 '브라흐마차리야'를 실천하는 것으로 "금욕을 통해 에너지를 높은 차원에서 사용하는 것"이라 했다. 이날 밤 명상홀은 깊은 침묵과 더없는 경건함으로 오묘한 조화가 넘쳤다.

나는 10일간 행선은 하지 않고 좌선만 하며 호흡의 접촉 지점을 맹렬히 관찰하는 훈련을 했다. 그러나 내 정신은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좀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전투만 치렀다. 10일째 오후 4시, 모든 명상 스케줄이 끝나기 30분 전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으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지점이 선명하게 관찰됐다. 잡념은 여전했지만 집중하지 않아도 저절로 접촉 지점과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이제야 막 시작점에 닿은 듯한데 아쉽게도 집중 수행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코스를 마치고 다시 수안 모크에서. 명상의 16단계를 초, 중, 고, 대로 나눈다면 우리는 초급생들일 것이다.
▲ 코스를 마치고 다시 수안 모크에서. 명상의 16단계를 초, 중, 고, 대로 나눈다면 우리는 초급생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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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저녁 침묵이 해제되고 그동안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뒤풀이 자리가 열렸다. 다들 얼마나 할 말이 많던지, 그리고 얼마나 웃기던지 울며 웃으며 자신들의 사연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마치 아카데미 시상식 때 상을 탄 배우처럼 가르침을 주신 스님과 선생님,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실수와 힘겨움 그리고 행복감 등 인생 희로애락을 10일 만에 다 느낀 듯했다. 그들의 진솔한 자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곳을 두 번째 찾은 이들도 많았다. 등록일 날 나와 동행했던 미국 친구를 비롯한 몇 명은 몇 해 전에 왔다가 2~3일 만에 도망갔다고 한다. 70대 프랑스인 부부, 이태리인 부부는 20여 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고 했다. 한 여성은 명상이 자신을 치유하는 치료제가 되어주었다고 기뻐했고 한 남성은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을 배웠다며 친구와 가족들에게 좀더 친절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신선한 감상을 남겼다.

나이듦이 좋은 것은 젊은 날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 말하는데 나는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을 천운으로 생각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실천하고 살 것이다.

떠나는 날 새벽에는 다함께 명상홀을 청소했다. 뒷정리를 하는 백발의 스태프 아주머니는 앉고, 서고, 걷고, 먹는, 매순간 명상을 하라는 고급 정보를 내게 슬쩍 흘려주었다. 그러고선 양초 부스러기를 담은 바스켓을 들고 유유히 퇴장했다.

침묵의 연극이 끝난 명상홀은 다음 공연을 기다리며 다시 조용한 휴식에 들었다.
 
떠나는 날 새벽. 삶의 매순간을 명상하라고 가르침을 주신 스텝 아주머니.
▲ 떠나는 날 새벽. 삶의 매순간을 명상하라고 가르침을 주신 스텝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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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좋아하고 틈틈이 명상도 즐기는 조각하는 사람이다. 청도의 작은 산골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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