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진보기
▲ 고 김지태 선생 유족, 한국당 의원들 고소 계획 발표 고 김지태 선생 유족들이 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고 김지태 선생을 친일파로 매도한 자유한국당 곽상도, 나경원, 민경욱 의원 고소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당리당략을 위해 유신정권의 피해자인 고인의 명예까지 짓밟는 자유한국당(아래 한국당)의 행태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

<부산일보> 전 사장인 고 김지태씨 유족들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와 곽상도‧민경욱 의원을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고 김지태씨 유족들은 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마이크를 잡고 "한국당 정치인들을 사자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하고, 민‧형사상 책임도 묻겠다"라며 "이런 일은 더 이상 정치판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김지태씨는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등을 소유했고 부일장학회를 운영했던 부산지역 기업가다. 일제강점기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5년 간 근무했고, 폐결핵으로 퇴직하면서 토지 2만 평을 1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불하받았다. 김씨는 이후 사업을 통해 재산을 늘렸고, 자유당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으나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하며 제명됐다. 이후 박정희 정권 당시 부정축재자로 몰려 강압에 의해 재산을 헌납해야 했고, 빼앗긴 부일장학회는 이후 정수장학회가 된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일본이 경제 보복으로 대응하면서 한일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친일 프레임'에 대한 반격으로 한국당이 고 김지태씨 이름을 다시 꺼내들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고 김지태씨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법인세(상속세) 반환 소송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고 김지태씨가 친일파였고, 이를 도운 고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친일파의 유족의 재산 환수를 도운 '친일 행위자'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는 이미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제기됐던 문제로 여러차례 '팩트체크' 된 내용들이다. 고 김지태씨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근무했고 토지를 불하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친일파라고 규정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게 학자들이나 관련 단체들의 입장이다. 오히려 신간회 활동 등 독립운동에 기여한 정황이 상당하고, 군사독재 시절 폭력적으로 재산을 강탈당한 피해자라는 것이다. (관련 기사: '김지태-문재인' 친일로 엮으려는 한국당의 치명적 실수)

그러나 최근 곽상도‧민경욱 의원과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공개석상에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면서, 결국 유족들이 국회까지 발걸음을 하게 됐다.

유족 "너무너무 억울... 고인 두 번 죽이는 행위"
 

큰사진보기
▲ 고 김지태 선생 유족, 한국당 의원들 고소 계획 발표 고 김지태 선생 유족 대표 김영철씨가 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고 김지태 선생을 친일파로 매도한 자유한국당 곽상도, 나경원, 민경욱 의원 고소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고 김지태씨의 다섯째 아들이자 유족 대표를 맡고 있는 김영철씨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선친인 고 김지태 선생은 생전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아무 죄없이 억울하게 장학회를 빼앗겼고, 돌아가신 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후예로부터 친일파로 몰리고 있으니 너무너무 억울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철씨는 최근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지태는 명백히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선친의 동양척식주식회사 입사는 고등학교에서 성적순으로 배정한 것이지, 지원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김씨는 "선친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사실은 온세상이 다 알고 있다"라면서 한국당 의원들의 의혹 제기에 "너무나 허무맹랑해서 일일이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라고 비판했다. 

고 김지태씨의 손자인 김후성씨는 이날 유족 입장 발표문을 낭독하며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검사였던 곽상도 의원이 이번에는 정쟁을 위해 고 김지태 회장님을 친일파로 조작하려 하고 있다"라며 "한국당 정치인들은 박정희‧박근혜의 유신 장물인 정수장학회 문제는 외면한 채, 당리당략을 위해 고 김지태 회장님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행태에 유족인 저희로서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한국당 의원들은 정확한 증거도 없이 진실을 외면한 채 오직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위해 허무맹랑한 거짓으로 저희 집안의 명예를 짓밟고 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추혜선·한홍구, 한국당에 "공개토론" 제안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고 김지태 선생이 친일파라는 주장은 명백한 허위"라며 "반민족특별행위조사위원회를 비롯해 해방직후나, 민족문제연구소 등 여러 단체에서 친일파에 대해 조사할 때 어떠한 기준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이어 "친일파의 명단에 들어갔는데 그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빼줬다는 것 역시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처음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빼나"라고 일각의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또한 "한국당이 지금 분위기에서 친일과 관련되어 궁지에 몰리니 친일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 문제를 자꾸 들고 나온다"라며 "잘못 건드렸다"라고 꼬집었다.

한홍구 교수는 이날 고 김지태씨의 부정축재 의혹 및 학생 시위 관련해서도 사실이 아니라며 본인의 연구 결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어 "곽상도 의원 측에서는 명명백백한, 연구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그런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라며 "한국당 의원들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한다"라고 밝혔다. "2012년도에도 그렇고 7년이 지난 2019년에도 (한국당 의원 중) 아무도 이런 문제제기에 응하지 않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추혜선 정의당 의원 역시 "한홍구 교수께서 제안하신 공개토론회에 나경원‧곽상도‧민경욱 의원은 적극 응해주시기 바란다"라며 "이번에도 공개토론회 제안을 무시한다면, '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재생산하는 정치조작에 불과하다'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라고 힐난했다.

추 의원은 "지금 우리는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암흑의 중세가 아닌 법치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라며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부터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발표한 친일 명단에 고 김지태 선생은 없다"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추 의원은 또한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해당 의원들의 발언은) 면책특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며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라고 강조했다.

유족들의 소송 대리를 맡은 하주희 변호사는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유족의 현재성에 있어 매우 엄중한 것"이라며 "법원도 이에 대해 매우 엄중하게 보고 엄격히 판단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라며 "유족들의 고통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