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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또 언제 여길 오겄워. 안 그랴요? 쬐매 힘들어도 올라 가야제."
"그라제, 힘내소. 여기 내 손 잡고."


조지아의 카즈베기 산을 오르는 70대 부부는 그렇게 손을 꼭 잡고 서로 잡아주고, 끌어주고 하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카즈베기의 아름다운 풍광에 노부부의 맞잡은 손은 더 사랑으로 빛이 났다. 코카서스 3국 중 특히 조지아는 '사랑'과 관련이 깊다.

카즈베기 계곡에는 하트 모양의 '사랑의 호수'가 있다. 심지어는 그림 같은 마을로 꼭 방문하고 싶은 '시그나기' 도시 지형이 아예 하트 모양이라고 현지인들은 주장한다.
  
 시그나기의 시청사 건물로 24시간 내내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시그나기의 시청사 건물로 24시간 내내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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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조지아의 그림 같은 마을 '시그나기'에서는 24시간 언제나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해당관청에 한 시간 전에만 결혼 발급서 신청을 예약하고, 필요서류(여권, 외국인인 경우 공증 받은 조지아어 번역본)와 두 명의 증인과 함께 방문하면 바로 혼인 신고를 할 수 있다.
 
 코카서스 여행길에 만난 막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
 코카서스 여행길에 만난 막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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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관청 앞을 건널 때 노부부에게 나는 농담을 던졌다.

"어르신들도 여기서 결혼 한 번 더 하시죠?"
"45년 살았는디, 뭔 결혼을 또 한당가?"


그렇게 손사래를 치시면서도 할머니 얼굴은 환하다.

"영감님 우리 결혼 한 번 더 할라요?"

그러면서 할아버지께 넌지시 의사를 묻는다.

"아, 좋제. 임자랑 잘 살았는디, 결혼 또 해서 앞으로도 잘 살면 고마운 일이제."

느릿느릿 말투에 사랑이 뚝뚝 떨어진다. 막 서른이 된 총각도, 20여 년 이상 아웅다웅, 알콩달콩 살아가는 50~60대 부부들도 어르신 부부의 달콤한 애정행각에 기분이 좋다.

이미 식사 자리 때마다 할아버지를 지극 정성 챙기는 할머니 모습을 익히 봐왔던 터라 그런 모습이 낯설지 않다. 이번 여행 전 할머니는 엄나무를 비롯한 각종 약재를 삶아 낸 물로 지은 밥을 한 끼씩 소분해 냉동실에 얼려, 정갈한 밑반찬과 함께 준비해왔다.

누군가는 가부장제의 폐습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다리 아픈 할머니를 배려하는 할아버지의 마음 씀씀이와 젊은 시절 세계의 산하를 누볐던 할아버지와 말동무 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씨는 부부가 사랑하며 세월을 어찌 살아가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행 내내 손을 꼭 잡고, 서로를 배려하는 노부부
 여행 내내 손을 꼭 잡고, 서로를 배려하는 노부부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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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할아버지는 노쇠하여 킬리만자로를 오르던 활기찬 발걸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 발걸음에서 인생의 진중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랑'과 남다른 인연을 가지고 있는 조지아이었기에 그런 노부부의 사랑은 더 애틋하다. 사실 조지아는 열정적인 사랑의 상징 '장미'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길거리에서도 장미꽃으로 만든 화관을 파는 노점상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국민들 누구나 알고 있는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도 이곳 조지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오래전 러시아 여행 때 '백만 송이 장미'가 러시아 민요의 번안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었다.

그런데 작년 여름 여행했던 발틱 3국 중 라트비아에서 '백만 송이 장미'의 원곡이 라트비아 노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라트비아가 과거 구소련의 일원이어서 러시아 노래였다고 퉁 쳐서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 조지아에 왔더니 '백만 송이 장미'가 조지아의 노래라고 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팩트 체크를 해보니 사실은 이러하다.

'백만 송이 장미'의 원곡은 발틱 3국 중 한 곳인 라트비아에서 1981년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이라는 곡으로 처음 발표 되었다. 가사 내용은 강대국에 나라의 운명이 휘둘리는 라트비아의 고난을 암시한 것으로 제목에 나오는 '마리냐'는 라트비아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그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렸을 적 내가 시달릴 때면
어머니가 가까이 와서 나를 위로해 주었지
그럴 때 어머니는 미소를 띠어 속삭여주었다네
마리냐는 딸에게 인생을 주었지만 행복을 주는 것을 잊었어

시간은 흘러 더 이상 어머니는 없네
지금은 혼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지
그래서 외로움에 물리면 어머니를 떠올려
어머니와 똑같이 중얼거리는 한 사람 바로 내가 있다네
마리냐는 딸에게 인생을 주었지만 행복을 주는 것을 잊었어

이제 그러한 일 모두 잊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놀란다네
이제는 나의 딸이 미소를 띠며 그렇게 흥얼거리고 있음을
 
이러한 까닭에 라트비아의 노래라는 주장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82년 러시아의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새롭게 작사한 것을, 미녀 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부르면서부터다. 그러니 러시아의 노래라는 것도 맞는 사실이다.
    
 조지아 출신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의 특별전 포스터
 조지아 출신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의 특별전 포스터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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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때 그 가사의 내용이 조지아 출신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와 여배우와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이 노래는 조지아의 노래라는 말도 맞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한 화가가 살고 있었네.
그에겐 집과 캔버스가 전부였다네.
화가는 꽃을 사랑하는 어느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집과 그림들을 팔았고,
그 돈으로 바다만큼의 꽃을 샀다네..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붉은 장미를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가 보고 있는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이
그대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꽃과 바꾸어 버렸다네.
아침에 일어나 창가에 서면,
그대는 아마도 정신이 혼미해지겠지.
꿈의 연속인 듯 광장은 꽃으로 가득 찼다네.
어떤 부자가 이토록 놀라게 하는지?
그러나 창문 아래엔 가난한 화가가 숨죽이며 서 있다네.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붉은 장미를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가 보고 있는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이
그대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꽃과 바꾸어 버렸다네
너무나 짧은 만남이었고,
그녀를 태운 기차는 밤을 향해 떠나 버렸네.
하지만 그녀의 삶엔 열정적인 장미의 노래가 있었다네.
화가는 외로운 삶을 살았고,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냈네 하지만
그의 삶엔 꽃으로 가득찬 광장이 있었다네.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붉은 장미를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가 보고 있는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이
그대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꽃과 바꾸어 버렸다네
 

하지만 이 사랑 고백은 그녀가 다른 남자와 떠나면서 가난한 화가에게는 아픔으로만 남았다.

버전도 다양하고, 실화 여부도 불분명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되어 이 노래는 여러 나라에서 번안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노래를 1997년 심수봉이 원곡자의 허락을 받아 우리말 가사를 직접 써서 발표함으로, 우리 국민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카즈베기 산을 아이를 등에 들춰 맨 젊은 아빠와 엄마가 나란히 걷는 모습이 그들의 사랑이 느껴져 참 부러웠다.
 카즈베기 산을 아이를 등에 들춰 맨 젊은 아빠와 엄마가 나란히 걷는 모습이 그들의 사랑이 느껴져 참 부러웠다.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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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송이 장미'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담긴 조지아의 카즈베기 산에서 만난 어린 아기를 들춰 매고 산에 다정히 오르는 젊은 부부의 모습을 보며 세계 곳곳에 사랑이 꽃피고 있음을, 그 덕분에 인류가 지속되고 있음을 느낀다.

혼족, 혼밥, 그리고 비혼이 유행인 이 시대에 70대 노부부처럼 손 마주잡고 함께 걷는 인생길의 소중한 가치도 다시 조명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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