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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연재하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망국(亡國)이 되어버린 조국을 위해 온 몸을 던진 독립운동가들은 수많은 심판대 위에 올라갔다. 심판대에 선 그들의 비통한 심정을 대변해준 이는 있었을까?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1880.11.13~1953.09.13).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2004년에 일본인으로서 최초로 대한민국의 건국훈장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노동자를 변호해 주신 분. 우리의 영원한 '벗'이자, '동지'인 그분의 삶에 경애(敬愛)를 표한다.
 
.재일한국 YMCA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에 전시된 후세 변호사의 건국훈장
 .재일한국 YMCA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에 전시된 후세 변호사의 건국훈장
ⓒ 김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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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에서 변호사의 길을 선택한 후세 다쓰지

후세 변호사는 1902년 메이지 법률학교(明治法律学校, 현 메이지 대학)를 졸업하고 판검사 등용시험에 합격하여 검사가 된다. 그런데 그는 검사 생활 약 6개월 만에 사직서를 던지고 변호사의 길을 선택한다.

후세 간지(布施 柑治)의 저서 <ある弁護士の生涯―布施辰治>(어느 변호사의 일생-후세 다쓰지)』(2003)에 의하면, 그는 법률은 도덕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법이) 외적으로는 권력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시민, 특히 농민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라고 여겼다. 

그가 검사직을 그만둔 결정적 계기는 '불합리한 기소 명령'이었다. 이는 자신의 아이 세 명과 동반 자살을 시도한 아이 엄마를 살인미수로 기소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는 부당한 기소 명령에 회의를 느끼고 그 길로 검사 옷을 벗는다. 그리고 조선인, 대만인, 무산 계급인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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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 후세 다쓰지 .
ⓒ 재일본한국 Y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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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하다'

후세 변호사가 조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법률학교에 다니기 훨씬 전부터였다. 1894년, 조선에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다. 조선 정부는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에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조선에 청군이 파병되자 일본도 질세라 군대를 출병시켰다. 청과 일본은 서로 군대를 파견하여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였고, 이 팽팽한 기 싸움이 청일전쟁(1894.6~1895.4)으로 이어진다.

후세 변호사가 고향에서 학교에 다닐 시절, 청일전쟁에서 돌아온 마을 주민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나는 조선군을 추격했는데, 평범한 백성이 그저 모여있는 게 아니겠어.
(オレは朝鮮人を追撃した。普通の百姓が集まっただけのものだった。) - 후세 간지(2003) <어느 변호사의 일생-후세 다쓰지>, 국문변역  김보예
  
그의 말을 들은 후세 변호사는 조선인에게 연민을 느꼈다고 한다. 메이지 법률학교 재학시절에도 후세 변호사는 일본인보다 조선, 대만 등의 유학생들과 친분을 쌓았다.

약자에 대한 연민이 가득했던 그는 1911년,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하다(朝鮮の独立運動に敬意を表す)'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그의 논문은 필화(筆禍, 글로 화를 입음)가 되었고 결국 검사국의 조사를 받게 된다. 다행히도 불기소처분 판정을 받았다.

2·8독립선언 계기로 본격적으로 조선인 변호

그가 처음으로 변호한 조선인은 1919년 2·8독립선언의 주범 11인 중 현장 체포된 9인(최용팔, 김도연, 서춘, 백관수, 윤창석, 송계백, 이종근, 김상덕, 김철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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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독립선언을 시작으로 그는 조선인들의 변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1923년 9월 1일에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사건의 진상 조사·고발 활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좌)영화 박열 포스터 (우)영화 박열 속 후세 다쓰지 변호사.
 .(좌)영화 박열 포스터 (우)영화 박열 속 후세 다쓰지 변호사.
ⓒ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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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7월에는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변호를 맡았다. 후세 변호사는 1945년 12월 7일 박열의 출옥환영회 때(출옥일은 10월 27일), 옥사한 가네코에게 헌시(추모시)를 받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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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에는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義烈團)의 변호를 위해 조선(경성)으로 넘어간다. 연구자 가와구치 쇼코(川口祥子)씨의 논문 '布施辰治と朝鮮共産党実験(후세 다쓰지와 조선공산당사건)' <東アジア研究(동아시아연구)> 제58호(2003)에 의하면, 그는 변호사 자격이 박탈당하기 전까지, 그가 조선인을 위해 변호한 사건만 크게 15건(1911~1932)에 달한다고 하였다.

"나는 양심을 믿는다"

1932년 그는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다. 이유는 법정 모독이었다. 1933년 후세 변호사는 신문지법·우편법 위반으로 3개월 실형을 언도받는다. 그리고 출옥하자마자 또다시 검거사건에 연루된다. 치안유지법관련 재판에서 격렬한 변호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검거된 동료 변호사 중 그는 홀로 법정투쟁을 지속하였고, 1935년에 석방된다. 그 이후에도 그는 활발히 약자의 편에서 끊임없는 변호 활동을 하였고, 결국 1939년에 변호사 자격을 말소당한다. 그리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언도받는다.

일본의 패전과 더불어 변호사 자격을 다시 돌려받은 그는 평화헌법의 보급과 계몽에 힘쓰며, 재일조선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다. 1953년 그는 만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는데, 장례식에 수많은 조선인이 고별식 장의위원으로 참가하였다.

경이로운 그의 생애와 업적은 이규수 교수의 논문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한국 언론의 보도를 중심으로'(윤봉길 의사 순국 85주년 한·일 공동학술회의-윤봉길 의거와 세계평화운동)에 [부표]로 알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다.

끊임없는 풍파 속에 그의 마음도 흔들렸을 터. 후세 변호사는 그때마다 자신을 다독이며 글을 적었고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일본의 시인(詩人)이자 농민운동가인 시부야 데이스케(渋谷定輔, 1905~1989)는 후세 변호사를 법률을 시화(詩化)시킨 법조인으로 평가하였다.
 
연약하지만 옳은 자들을 위해 나를 강하게 만들리라. 나는 양심을 믿는다. 弱いが正しい者のために私を強く作りなさい。私は良心を信じる。-변호사 후세 다쓰지 / 국문변역  김보예
  
그의 현창비를 찾아

약자를 위해 양심을 선택한 후세 변호사는 현재 어디에 잠들어 계실까? 그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여행 스팟인 이케부쿠로에 잠들어 계신다.

이케부쿠로역 남쪽 출구로부터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상재사(죠카이지, 常在寺)에는, 후세 변호사의 현창비(顕彰碑)가 건립되어 있다. 나는 헌화할 한 송이 꽃을 들고 상재사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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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재사에 건립된 후세 변호사의 현창비 .
ⓒ 심오선(snap the5/Right4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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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창비에는 '吾是人 吾為人'(오시인 오위인)라고 새겨져 있는데, 직역하면 '나는 인간인 고로 인간을 위해 살겠다'라는 뜻이다. 후세 변호사의 평생 이념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구라 할 수 있다.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
(生きべくんば民衆とともに、死すべくんば民衆のために)
-변호사 후세 다쓰지

민중을 위해 일생을 바친 후세 변호사는 역사의 한 구절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 따듯함은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번 감싸 안아주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양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역사, #김보예, #도쿄, #후세다쓰지,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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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여행에서 1시간만 마음을 써 주세요” 일본의 유명 관광지와 멀지 않은 곳에 우리의 아픈 역사가 깃든 장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보 부족과 무관심으로 추도 받아야 할 장소에는 인적이 드뭅니다. 많은 분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져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 교육학 박사. 고려대/국민대 강사. 학교/학교메일을 통해 정식으로 연락주세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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