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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시청자 여러분 많이 들어보신 시구이지요. 퇴계 이황의 14대손인 이원록 시인의 작품이라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이원록이 일제에 옥살이하며 얻은 수감번호 '264'라고 해야 고개를 끄덕이실 텐데요. 40년 짧은 생애에 17번이나 투옥되면서도 저항정신을 꺾지 않았는데요. 시로 민족혼을 깨우고 무기로 일제에 맞선 이육사의 삶을 안동에서 최유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경북 안동에 있는 이육사 문학관입니다. 육사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활발한 시작을 펼치는데요. "나에게는 시를 생각하는 것도 행동"이라는 철학으로 시를 썼습니다. 시어 하나하나에 현실 참여, 독립을 향한 투쟁을 담아낸 것이지요. 우리 문학사에 저항시인이라는 표현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유입니다. <청포도> <절정> <광야> 등의 많은 시는 그런 저항정신으로 태어났습니다.

손병희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육사가 시인으로서의 자기완성을 추구했다고 하는 점도 우리가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육사는 이런 얘길 한 적 있어요. '온갖 고독이나 비애를 맛볼지라도 시 한 편만 부끄럽지 않게 쓰면 된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발언인데 이육사가 시인으로서의 자기의식, 시인 곧 예술가로서 자기완성 이런 것들을 뚜렷이 자각하고 표명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육사는 행동을 통해서 독립 무장 투쟁에 나서기도 했지만 동시에 예술가로서 시인으로서 자기완성을 이룩하려고 했던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육사를 시와 행동의 통일을 한 몸에 구현한 인물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는 이육사 생가입니다. 안동댐 수몰로 옛집을 한동안 볼 수는 없었는데요. 지금은 이렇게 복원돼 육사의 문학정신과 독립정신을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육사는 20대에 일본,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는데요. 기자로 일하다 다시 남경으로 떠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으로 입학합니다.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결정적인 계깁니다.

손병희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제1기생으로 졸업했는데 이 학교가 실제로 의열단원들이 중심이 된 무장 투쟁을 위한 간부를 양성하는 학교였어요. 사실 이런 학교에 입교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윤세주의 권유였지만, 그 전에 사실 이육사는 이미 장진홍 의사가 거행했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에 연루돼 1927년에 구속됐어요. 이후 2년 가까운 1년 7개월 정도 옥살이를 하게 되거든요. 이런 투옥 경험도 있고, 이후에는 조선일보 대구지국 기자 이런 언론인으로서 현실 문제를 기사화했던 활동을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여러 차례 예비 검열당하고 요시찰 대상이 되고, 또 투옥되고 이런 과정을 거치죠. 이런 속에서 사실 일제강점기에 조선 현실 이런 것들을 깊이 체험하고 독립의 필요성, 일제에 대한 저항 이런 것들을 남다르게 심각하게 고민했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 데다 그 이전에 이육사의 가문이 외가는 아주 항일 운동의 선봉에 섰던 가문이에요. 외조부도 의병장이었고, 허형이라는 분이 의병장이었고, 이분의 종형이 바로 그 유명한 13도 창의군 의병대장이었던 왕산 허위 선생입니다. 이분이 쉽게 말하면 조선 13도 연합 의병의 대장이었어요. 이분이 수많은 전투를 치렀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제1호로 순국하신 분입니다. 외가의 항일 투쟁 역사와 전통, 그런 데다 친족 가운데 안동에 향산 이만도 선생 같은 경우는 나라가 망해서 굶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순절한 분들이 친족 중에 많이 계셨거든요."

탄약 제조와 사격 등 군사교육을 받은 육사는 공작원 활동을 계획합니다. 하지만, 일제는 그를 요시찰 인물로 한시도 놓지 않고 감시합니다. "배일사상, 민족자결, 항상 조선 독립을 몽상하고 암암리에 주의 선전할 염려가 있었음." 안동경찰서에 남은 이육사 사찰 보고섭니다. 육사는 독립운동으로 일제에 체포됐다 풀려나기를 반복합니다. 40 평생을 살며 17번의 옥고를 치릅니다.

손병희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절망적인 식민지 현실을 넘어서 해방된 조국, 해방된 세계, 평화로운 세계 이런 것들을 앞당겨 그려줌으로써 현실 극복의 의지와 염원을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었다, 이 점이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육사는 현실의 참담한 모습을 그리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이 극복된 조국, 해방된 조국, 혹은 인간적인 세계 이런 것들을 언어로 구체적 형상화를 통해 현실로 만들었단 점이 중요하고 그 밑바탕에는 현실의 모순인 정치의 억압을 극복하려고 하는 이런 독립운동 내지는 독립정신, 해방투쟁 이런 것이 바탕이 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초인 같은 '저항정신'은 절대 꺾이지 않았습니다. 안동과 대구, 중국까지 오가며 무기를 들여오고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지속합니다. 1943년 육사는 중국에서 국내로 무기를 들여오려다 17번째로 체포, 투옥됩니다. 하지만 18번째 투옥의 기회는 없었습니다.

이옥비 이육사추모사업회 상임이사 / 이육사 딸
"가시면서 저희 어머니가 저를 보고 갔으면 좋겠다 싶어서 저를 안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한 발짝 다가오시더니 '아버지 다녀오마'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대요. 그런데 저는 모습은 기억이 나는데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기억을 못 하거든요. 아마 어려서 제가 아버지 모습에 놀라서 그랬나 봐요. 어머니가 너희 아버지가 가시면서 '아버지 다녀오마'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들려주셨어요."

이듬해 1944년 육사는 북경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고 맙니다. 독립을 1년 앞두고 통한의 죽음을 맞은 건데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꿈, 광복의 꿈을 끝내 보지 못한 겁니다.

이옥비 이육사추모사업회 상임이사 / 이육사 딸
"세계정세에 밝아서 아마 일본이 막바지란 걸 아셨나 봐요. 그래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부녀를 만나게 해줘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셨대요. 그래서 (동네) 할아버지와 저는 옛날에 기차로 이동했잖아요. 청량리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저희 어머니는 동대문경찰서에서 아버지를 마중해오셨는데 그때 저희 아버지 모습이 포승줄에 꽁꽁 묶여있었고 얼굴에는 용수를 쓰고 계셨어요. 세 살 난 딸에게는 굉장히 충격이었죠.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기억하지 않나 생각해요."

육사의 생가는 '육우당'으로 불립니다. 육사 6형제가 우애 있게 지내라는 뜻입니다. 육사 형제의 우애는 모두 항일운동에 앞장서며 함께 고초를 겪는 것으로 꽃핍니다. 육사 형제들은 1927년 '장진홍 의거'에 연루돼 일제 감옥에 갇힙니다. 일제는 혹독한 고문으로 거짓 죄목을 씌워 법정에 세웁니다. 1930년에는 육사와 동생 원일이 '대구격문사건'으로 또 감옥살이를 합니다.

이옥비 이육사추모사업회 상임이사 / 이육사 딸
"4형제가 큰아버지, 저희 아버지, 또 수산 이원일 서예가시거든요. 4형제가 저희 장진홍 사건 때 4형제가 같이 감옥에 들어갔잖아요. 아버지 위로 형제분들은 동생들은 아무 죄가 없다 이렇게 하시고 동생들은 우리 형들은 아무 죄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일본 일경들이 조서를 꾸미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근데 저희 넷째 삼촌은 학생이었기 때문에 먼저 나왔다고 그러더라고요. 나중에 셋째 삼촌, 큰아버지 나오시고 저희 아버지만 오래 계셨죠."

항일운동을 함께한 6형제의 삶은 모두 비극적으로 갈무리됩니다. 육사와 함께 비밀리에 암살단을 조직한 맏형 이원기. 일제에 당한 가혹한 고문 후유증으로 숨집니다. 광복 뒤, 친일파의 준동에 실망해 세 동생은 북으로 갑니다. 월북했다는 이유로 독립투쟁 활약상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육사 6형제 가문의 후손들은 '연좌제' 고통에 집안 내력마저 숨기며 살아야 했습니다. 육사가 남긴 독보적인 저항문학의 성과. 여기에 17번의 투옥과 순국이 말해주는 중단 없는 독립투쟁. 육사 못지않게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 형제들의 활약상. 이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날, 육사와 형제들은 광야에서 진정 목 놓아 울 수 있을 것입니다. 단비뉴스 최유진입니다.

(영상취재, 편집 : 최유진 / 앵커 : 임지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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