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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에 한 번꼴로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사건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들을 다룹니다. 각 사건의 핵심내용 소개에 그치지 않고 사건 관계자들의 범죄 또는 부패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권력부패를 기억하는데 주춧돌이 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청와대 시절 국정원 자금을 상납받은 이들. 왼쪽부터 당시 직함으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윤선 정무수석, 신동철 정무비서관, 현기환 정무수석,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
 박근혜 청와대 시절 국정원 자금을 상납받은 이들. 왼쪽부터 당시 직함으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윤선 정무수석, 신동철 정무비서관, 현기환 정무수석,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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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재에 이은 두 번째 사건은 박근혜를 제외하고도 국가정보원 예산을 상납받은 권력실세들에 대한 이야기다.

박근혜가 대통령 재임 기간 중 35억 원의 국정원 자금을 상납받을 때 또 다른 권력실세들도 그리했다. 이들 사이에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박근혜에게 국정원의 돈을 상납하게 된 것은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의 요구에서 시작되었다. 반면에 앞으로 살펴볼 사건은 국정원장이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상납' 또는 '제공'한 사건이다.

박근혜 따라 한 친박계와 측근

그렇다면 박근혜 외에 국정원 자금을 상납받은 이들과 상납한 이들은 누구였나. 우선 돈을 받은 인물들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18~19대 국회의원으로 연이어 활동한 '친박근혜계' 실세 정치인이다. 18대 대통령 선거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을 맡은 그는 박근혜 정부 기간이었던 2014년 7월부터 2016년 1월까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그 후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이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되어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했다.

다음으로 조윤선 정무수석 신동철 정무비서관이다. 조 수석은 박근혜 정부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2013.3~2014.6)으로 일하다 청와대 정무수석(2014.6~2015.5)으로 자리를 옮겼다. 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청와대 지원으로 당내 경선에 나섰으나(이 사건은 다음 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고배를 마신 후 문화체육부장관에 임명될 만큼 친박계 정치인이었다.

신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2013.3~2014.6)으로 일하다 정무비서관(2014.6~2016.4)에 임명되었다. 조 수석과 신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국정원장과 세 번째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기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한편 조윤선 수석의 뒤를 이은 현기환 정무수석(2015.7~2016.6)도 국정원 자금을 이어서 상납받았다.

끝으로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2013.3~2015.1)이다. 제2부속비서관 업무를 마친 후에는 국정홍보비서관이 되었다가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사건으로 2016년 10월 사임했다. 그는 이재만, 정호성과 함께 박근혜의 최측근 '문고리 3인방'의 한 명이었다.
 
 박근혜 청와대 시절 국정원 자금을 상납한 이들. 왼쪽부터 당시 직함으로 이병기 국정원장, 이헌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추명호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박근혜 청와대 시절 국정원 자금을 상납한 이들. 왼쪽부터 당시 직함으로 이병기 국정원장, 이헌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추명호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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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돈을 준 인물들이다.

이병기 국정원장이다.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국정원장으로 최경환과 조윤선, 신동철에게 돈을 준 사람이다. 그는 국정원장직을 물러난 뒤에는 곧바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되는데 그 기간에도 국정원 돈이 계속 제공되는지를 챙겼다.

이헌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도 돈을 준 인물이다. 최경환에게는 이병기 원장의 지시로, 그리고 안봉근에게는 개인적 이득을 위해 스스로 상납했다.

추명호 국정원 국익정보국장도 있다. 추 국장은 이병기 원장의 지시를 받아 조윤선과 신동철, 그리고 현기환에게 국정원 자금을 상납하는 데 관여했다. 추 국장도 이 사건으로 따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이렇다.

이헌수 "장관에게 전화 한 번 부탁합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두 번째 국정원장으로 2014년 7월 16일에 이병기가 임명되었다.  같은 날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에 임명되었다.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사건이 촉발한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구성에 따른 것이었다.

이 원장과 최 부총리는 임명 직후 오찬을 겸해 따로 만난다. 이 자리에서 최 부총리가 청와대에 몰래 보내주던 국정원 자금을 더 늘려주라고 이 원장에게 말한다. 남재준 전임 국정원장 시절 박근혜의 요구로 매달 5천만 원씩 청와대에 제공되던 국정원장의 특별사업비 명목 국정원 자금이 있었는데, 매달 1억 원으로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이 원장은 자신이 퇴임하는 다음 해 2월까지 매달 1억 원을 박근혜에게 보낸다.

그런데 2014년 8월 말, 국정원의 예산 업무 담당자들이 이헌수 기획조정실장에게 기획재정부가 국정원의 (증액) 요구액인 518억 원까지는 어렵고 420억 원에서 430억 원 정도만 증액하는 수준에서 2015년도 예산안을 마련할 것 같다고 보고한다. 그러면서 국정원장이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에게 전화를 한 번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한다.

이 실장이 이를 이병기 원장에게 보고하면서, 담당 직원들의 건의대로 이렇게 말한다.
 
"원장님께서 기재부장관께 전화를 한 번 해주시면 예산 확보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러자 이병기 원장이 최경환 부총리 겸 장관에게 실제로 전화를 걸어 '다음 해 예산과 관련하여 국정원에서 제출한 예산서대로 편성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한다. 그러고나서 이 원장은 국정원 기획조정실 간부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최 장관에게 전화했다고 알려준다.

전화의 효과는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최경환의 생각대로 박근혜에게 매달 상납하는 돈이 2배가 되어서 그런지, 기획재정부는 국정원 예산을 꽤 많이 증액한 2015년도 정부 예산안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한다. 국정원이 요청한 만큼은 아니지만 업무 담당자들이 걱정한 수준보다는 많이 늘어난(2014년 대비 472억 원 증액) 예산안이었다.

그 후 2014년 10월 중순에 이병기 원장이 이헌수 실장을 부른다. 그러고는 이 실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재부장관 덕분에 예산안 문제가 잘 풀렸다. 앞으로도 기재부장관의 도움을 계속 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정원장 특별사업비에서 1억 원을 최 부총리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한다.
이 원장은 최경환에게도 전화해 이렇게 말한다.
 
"예산을 잘 챙겨줘서 고맙다. 이  실장을 보내 감사 인사를 할 테니 만나보라."

최경환은 부총리실 부속직원들에게 이 실장의 방문일정을 조율하도록 지시한다. 두 사람은 2014년 10월 23일 오후 3시경에 만난다. 그들이 만난 곳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209에 있는 정부서울청사 1001호의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실의 접견실. 국정원 금고에 보관 중이던 5000만 원 현금 다발 2묶음 합계 1억 원을 담은 서류가방을 가지고 온 이헌수는 이 가방을 최경환에게 넘겨준다.

원래 최경환은 그 시각 그 자리에서 기재부 1급 이상 간부들로부터 국정감사 쟁점을 보고받을 예정이었다. 그는 기재부 간부들과의 일정을 30분 정도 미루고 이헌수부터 만났던 것이다.

이병기 "청와대 생활은 힘들지, 어떠냐 너희들 예산은?"

최경환에게 상납하던 그즈음, 이병기 원장은 또 다른 상납사건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병기 원장은 청와대 정무수석과 정무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던 조윤선, 신동철과 오래 전부터 가까운 사이였다. 이 원장과 조 수석은 대학 동문(서울대 외교학과)이고, 2001년 이회창 대통령 후보 정치특보와 선대위 대변인으로 함께 활동한 바 있다. 그 후 두 사람은 정치적 조언자 관계를 맺어왔다.

신 비서관도 2001년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보좌관이었다. 2007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 경선캠프에서 이 원장은 선대위 부위원장, 신 비서관은 상황실 부실장이었고, 2011년부터 이 원장은 새누리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고문, 신 비서관은 부소장으로 일하며 가까이 지냈다.

2014년 7월, 이병기가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직후 신 비서관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는다. 전화 통화 중 이 원장이 신 비서관에게 이렇게 묻는다.
 
"청와대 생활은 힘들지, 어떠냐 너희들 예산은?"

신 비서관이 정무수석실 활동비가 부족하여 어렵다고 답하자, 이 원장이 이렇게 말한다.
 
"혹시 지원할 수 있는 돈이 있는지 알아보겠다."

그 후 10월경, 신 비서관과 통화했던 것이 생각났던 이 원장이 마침 주례보고를 위해 원장 집무실에 들어온 추명호 국익정보국장에 이렇게 말한다.
 
"국익정보국 예산으로 매달 조윤선 정무수석에게 500만 원, 신동철 정무비서관에게 300만 원씩 지원하라."

이 원장은 이른바 '국정원 댓글사건' 영향으로 국내 정치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국익정보국 소속 정보관들의 국회와 정당, 언론사 출입이 예전보다 줄어들자, 국익정보국 예산에 여유가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익정보국 예산을 사용할 생각을 했다고 재판에서 진술했다. 국정원장 몫의 특별사업비는 이미 매달 1억 원씩 박근혜에게 상납하고 있던 차에 다른 방법을 찾은 것이다.

원장의 지시를 받은 추 국장은 자신이 이끌던 국익정보국 소속 직원에게 국익정보국 사업비에서 800만 원씩 만들어서 매달 초에 가져오라고 시킨다. 이 돈을 준비하면서 추 국장 등은 지출결의서 등의 내부 문서에는 '평화통일 환경조성'을 위한 사업비라고 적는다. 어떤 경우에는 '대국민 안보의식 고취', '국정 현안 관련 각계 주요인사 협조체계 강화' 등에 쓰는 돈이라고도 적는다. 

신동철 "앞으로 매월 주신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800만 원은 2014년 11월 중순경 전달된다. 추 국장은 서울 중구의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신동철 비서관을 만난다. 그는 신 비서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원장님 심부름을 왔습니다. 정무수석님과 정무비서관님 활동비입니다. 앞으로 매월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간지 잡지 하나를 신 비서관에 준다. 500만 원과 300만 원이 각각 든 봉투 2개가 끼워져 있는 잡지였다.

신 비서관은 추 국장과 헤어진 뒤 청와대로 복귀하여 조윤선 정무수석을 찾아간다. 그는 "이병기 원장님이 보내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매월 주신다고 했습니다"라고 말하며 500만 원이 든 봉투를 조 수석에게 준다. 나머지 300만 원은 자신이 사용한다. 돈을 받은 뒤 조 수석과 신 비서관은 이 원장에게 감사 전화를 하였다.

그날 후 추 국장은 매월 초순에 호텔 커피숍 등 청와대 외부에서 신동철을 계속 만나 정무수석 몫 500만 원과 정무비서관 몫 300만 원을 보낸다.

그런데 이병기 원장이 2015년 2월 27일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후임자였다. 재판에서 추 국장은 이병기 원장이 비록 국정원장에서는 퇴임했지만 그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갔기 때문에 조윤선 정무수석과 신동철 정무비서관을 챙기는 일을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였다.

그래서 이 원장이 비서실장으로 간 뒤에도 800만 원이 청와대 정무수석실로 건네진다.

현기환 "활동비가 부족해서 어려웠는데 잘됐네"

그러다 5월 18일경 조 수석이 물러나고, 두 달 쯤 후인 7월 10일 후임자로 현기환 정무수석이 임명된다. 돈을 받을 정무수석이 공석이었기 때문에 추 국장은 6월과 7월에는 신동철 비서관 몫의 300만 원만 제공한다. 그러나 현기환 수석이 임명된 후인 8월부터는 다시 정무수석 몫까지 합쳐서 800만 원을 신 비서관을 통해 정무수석실에 제공한다. 2015년 8월에 신 비서관이 현기환 수석에게 500만 원을 전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정원장으로 계실 때부터 정무수석실 활동비로 주시던 격려금입니다. 매월 주실 것입니다."

그러자 현 수석은 이렇게 답한다.
 
"그렇지 않아도 수석 활동비가 부족해서 어려웠는데 잘됐네."

이들을 재판한 1심 재판부는 돈이 제공되기 시작한 첫 시점이 2014년 9월이라고 판단하였다. 검찰의 주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2014년 9월과 10월에 제공되었다고 볼 단서가 분명하지 않고 여러 정황을 보았을 때 11월부터 제공되기 시작한 것이 사실에 가깝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이 글에서도 2심 판단을 따라 사건을 정리했다.

돈이 마지막으로 전달된 시점과 관련해서 검찰은 현기환 수석이 물러난 2016년 6월까지 자금 제공이 이어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2심 재판부에서는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어서 신동철이 정무비서관직에서 물러난 2016년 4월경까지 자금 제공이 이어진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조윤선 수석이 활동비 명목으로 받은 국정원 자금은 2014년 1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7개월간 3500만 원, 현기환 수석은 2015년 8월부터 2016년 4월까지 9개월간 4500만 원, 신동철 비서관은 2014년 1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18개월간 5400만 원이 된다. 합산하면 모두 1억3400만 원에 이른다.

추 국장은 국정원장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조윤선이나 신동철에게 활동비가 계속 지급되고 있는지 확인하던 이병기 비서실장이 퇴임(2016.5)하고 그에 앞서 신동철도 퇴임(2016.4)하자 홀가분하였다고 한다.
 
검찰 소환된 이병기 전 국정원장 “심려 끼쳐 대단히 송구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를 받는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특수활동비 상납 사실 인정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선 국정원 자금이 청와대 지원된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실망과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아울러 안 그래도 위상이 추락해 있는 우리 국정원 직원들에 대해서도 이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부담을 준 것 같아 개인적으로 대단히 미안하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 13일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를 받는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서울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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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근에게 뇌물 준 이헌수, 대통령보다 더 기조실장 오래 해

앞의 사건들이 국정원장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라면, 국정원장도 모르게 국정원 예산이 뇌물로 제공된 사건도 있다. 이헌수 기조실장이 안봉근 비서관에게 준 돈이 바로 그 돈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2013년 4월. 청와대 인사수석실은 신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을 물색하고 있었다. 이때,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국정원에서 근무한 바 있는 이헌수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안 비서관은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었던 조응천을 통해 이헌수를 추천받았다.

박근혜의 최측근이었던 안 비서관의 소개 덕분인지 이헌수는 2013년 4월 15일 자로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된다 이 실장은 그로부터 얼마 후인 5월경, 자신의 임명 과정에 안봉근 비서관이 관여했음을 조응천을 통해 알게 된다.

이 실장은 2013년 5월 19일경에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안 비서관을 처음으로 만난다. 그 자리에서 이 실장은 200만 원을 담은 돈봉투를 안 비서관에 준다. 이 돈은 국정원 기획조정실 업무추진비에서 마련한 돈이었다. 자신의 임명에 도움을 주어서 고맙기도 하고 앞으로도 도움을 부탁하는 돈이었다. 첫 번째 뇌물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뇌물거래는 반복된다. 두 달 후인 2013년 7월 중순과 그해 11월, 12월, 다음 해인 2014년 10월 9일과 22일경, 12월 28일경, 2015년 2월 1일경에 이 실장은 국정원 기조실 업무추진비에서 마련한 돈을 안 비서관에게 준다. 어떤 경우에는 50만 원, 또 다른 경우에는 100만 원이거나 200만 원을 주었다. 8번에 걸쳐서 안 비서관이 받은 돈은 모두 1350만 원이다.

첫 번째 뇌물이 기조실장 임명에 대한 대가였는데, 다섯 번째 뇌물인 2014년 10월 9일 건넨 200만 원은 이 실장의 정년 연장 청탁에 대한 대가였다. 이 실장은 그즈음에 정년 문제 때문에 사표를 일단 청와대에 내놓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실장은 정년 초과 문제를 해명하는 서류를 안 비서관에게 팩스로 보내어 순조로운 해결을 부탁하였다.

마침내 그가 바라던 대로 박근혜가 이 실장의 사표를 10월 9일 반려한다. 이 소식은 바로 그날 오후 안 비서관이 이 실장에게 알려준다. 그러자 곧바로 이 실장이 제안하여 두 사람은 그날 저녁 식사를 함께 한다. 물론 저녁만 먹을 리가 없었다. 이때 이 실장은 안 비서관에게 200만 원을 주었다.

국정원 자금에서 마련한 뇌물 때문인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국정원 기조실장이 되었던 이헌수는 박근혜 탄핵 후에도 그 자리를 지키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추어 물러난다. 최장수 기조실장이었다.

최경환은 징역 5년과 벌금 1억5천만 원 확정, 나머지는 상고심 중

최경환은 이병기 원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범죄에 대해 뇌물죄(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로 처벌된다. 상고심에서 확정된 형량은 징역 5년과 벌금 1억 5천만 원이었다. 이 형량은 1심부터 변함없는 형량이다.

이병기 원장으로부터 '활동비' 명목의 돈을 받은 조윤선과 현기환은 뇌물죄로 기소되었으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직무에 대한 대가로 받는 돈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격려성 활동비 지원'이라고 본 것이다.

이헌수 실장한테서 돈을 받은 안봉근은 뇌물죄로 처벌된다. 2심 재판까지 그는 뇌물죄로 유죄가 인정되었다. 안봉근은 박근혜 국정원 자금 상납사건과 함께 합쳐서 징역 2년 6월, 벌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이 실장한테서 받은 뇌물 1350만 원에 대해 추징을 선고받았다.

이병기 원장의 경우 최경환에게 준 1억 원에 대해서는 뇌물 공여죄와 국고 손실죄(공범)로, 조윤선과 신동철에게 제공한 돈에 대해서는 업무상 횡령죄가 인정되었다. 이 원장 역시 박근혜 국정원 자금 상납 사건 등과 합쳐서 징역 2년 6월형을 2심에서 선고받았다.

이헌수 실장은 최경환에게 준 돈에 대해서 국고 손실죄로, 안봉근에게 준 1350만 원에 대해서 뇌물 공여죄와 업무상 횡령죄로 처벌받았다. 이 실장도 박근혜 국정원 자금 상납 사건 등과 합쳐서 징역 2년 6월형을 2심에서 선고받았다. 한편 신동철 비서관과 추명호 국장은 이 사건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법원에서 인정한 이들의 범죄사실과 법률 적용 등을 자세히 알고자 하면, 각 사건의 아래 판결문을 읽어보면 된다. 이들의 재판 중 최경환의 경우에만 상고심이 선고되었고, 나머지 이들의 경우에만 2019년 7월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최경환에 대한 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2018고합81 사건이고, 2심 재판은 서울고법 2018노2040 사건이며, 상고심 재판은 대법 2019도1440이다.

조윤선과 현기환에 대한 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114, 2018고합116(병합), 391(병합) 사건이고, 2심 재판은 서울고법 2018노2856 사건이다.

안봉근에 대한 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173, 1247(병합), 2018고합43(병합) 사건이고, 2심 재판은 서울고법 2018노2073 사건이다.

이병기와 이헌수에 대한 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233, 2018고합118(병합) 사건이고, 2심 재판은 서울고법 2018노1729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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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참여연대에서 재벌개혁운동을 시작으로, 권력감시와 사법개혁, 반부패 운동, 정치개혁 운동을 경험하였습니다. 약 20년 시민운동 경험을 또 다른 곳에서 펼쳐보려 노력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