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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규 독립유공자유가족복지조합 이사장
 차창규 독립유공자유가족복지조합 이사장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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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차창규 독립유공자유가족복지조합 이사장은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불같이 일고 있는 불매운동에 대해 단호한 목소리로 "맞다. 불매운동이 바로 제2의 독립운동"이라면서 "청년들이 일제강점기에 살지 않아 독립운동을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차 이사장은 "우리 청년들도 당시에 백범을 만났다면 안중근이 되거나 윤봉길이 됐을 것"이라면서 "시대의 요구와 정의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바로 독립운동이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1919년 수원지역 만세운동을 조직하고 실천한 독립운동가 차희식 선생의 손자로 광복회에서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광복회를 떠난 뒤엔 독립유공자유가족복지조합의 이사장이 돼 생활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가족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 위치한 매점 두 곳을 서울시와 계약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나온 수익금은 전액 독립유공자 지원 사업에 쓰인다고 한다. 매점 운영 이후 지난 3개월간 발생한 수익금 7500만 원은 오는 8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를 통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독립운동 하면 3대가 가난하다'라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직접 지원 방식을 찾아 나선 차창규 이사장, 그는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자발적으로 'NO 일본 맥주'를 써붙였다. 그가 운영하는 한강 여의도 매점 두 곳에는 각각 김구 주석을 비롯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사들이 1945년 11월 중국 충칭에서 찍은 환국기념사진과 1920년대 임시의정원에서 사용했던 대형 태극기가 걸려있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이에 반발해 일어난 전국 편의점들의 불매운동 선언, 그 한 달을 돌아보며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독립유공자가족복지조합 사무실에서 차창규 이사장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독립유공자 후손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탄생한 한강 여의도 매점
 독립유공자 후손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탄생한 한강 여의도 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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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후손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탄생한 한강 여의도 매점
 독립유공자 후손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탄생한 한강 여의도 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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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였으면 청년들이 안중근 윤봉길 됐을 것"

-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불매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우리 광복회 단체(독립유공자 후손 대부분이 광복회 회원)는 일본 사람들에게 뼈저리게 피해를 보고 집안이 망한 사람들이다. 원래부터 일본과는 철천지원수다. 그렇다고 후손들이 대놓고 미워할 수는 없는 일, 이런 시기에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사명감 때문에라도 불매운동을 한 거다. 물론 불매운동이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근본대책은 국가 간에 차원 높게 논의해서 해결을 봐야 한다. 작은 보탬이라도 되자는 의미로 진행했다."

- 청년들 사이에서는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라는 문구가 유행이다.
"맞다. 불매운동이 바로 제2의 독립운동이다. 청년들이 일제강점기에 살지 않아 독립운동을 못한 것이다. 기자님도 그랬을 테지만, 우리 청년들도 당시에 백범을 만났다면 안중근이 되거나 윤봉길이 됐을 것이다. 독립운동이라는 건 시대의 요구와 정의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짜 독립운동이다."

- 이런 가운데 '세월호 해 처먹는다'라는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던 차명진 전 의원이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이 불매운동이나 국산부품 자력갱생운동 같은 퇴행적인 운동으로 일부 대중의 저급한 반일 종족주의에 의지한다"라는 말을 했다.
"차명진 전 의원은 우리 종씨인데, 똑똑한 줄 알았는데, 이런 발언을 하는 걸 보면, 이런 마인드 때문에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것 같다. 지금 국민들의 정서에 전혀 맞지 않는 발언을 했다. 튀려고 한 것 같다. 발언을 보면 불매운동을 비하한 것인데,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다. 싸움을 걸어오는데 맞고만 있나. 이럴 때일수록 더 똘똘 뭉쳐야 한다. 오천만이 똘똘 뭉쳐야 겨우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

- 불매운동 움직임은 더욱 커지고 있다. 체감하나?
"그렇다. 국민들이 크게 공감하고 각성한 것 같다. 다시 강조하지만 첫 숟가락부터 배부를 수 없다. 지금은 양심에 따라 대의를 쫓는 국민들을 늘려야 할 시기다. 잘 파급이 돼 촛불혁명처럼 우리들의 지상 과제가 돼야 한다. 이렇게 행동하다 보면 일본의 야욕에 맞서 제대로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의정부 고등학교 학생연합 소속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옆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의정부 고등학교 학생연합 소속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옆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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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고등학교 학생연합 소속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옆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의정부 고등학교 학생연합 소속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옆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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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으로는 피해를 호소하거나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현상에는 득도 있고 피해도 있는 거다.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의 차이다. DNA에 친일이 배긴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도 안 된다. 그들을 설득하자는 게 아니다. 더 많은 양심세력을 늘리자는 말이다. 양심세력이 행동하다 보면 일본과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렇다고 일본과 싸워서는 안 되지 않나?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원만하게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다만 국가 대 국가 간의 대결에서, 특히 일본과의 대결에서, 유리한 위치를 스스로 벗어던질 필요가 없다. 제대로 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국민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 불매운동을 계기로 삼자는 말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들의 의식 수준도 한 단계 높이자는 뜻이다."

- 지금을 왜 제2의 독립운동이라고 했나?
"그렇다. 일본은 강한 나라다. 경제로 보나 군사로 보나 우리보다 3배 이상 강한 나라다. 우리 국민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있지만 일본은 패망한 뒤 한국을 떠나며 '우리가 영광을 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라고 말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언제라도 일제 치하 36년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어찌 될지 모른다. 지금이 우리의 정신을 바로 잡는 기회다. 제2의 독립운동이라고 말한 이유다."

"한강 매점은 독립운동가 후손 직접 지원하기 위해 탄생... 더욱 확산돼야"
   
독립유공자 후손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탄생한 한강 여의도 매점
 독립유공자 후손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탄생한 한강 여의도 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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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후손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탄생한 한강 여의도 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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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와의 협약을 통해 한강 매점 두 곳의 운영권을 따냈다. 독립유공자 후손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렇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애써줬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 바친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살길이 막막해 기초생활자와 그 바로 위인 차상위 계층으로 수십 년을 살아왔다. 1000명이 넘는다. 그것도 서울에서만 그렇다. 광복회 사무총장 시절부터 개인적으로라도 그분들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언제나 한계가 있었다. 한강 매점 운영을 통해 1/10000이라도 돕고 싶었다. 운영 3개월 만에 7500만 원을 마련했다. 사랑의열매와 함께 광복절을 전후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유인태 국회사무총장을 모시고 전달식을 할 예정이다."

-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이야기, 극복하고 싶었기 때문인가?
"국민들이 더 많이 도와주셔야 한다. 광복 후 75년 만에야 첫걸음을 뗀 거다. 전국의 도지사와 시장들이 좀 더 나서줬으면 한다. 3.1운동 100주년 만에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매점 운영권을 겨우 따냈다. 이마저도 하냐 마냐를 놓고 저울질 하다 박 시장의 결심 이후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겨우 이뤄졌다. 나라를 되찾겠다고 목숨 바친 것 아닌가. 더 큰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 한강 매점이 기대보다 운영이 어렵다고 들었다. 불매운동 때문인가?
"오히려 불매운동은 전혀 상관이 없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불편하다고 말하는 시민들도 없다. 이미 우리 매점이 독립유공자를 지원하는 사업장임을 모두가 안다. 매점 밖에 김구 선생을 비롯해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 기념사진이 걸려있다. 임시의정원이 사용했던 태극기도 걸려있다. 여기서는 불편해하지 않는다.

다만 요즘 운영이 어렵다. 1년 중 가장 성수기인데 서울특별시 한강사업본부가 우리 매점 앞 잔디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개방하지 않았다. 그것도 여름 내내 개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 2호 매점 앞만 개방하지 않았다. 다른 곳은 열었다. 진짜 이유를 모르겠다. 파라솔과 돗자리를 깔아야 사람이 오는데, 오질 못하게 만든 거다. 우린 독립유공자 후손을 돕는 매점이다. 좀 더 마음을 써줬으면 좋은데 아쉬운 부분이다."
 
차창규 독립유공자유가족복지조합 이사장
 차창규 독립유공자유가족복지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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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유공자 지원 편의점만의 장점이 있을 것 같다.
"우리 매점에 오면 사진을 많이 찍는다. 이는 곧 한강에 온 청년들이 사진을 찍으며 자연스레 독립운동에 대해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이를 한강 전 차원에서 활용했으면 한다. 이른바 70년대 '한강의 기적'처럼, 한강의 르네상스를 일으켰으면 한다. 청년들이 몰려와 새로운 실험을 하고 독립운동가 후손 지원 매점에서 함께 즐기고 만들었으면 하는 거다. 청년들은 이미 몰려오고 있다."

- 한강 매점이 불매운동의 중심에 선 느낌이다.
"조상들은 나라 찾겠다고 끼니를 굶어가며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 했다. 그 정신을 후손 된 입장에서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그때보다 여건도 훨씬 좋은 것 아닌가. 우리가 더 앞장서겠다. 국민들도 힘을 모아서 대의를 실천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국격을 높이는, 우리의 정신을 고양하는 기회다. 괜히 제2의 독립운동이라 평한 것이 아니다. 국민여러분께서 좀 더 힘을 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차창규 이사장의 조부 차희식 선생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과 우정면 일대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다.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3.1혁명이 전국을 휩쓸자, 선생은 지역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실천했다. 200여 명을 모아 시작한 독립만세운동은 금세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선생은 일제의 경찰관 주재소와 기관 등을 파괴했다. 그러나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바람이 일자 시위 주모 혐의로 체포됐다.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5년형을 받은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9년 2개월을 복역했다.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39년 영면했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태그:#차창규, #불매운동, #반일, #경제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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