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샤인> 포스터.

영화 <샤인> 포스터. ⓒ 라이크 콘텐츠

 
'음악 영화'는 시대를 막론하고 꾸준히 사랑받고 있지만 그 양상은 시대에 따라 꾸준히 변화해왔다. 음악영화들은 대부분 음악뿐만 아니라 음악을 통해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상을 보여주려 했다.

<원스> <어거스트 러쉬>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등,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몇 편의 음악 영화들이 2007년 탄생했다. 하나같이 음악영화의 공식이 된 작품들이다. 이듬해에는 <맘마이아!>가 나와 대성공을 거두며 뮤지컬 음악 영화의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지난해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 역시 메가 히트에 성공한 음악영화다. 이후로 <로켓맨> <예스터데이> 등 전설적인 현대 음악 거장들을 다룬 음악 영화들이 줄을 이어, 또 다른 이정표를 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수많은 음악 영화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한 편이 있다. 북미에서는 1996년, 국내에서는 이듬해에 개봉한 <샤인>이다. 우린 이 영화를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한 인간의 온전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영화가 특별한 건 아빠와 아들 즉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아주 잘 보인다는 점이다.

'천재' 데이비드의 불행
 
 영화 <샤인>의 한 장면.

영화 <샤인>의 한 장면. ⓒ ?라이크 콘텐츠

 
호주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 데이비드 헬프갓(제프리 러쉬)은 아버지 피터(아민 뮬러 스탈)로부터 엄격한 피아노 교육을 받는다. 피터는 어린 시절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키웠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접었고 이후에는 아버지를 가스실에서 잃었다. 피터는 개인적으로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투영해 오직 1등 만을 강요했으며 단단한 가족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던 중 작은 대회의 심사위원 로즌 선생(니콜라스 벨)이 데이비드의 재능을 알아보고 데려다 키우려 한다. 역시나 반대하지만 이내 뜻을 굽히는 피터. 시간이 흘러 데이비드는 큰 대회에서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의 눈에 띄어 미국 유학의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피터의 극심한 반대로 무산된다. 기회는 또 찾아오는 법, 이번엔 영국왕립음악대학에서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데이비드는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집을 뛰쳐나와 영국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데이비드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본 팍스 교수 밑에서 고통스러울 정도의 노력 끝에 콩쿠르에 나가게 된다. 

데이비드가 선택한 연주곡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바람이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팍스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불멸의 곡'으로 "미치지 않고서야 연주할 수 없는 곡"이다. 데이비드는 이 곡을 완벽히 연주하는데, 연주하는 도중 아버지와의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쓰러진다.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갇힌 신세가 된 데이비드, 어느 날 빗속을 달려 당도한 바 '모비스'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교육, 심리, 관계의 미묘함이 공존하는 음악 영화
 
 영화 <샤인>의 한 장면.

영화 <샤인>의 한 장면. ⓒ ?라이크 콘텐츠

 
<샤인>의 제프리 러쉬는 당시 북미에서 있었던 대부분의 주요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그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을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익히 알려진 그의 다른 역할,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헥터 바르보사 선장이나 <킹스 스피치>의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영화의 전반을 이루는 또 다른 실질적 주인공은 데이비드의 아버지 피터 헬프갓이다. 그를 통해 보여지는 빙퉁그러진 교육 방식과 가족애의 면면은, 그 자체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피터 덕분에 <샤인> 속 데이비드 헬프갓이 보다 돋보이게 되었고 보다 입체적으로 표현됐다.

물론 피터의 교육 방식이나 가족애가 특별하다고 보긴 힘들다.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자식에게 투영시켜 대신 이루게 하려는 것, 부모로서 자식을 자신의 손 안에 넣고 절대적으로 컨트롤하려는 것 등 삐뚤어진 부모의 사랑은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다룬 바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20년 전에 나왔고 또한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박수를 칠 만 하다. 음악영화임에도 교육, 심리, 관계 등 가족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드라마의 총집합
 
 영화 <샤인>의 한 장면.

영화 <샤인>의 한 장면. ⓒ 라이크 콘텐츠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데이비드가 영국왕립음악대학에 진학하기까지, 그리고 그곳에서 사력을 다해 노력하는 이야기, 콩쿠르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벽하게 연주하곤 쓰려져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난 후의 나날으로 각각 나뉜다.

첫 번째 파트에서 아버지 피터와 아들 데이비드의 관계 설정이 주를 이룬다면, 두 번째는 '천재란 고통이 수반된다'는 명제를 정확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파트는 '한 인간의 인생을 규정내리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끔 한다. <샤인>은 흔히 볼 수 있는 드라마들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보여주는 '드라마의 총집합'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희한하게도 몇몇 이야기들이 겹쳐진다. 오히려 그러했기에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소재는 모차르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일찍이 아들 모차르트의 재능을 알아채고 지극한 보살핌과 교육으로 천재성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온갖 역경을 뚫고 파란만장 인생을 살아온 한 인간의 진솔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한 인간의 삶을 줄기로 하여 참으로 많은 것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면서도 큰 맥락을 손상시키지 않는 솜씨를 발휘했다. 

다 차치하고서라도, 역시 '음악 영화'다운 솜씨로 장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 선곡을 자랑한다. 눈에 보이는 장면 그 이면의 이야기를 캐치해서 음악을 통해 강조하는 점은 더할 나위 없는 감상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그저 듣고만 있어도 좋은 그런 음악 말이다. <샤인>에서 음악과 영화는 따로 또 같이 완벽히 조우한다. 영화로서 감상해도 좋고, 음악으로서 감상해도 좋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샤인 제프리 러시 음악 영화 천재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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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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