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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떻게 존재할지부터 고민하고 싶어요. 지금 시기엔 그게 필요하다 느끼고, 그 고민을 하고 나면 무슨 일을 하든 잘살 것 같아요."

졸업을 앞둔 내게 사람들이 취업 준비에 대해 물으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내 뜻을 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주 가끔이다.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이 고민을 가지고 올해를 산다.
 
 벗어나야 했다.
 벗어나야 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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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지?' 처음엔 아주 순수한 궁금증이었고 내가 마주했던 사건들에 대한 원망이었다. 두 해 전, 나는 도망치듯 네팔에 갔다. '집'과 '가족' 안에서 나는 항상 초조하고 불안했다. 

내 방으로 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몸이 굳고 긴장하는 습관이 생에 걸쳐서 생겼고다. 그 습관을 24시간 느끼며 지내니 웅크러지는 게 익숙해졌다. 목적지가 네팔인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집'이 아니면 됐다.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지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네팔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계단에서 쓰러져 두개골이 깨졌다. 나는 병원 입원실에서 눈을 떴다. 뇌진탕이 있어 정신을 잃었을 때 나와 같이 있었던 사람은 응급구조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나와 친하게 지내던 언니와 동생이 입원한 동안 화장실도 혼자 못 가는 나의 병수발을 들어줬다. 자칫 경과가 나쁘면 뇌수술을 해야 했지만 그런 일 없이 두개골은 빠르게 붙었다. 수많은 우연의 조건들이 들어맞아 큰 화를 면했다. 처음으로 하늘이 내 삶을 완전히 망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원망스럽지 않았던 것도 잠시였다. 몸이 아파 걸음이 느려진 나는 신호등의 초록불이 꺼지기 전에 신호등을 다 건널 수 없었다. 신호등을 건널 수 없었던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우리 아파트 단지 한 블록이 전부였다. 내가 한국에 오자마자 마주한 한계의 시작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웠다. 더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일주일에 세 번, 한의원과 요가를 다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은 아주 천천히 내게 스며들었고 그에 비해 서울의 리듬은 너무 빨랐다. 나는 내가 먹을 끼니는 내가 만들어 먹고 꼬박꼬박 요가를 하러 가고 밀가루와 설탕을 먹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나의 미세한 체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고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은 주제에 맞지 않는 옷 같았다. 여기저기서 해야 할 일들을 쏟아부어 몇 달 동안의 스케줄러가 빡빡했고 정시에 다 해내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딱지를 건넸다. '모자란' '책임감 없는' '너무 자유분방한'... 나는 그 딱지들이 싫어서 무리인 줄 알면서도 끼니를 대충 때우고 잠을 설쳐가며 해야 할 일들을 해내며 몸살을 앓았다. 

공강 시간마다 친구들은 밥을 30분에 걸쳐 먹는 나를 두고 미안한 얼굴로 먼저 바삐 갈 길을 갔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아픈 날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교수들은 내게 '왜 이렇게 자주 아프냐'며 나와 이번 학기 성적에 대한 실망을 내비쳤다.

내가 네팔을 오가는 이유
 
 네팔.
 네팔.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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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이불을 덮고 울었다. 나야말로 정말 아프고 싶지 않은데. 나는 보통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실제로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찾아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때도 있었다. 학교에서 갑자기 공황이 왔고, 무기력 때문에 가만히 누워 밥도 안 먹고 며칠을 내리 보내기도 했다.

남들 다 하는 거,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나만 못하지,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고된 일을 왜 해야 하지?

이런 마음을 견디기 힘들 때마다 나는 네팔로 향했다. 네팔에서 나는 내 상태 그대로 지낼 수 있었다. 화장은커녕 세수도 안 하고 자고 일어난 그대로 하루종일 동네를 산책했고, 해가 지는 호수를 가만히 보면서 차를 마셨다. 길가에 쉬고 있는 소와 개들과 인사하고 내가 내키는 일을 했다. 아무도 나에게 무언가 기대하지 않았고 나도 그랬다. 

제대로 쉬는 것 같았고 쉬니까 상태는 나아졌다. 내 리듬대로 지내니 순간에 집중하게 됐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세심히 마주했다. 몇 달이고 내 안에 떠오르는 질문을 곱씹었고 그러면 때에 맞춰 힌트를 주는 책이나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충전한 힘으로 서울로 돌아와 버티며 지내고 다시 방전될 즘 네팔에 가서 충전하기를 반복했다. 이 과정을 이해하고 곁에서 보듬어준 어른들이 있었다. 네팔에 가족이 생겼고 따듯한 보금자리인 집이 생겼다. 혈연이 아니어도 내가 편히 쉬고 비빌 수 있는 어딘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가장 최근 네팔행 비행기를 탔을 때는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삶을 포기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고 마음이 기울어지려고 했다. 기우뚱하는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나는 왜 태어났지?'라는 질문을 가지고 갔었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는가"

평소처럼 아침밥을 먹고 단골 카페에 앉아 차를 마셨다. 그날은 책을 읽었고 책의 끝머리는 작가가 강연 중 받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마무리돼 있었다. 인도 철학을 공부했고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알려진 작가는 '우리는 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는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답부터 말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문화, 시대, 나이, 인종을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가지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서술했다. 무언가 생겨나기만 하고 사라지지는 않는다면, 존재가 완벽한 상태로 무한히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 존재는 본인의 존재 이유에 질문을 던질까? 존재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까?

머리가 '띵' 하는 느낌과 함께 여러 가지 기억의 조각들이 떠올랐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누군가 나에게 했던 말, 시공간을 초월하는 다차원 세계에 대한 영화를 보며 무슨 의미인지 이해 못 했던 장면들, 죽음을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계속 죽는데도 이유를 찾아나가고 의미 있는 삶을 고민하던 드라마의 장면, 나는 경험을 잘 해석할 수는 사람이고 나중에 나만의 지혜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던 점괘...

내가 왜 태어났고, 왜 사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삶을 지속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태어났고 나만의 답을 채우기 위해 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또래보다 빨리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상황들을 만났던 것, 거칠게나마 소화를 조금씩 해내고 있었던 것, 답을 찾으려고 치열하게 찾아 나섰던 것, 다른 삶의 방식을 편견 없이 잘 받아들이던 것 모두 그 과정은 아닐까?

전환
 
 회의감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회의감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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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존재하지?'에 대한 회의감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존재하고 싶지?'라는 희망으로 바뀌었다.

그동안은 내 삶을 뒤흔들었지만 앞으로는 내 삶에 나침반이 되어줄 이 질문을 잘 가지고 가고 싶다. 죽는 것에 대해 고민했던 만큼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할 시기가 온 것이다. 더 잘 존재하기 위해 이런 고민이 찾아왔을 것이다. 

화두를 놓지 않고 산다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살든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런 나에게 취업 스펙을 위해 전략적으로 해야 할 활동은 무엇이고 자소서를 어떻게 매력적으로 쓸 것인가 같은 문제들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이고 어떤 가치를 우선으로 두고 살아갈 것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삶의 생동감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어떤 태도로 사건과 사람들을 만나고 해석할 것인지의 문제들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이며 동시에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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