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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못했지만 나만의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불안하지만 계속 나아가는 X세대 중년 아재의 좌충우돌 일상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3년 전 일이다. 새해 벽두부터 회사에서 보너스 대신 좌천을 선물(?)로 받은 나는 후유증으로 공황장애를 앓았다. 치료와 더불어 마음의 안정을 위해 퇴근 후 명상센터에서 저녁반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겪은 일화 하나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각 개인이 명상센터를 찾은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포함해 참석자 다수가 직장에서 받은 다양한 스트레스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강사는 이 상황을 매우 흥미롭게 관망하더니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들, 오전반 선생님들의 가장 큰 근심이 뭐였는지 아세요?"

나는 이것 또한 수련의 일부인가 싶어 진지하게 고민하려 했는데, 강사가 곧바로 충격적인 답을 알려줬다.

"청년 취업 문제. 또 하나는 경력이 단절된 분들의 재취업 문제였답니다."

아... 이 무슨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이란 말인가. 내가 사는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직장생활 20년 차인 내가 '전지적 직장인 시점'으로 보건대, 이 세상은 둘로 나뉜다. 출근하려는 자와 퇴사하려는 자. 어떻게든 퇴사하려는 자인 나는 최근 어떻게든 출근하려는 자들을 연속으로 만나며 기묘한 감정을 겪었다. 그날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릴까 한다.   
 
직장생활 20년차인 내가 '전지적 직장인 시점'으로 보건대, 이 세상은 둘로 나뉜다. 출근하려는 자와 퇴사하려는 자.
 직장생활 20년차인 내가 "전지적 직장인 시점"으로 보건대, 이 세상은 둘로 나뉜다. 출근하려는 자와 퇴사하려는 자.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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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려는 자

주말을 포함해 사흘을 연달아 쉰 다음 출근한 화요일 아침이었다. 몸은 회사 근처까지 왔는데 정신이 아직 뒤따라오지 못한 듯 몽롱했다. 카페인 수혈이 절실했다.

커피를 긴급 공수하기 위해 황급히 카페를 찾았다. 그곳에는 면접용 정장으로 무장한 세 명의 전사가 앉아 있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은 그들은 각자 허공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외우고 있었다. 그들 사이의 거리가 유난히 멀어 보였다. 

면접이라는 전투를 앞둔 그들에게서 '이 회사에 꼭 출근하고 싶다'는 결연한 의지가 여름날의 더운 기운처럼 훅 끼쳐왔다. 세 사람 모두 사이좋게 합격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렇게 된다면 세 사람은 (지금은 서로 경쟁자일지 몰라도) 훗날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 전우 사이로 지내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징....... 훈훈한 상상에 빠진 나를 진동 벨이 흔들어 깨웠다. 퇴사하고 싶은 중년 직장인은 입사하고 싶은 청년들을 등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며 사무실로 향했다.

돌아가려는 자

(내가 없다고 회사가 망하는 건 아니지만) 연차를 단 하루 쓴 대가는 상당했다. 하지만 쌓여있는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제로 돌아가고 싶다는 감상에 빠져있을 겨를도 없이 업무에 돌입하며 현실 세계로 빠르게 회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커피를 아직 다 마시지도 못했는데 시간은 벌써 오전 11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곧 점심시간이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처럼 안도와 설렘을 느낀다. 때마침 휴양지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온 친구에게서 귀국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나는 친구에게 따뜻한(?) 격려를 담아 답장을 보냈다.

"엿새나 휴양지에서 쉬고 온 기분이 어때? 환영한다! 지옥으로의 재입성을!"

나는 친구가 출근의 고통에 몸서리치며 절규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휴가지가 우기여서 여행 내내 비가 내렸고, 친구는 감기에 된통 걸렸으며, 아이도 몸이 안 좋은지 자주 울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건 친구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런 말 하면 안 믿겠지만, 마지막 날은 정말 출근하고 싶더라."

친구는 나와 함께 퇴사를 절실하게 꿈꾸는 동지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출근을 이야기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시 들어가려는 자

군대만큼이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 직장이라지만, 그래도 퇴근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두 번의 지하철 환승을 거쳐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기프티콘 메시지가 왔다. 보낸 이는 동생이었다.

동생은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두 딸을 키우는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10년 넘게 경력이 끓긴 전형적인 '경단녀'다.

재취업을 하기로 어렵게 마음의 결정을 내렸지만, 10년을 쉰 주부가 뚫어야 할 천장은 몹시도 높았다. 그래도 동생은 도전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시간제 공무원 채용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하지만 막상 출근을 앞두고는 아이들 걱정과 더불어 자기가 과연 업무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밤잠을 설친다고 했었다. 그랬던 동생이 어느새 한 달이 지나 첫 월급을 받았다며 커피 쿠폰을 보내온 것이었다.

"오빠! 나 요즘 너무 행복해. 실수도 하고 아직 서툴지만, 열심히 할 거야. 다시 출근 할 수 있게 된 나 자신이 너무 대견해."

출근하는 일상을 만끽하고 있는 동생의 기쁨이 충분히 느껴졌다. 최근 몇 년간 볼 수 없던 모습이기도 했다. 출근을 욕망하며 입사하는 사람들과 퇴근을 갈망하며 퇴사하는 사람들. 이들이 한데 뒤엉켜 살아가는 세상이다.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명문장이 떠올랐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고, 믿음의 세기이자 불신의 세기였다. (중략) 우리들 모두는 천국을 향해 가고자 했으나 우리 모두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태그:#전지적직장인시점, #출근,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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