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7월 16일 이 법이 시행된다는 보도를 접하자, MBC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 떠올랐다. 지난 봄 방영됐던 이 드라마는 특별근로감독관 조진갑(김동욱)이 온갖 종류의 악질 상사들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담았다.

과다업무를 지시하고, 욕하고 때리며, 사생활마저 침해하는 이 드라마 속 상사들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악질 상사들의 다양한 성격 유형을 극단적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이들의 '갑질'은 보는 이의 분노를 들끓게 했고, 조진갑의 시원한 복수는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선사했다.

드라마 방영 당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면 이 법의 적용을 곧바로 받았을 이들 악질 상사들. 드라마 속 인물들을 통해 남들을 괴롭히는데 거리낌이 없는 악질 상사들의 심리상태를 살펴본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 최서라, 양인태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한 장면. 조진갑(김동욱)은 정의를 위해 싸운다.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한 장면. 조진갑(김동욱)은 정의를 위해 싸운다. ⓒ MBC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했다. 이렇듯 직장 내 괴롭힘의 핵심은 권력의 우위에서 나오는 가혹행위다.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가 가혹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지도자들은 권력을 보다 좋은 기업문화와 사회를 만드는 데 사용하려 애쓴다. 하지만 권력을 가지면 무척 위험해지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특권 의식을 지니고 타인을 착취하거나 오만하게 행동하는 성격유형이다. 이들은 평생토록 자신의 우월감을 증명하려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타인을 이용하거나 착취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공감능력도 매우 떨어져 상대방의 고통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며 자신의 이런 행동에 대해 문제의식도 갖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갖게 될 경우, 이들의 권력은 타인을 짓밟아 우월성을 추구하는데 사용된다.

드라마 속 최서라(송옥숙)와 양인태(전국환)가 바로 이런 부류다. 수시로 등장하는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최서라야" "나 양인태야"라는 대사는 '나는 특별하다'라는 이들의 믿음을 잘 보여준다. 최서라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계열사 사장들의 사생활을 통제하고, 자신의 수발을 드는 비서 말숙(설인아)에게도 수시로 손찌검을 한다.

양인태 역시 자신을 돕는 사람들을 모두 '개' 취급하며 필요할 때 이용하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둘 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보고 전혀 죄책감 같은 걸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아무리 조진갑이 경고를 주고, 법적으로 제재를 받아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의 우월감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고도 전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 모두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징이다.

반사회성 성격장애 : 양태수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진 양태수(이상이)는 갑질과 폭력의 제왕이다.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진 양태수(이상이)는 갑질과 폭력의 제왕이다. ⓒ MBC

   
그럼 최서라와 양인태의 아들 태수(이상이)는 어떨까? 최서라와 양인태는 무작정 폭력을 휘두르기보다는 용의주도한 방법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지킨다. 하지만, 태수는 다르다. 기업의 오너가 되어서도 도무지 생각을 할 줄 모른다. 그저 자신의 기분대로 분노를 폭발시키고 내키는 대로 폭력을 행사한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재벌 2세이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자신과 자신의 기업에 미칠 영향도 의식하지 않는다.

태수의 모습들은 사회적 규범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며, 충동적이며, 빈번하게 육체적으로 타인을 공격하고, 자신의 안전까지 무시한 채 폭력적인 행동을 하며, 공감능력이 없어 타인을 해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반사회성 성격장애' 진단기준을 모두 충족시킨다.

태수의 이런 성격은 '자기애성 성격장애' 부모의 영향을 받아 형성됐을 가능성이 크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방법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는 부모의 방식은 태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태수는 부모로부터 공감받는 경험을 하지 못했을테고, 당연히 타인을 배려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올바른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태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충족되지 못한 욕구와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뿐이다.

게다가 태수의 부모는 태수가 화를 내고 조르면 권력을 이용해 타인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주곤 했다. 이런 환경에서 반사회성이 키워진 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갖게 되면 무시무시한 결과들이 초래된다. 드라마 속 태수가 엄청난 폭력을 저지르고도 법망을 피해 다니며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내듯 말이다.
 
갑질 당하면서 갑질하는 상사 : 구대길, 하청업체 사장

한편, 드라마에는 양인태, 최서라, 양태수에게 당하면서도 자신의 부하들에게는 갑질을 하는 구대길(오대환)과 하청업체 휴먼테크 사장이 등장한다. 구대길은 양인태 일가에게는 스스로 '개가 되겠다'며 비굴하게 복종하고, 반대로 자신의 부하직원들에게는 무자비한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다. 휴먼테크 사장은 직원들에게 신체적인 폭력을 쓰지는 않지만, 언어적 정서적으로 직원들을 학대한다. 무리한 야근을 시키고도 양태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 회식 참석을 강요한다. 하지만 양태수에게는 꼼짝 못한 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이들이 갑질을 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던 구대길은 권력이 있는 자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사장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고 일종의 생존전략으로 타인을 이용하는 것을 학습한다. 그리고 자신이 권력자에게 빌붙어 느꼈던 열등감과 굴욕감을 극복하고자 스스로 권력에 집착한다. '권력에 대한 집착은 본인이 표현하거나 인식하기를 꺼리는 열등의식을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라는 정신분석가 칼 구스타프 융의 해석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기러기 가장인 휴먼테크 사장은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원청에 충성하며 직원들을 혹사시킨다.

하지만 이들은 문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성격장애 환자인 양인태, 최서라, 양태수와는 다르다. 이들은 일련의 사태들에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를 시도한다. 구대길은 자신의 아들을 구해준 조진갑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며 결정적인 순간 진갑을 돕는다. 휴먼테크 사장 역시 과로와 폭행으로 쓰러진 직원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다 조진갑의 편에 선다. 극단적인 성격장애 환자들인 양인태 일가보다 이들은 훨씬 현실적인 캐릭터들이다.

피해자의 심리상태
 
 말숙(설인아)은 최서라 회장에게 매일 갑질을 당하면서도 참고 또 참으며 살아간다.

말숙(설인아)은 최서라 회장에게 매일 갑질을 당하면서도 참고 또 참으며 살아간다. ⓒ MBC

   
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은 이런 악질 상사 밑에서 일해 온 직원들의 모습이다. 최서라의 갑질을 누구보다 심하게 당해온 비서 고말숙(설인아)은 모욕 당하면서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남자친구 천덕구(김경남)의 헌신적인 설득이 있을 때까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복종하며 살아간다. 태수에게 매일 발길질을 당하는 계열사 사장들도 마찬가지다. 속으로 억울하다 분하다 하면서도 아무도 이 발길질에 대응하거나 함께 힘을 모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구대길이 운영하던 회사의 중간간부들도 욕지거리를 매일 들으면서도 그저 순종할 따름이며, 하청업체 직원들 역시 무리한 업무지시에 그 누구도 저항하지 않는다.

이들 노동자들은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활동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현실적 이유에서 어려움을 참아낸다. 하지만, 지나치게 부당하고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심리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이 이야기하는 '학습된 무기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셀리그만은 개에게 지속적인 전기 자극을 주면, 탈출 가능한 곳에서도 탈출을 시도하지 않고 고통에 순응하는 모습을 발견했는데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칭했다. 즉, 계속되는 고통과 억압이 무기력하게 만들어 저항할 수 있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20~64세 성인남녀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간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73.3%이었다. 하지만 60.3%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미 많은 노동자들이 드라마 속 노동자들처럼 현실적인 이유와 심리적 무기력으로 부당함에 저항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과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악질 상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들을 무기력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벌써부터 법의 한계가 논의되고 있기는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실시되고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부당함을 참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주지 않을까 싶다. 무언가 대처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아무 방법이 없다고 느끼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법이 실시 됐다. 그러니 이제 무기력에서 벗어나 함께 대응해 보자.

"참지 마세요. 무서워하지도 말고 숨지도 말아요. 그래야 제가 싸울 수 있어요. 제가 대신" (11회)

드라마 속 조진갑의 외침처럼 이젠 참지 말고 법을 잘 활용해 보자. 그러다 보면 지나치게 권위적인 한국의 직장문화도 개선될 날이 오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립니다.
조장풍 갑질 직장내괴롭힘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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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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