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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무역전쟁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 지난 1일 일본이 한국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뒤, 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수준이다. 양국이 언제 한미일 삼각 공조를 외쳤는가 싶을 정도이다.

언론들은 매일매일 이번 사태에 대한 한국인들의 대응을 보도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번 일본의 조치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어느 정도로 파괴력이 있고, 일본여행 취소가 일본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등 갖가지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다. SNS에도 이와 관련하여 수많은 결의와 격려가 넘쳐나는 중이다.
 
 겨레하나 회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조치에 대한 규탄 촛불집회를 열고 아베 규탄과 ‘친일적폐’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겨레하나 회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조치에 대한 규탄 촛불집회를 열고 아베 규탄과 ‘친일적폐’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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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일본의 분위기는 어떨까? 한국인들이 이렇게 흥분하는 만큼 그들도 흥분하고 있을까? 이 분쟁이 아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들 하는데, 일본 국민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오랜만에 일본에서 살고 있는 지인에게 안부를 물었다. 재일조선인 3세로 재일조선인 교육 일에 종사하다, 요즘은 언론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래만이네요."
"일본 사람들은 요즘 어때요? 한일 관계에 대해 관심은 있나요? 보통 사람들도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요?"
"그럼요. 한일 수출 규제를 연일 전하고 있지요."


역시나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였다. 혹자들은 한국인들만 호들갑 떠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지인의 말에 따르면 일본인들도 이번 사태를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어찌 안 그러겠는가. 최근 일본을 방문했던 친구 말에 의하면 일본 역시 9시 뉴스에 문재인 대통령이 계속 나온다고도 했다.

"사람들이 아베 말을 진짜 믿나요? 한국이 안보에 위협된다?"
"믿지요. 다음 선거도 아베가 이길 거예요."
"진짜 일본 언론들이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을 인용하나요?"
"문재인이 이상한 대통령이래요."


생각 외였다. 일본 사람들이 아베 수상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있다니. 아무리 자기 정부라고는 하지만 수출규제 이유도 계속 바뀌고 있을 만큼 일본 정부의 근거는 빈약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의 헛된 바람인 듯했다. 현재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는 물론 개헌 가능한 2/3 의석까지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인의 역사인식
 
참의원 선거 첫 유세 나선 아베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4일 참의원 선거가 고시된 가운데 후쿠시마(福島)현 후쿠시마시에서 첫 유세에 나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참의원 선거 첫 유세 나선 아베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4일 참의원 선거가 고시된 가운데 후쿠시마(福島)현 후쿠시마시에서 첫 유세에 나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교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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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대체 왜 일본인들은 아베 수상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있는 걸까? 지인은 그것을 일본인들의 부족한 역사인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학교에서 과거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까 한국이 역사를 왜곡한다고 생각해요. 역사 왜곡해서 일본 공격하는 나쁜 한국인 거죠. 요즘은 일제 강점기 때 만든 전투기나 전함에 대한 동경심도 있고. 일제 강점기 일본이 나쁜 일을 했다는 의식이 없어요."

황망했다. 아무리 역사를 배우지 않는다고 하지만 진짜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냥 독도 영유권이나 난징 대학살 등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적 사실만 안 가르치는 줄 알았더니, 우경화된 일본 정부는 아예 역사를 들어내고 가르치는 듯했다.

"자기네들이 한국을 침략한 건 알아요?"
"잘 몰라요. 아는 사람 중에서도 열등하니까 당했지, 일본이 앞서니까 지배했지, 그런 시대였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아요."
"일본인들은 우리의 분노를 이해할 길이 없겠군요. 우리가 왜 흥분하는지도 모를 테고."
"문제가 깊지요. 남북이 화해하는 모습이 아베 일파에게는 악몽이었을 거예요. 한민족은 열등한 민족이라 스스로 문제해결 못 할 거라 생각했을 거니까."
 
 
아베와 맞선 상인들 서울상인연합회, 한국마트협회 등 중소상인 자영업자 단체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일본제품 판매 중단 확대 기자회견을 열고 붉은 엑스 표를 한 아베 일본 총리의 사진을 들고 있다.
▲ 아베와 맞선 상인들 서울상인연합회, 한국마트협회 등 중소상인 자영업자 단체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일본제품 판매 중단 확대 기자회견을 열고 붉은 엑스 표를 한 아베 일본 총리의 사진을 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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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자체를 모르는 일본인이라. 그러니 강제징용과 관련된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흥분하고, 남북한 정상들이 만나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할 수밖에. 결국 이번 사태는 역사를 바로잡지 못한 시대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점령국 미국이 공산주의의 남하를 막기 위해 패전국 일본을 아시아의 대리인으로 내세우면서 비극이 잉태된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진짜 문제긴 하네요. 그럼 일본인들은 미국을 싫어하나요? 어쨌든 점령군이었는데."
"일본이 먼저 공격한 것은 알아요. 그러니 싫어하진 않죠. 그리고 해방국 미국은 일본을 특별히 대우했잖아요. 전쟁책임도 묻지 않기로 하고. 한국보다 훨씬 대우가 좋았어요. 다만 요즘 불안한 것은 언제나 일본 편이었던 미국이 이번에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지요."


재일조선인의 바람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슬슬 재일조선인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이야 무역전쟁의 당사자로서 일본 제품 안 쓰고, 일본 여행을 가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곳에서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은 어찌 한단 말인가. 안 그래도 외국인으로서 아직까지 공공연하게 차별받고 있는 그들인데 이번 한일 무역전쟁이 그들에게 피해는 끼치지 않을까?

"지금 우리의 바람은 한국이 굽히지 말고 끝까지 지금 노선을 지켜주는 것이에요."
"우리요?"
"재일조선인이요."
"그럼 재일조선인이 힘들어지지 않아요?"
"많이 힘들지요. 그런데 이제까지 편한 적 없었으니까요. 일본사람인 척하면서 사는 것은 더 힘들어요."


짠했다. 한국인도, 북조선인도, 일본인도 될 수 없는 재일조선인. 우리는 한동안 그들을 북한의 앞잡이, 간첩의 본산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들은 한국을 같은 핏줄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어쩌면 지금의 한일 무역전쟁은 재일조선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사건일지 모른다. 이번 분쟁 자체가 일본이 강제징용이라는 그들의 과거를 부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던 바, 이는 오랫동안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에서 겪어왔던 갖은 차별과 수모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의식 부재와 그에 따른 우경화. 이번 무역전쟁이 경제를 넘어 역사전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지인이 내게 남긴 당부를 언급해본다.

"일본계 미국인이 제작한 영화 <주전장>이 이제 곧 서울에서 개봉된답니다. 한국과 일본의 현황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꼭 봤으면 해요."
 
'주전장' 미키 데자키, "고마워요 아베" 미키 데자키 감독이 15일 오전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 시사회에서 아베 정권의 무역보복과 상영중지를 요청하고 있는 일본 우익 인사들에 의해 자신의 작품이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며 '아베 정권이 감사하다'는 익살을 부리고 있다. <주전장>은 우익들의 협박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뛰어든 일본계 미국인인 미키 데자키 감독이 한미일 3개국을 넘나들며 3년에 걸친 추적 끝에 만든 새로운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다. 25일 개봉.
▲ "주전장" 미키 데자키, "고마워요 아베" 미키 데자키 감독이 15일 오전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 시사회에서 아베 정권의 무역보복과 상영중지를 요청하고 있는 일본 우익 인사들에 의해 자신의 작품이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며 "아베 정권이 감사하다"는 익살을 부리고 있다. <주전장>은 우익들의 협박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뛰어든 일본계 미국인인 미키 데자키 감독이 한미일 3개국을 넘나들며 3년에 걸친 추적 끝에 만든 새로운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다. 25일 개봉.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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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