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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그레브 그라데츠(Gradec) 언덕에서 산책길을 굽이굽이 돌아 일리차(Ilica)거리로 내려왔다. 아내와 나는 발칸 반도 고유 음식의 풍미를 찾아 자그레브의 한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은 자그레브 여행의 중심지, 반 옐라치치 광장(Ban Jelačić Square)에서 남쪽으로 두 블록 내려가자 만날 수 있었다.
 
일리차 거리. 자그레브의 맛집과 현대적인 가게들이 모여 있는 번화가이다.
▲ 일리차 거리. 자그레브의 맛집과 현대적인 가게들이 모여 있는 번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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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의 비노돌(Vinodol) 레스토랑은 입구가 좁아서 마치 잘 숨겨진 맛집처럼 보였다. 안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식당 내부는 넓어지고 아치형 벽돌 천장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좌석들이 나타났다. 작은 나무들과 담쟁이덩굴로 덮인 실내는 현대적이면서도 아늑했다.

나는 우선 크로아티아의 세계적 특산물인 검은 트러플(Truffle)이 들어간 수프, 주하(Juha)를 주문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자라고 인공재배가 되지 않는 트러플은 유럽에서 가장 가치 있는 식재료로 여겨진다. 수프 안에서 트러플의 귀한 향과 맛이 배어 나왔다. 많은 양의 수프에 조금 뿌려진 트러플이지만 수프 전체의 맛을 좌우하고 있어서 그 진가를 확인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크로아티아 푸쉬. 파스타에 뿌려진 트러플 향이 입안을 완전히 지배했다.
▲ 크로아티아 푸쉬. 파스타에 뿌려진 트러플 향이 입안을 완전히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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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만나게 된 음식은 크로아티아의 인기 파스타인 푸쉬(Fuži)였다. 트러플을 넣은 파스타로 푸쉬 역시 트러플의 강한 향이 입안을 완전히 지배했다. 트러플은 우리나라에서는 먹기 힘든 귀한 식재료지만 크로아티아에서는 식당의 음식마다 트러플이 가미되어 나왔다. 크로아티아 깊은 숲 속에서 자라는 트러플은 크로아티아의 감자 칩과 맥주에도 들어가 있을 정도로 크로아티아에서는 대중적이라는 사실이 과장이 아니었다.

푸쉬와 함께 먹은 것은 브로데트(BRUDET)라고 불리는 크로아티아 전통 스튜. 크로아티아의 해안 지역에서 많이 먹는다는 스튜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큰 그릇에 담겨 나온 스튜의 모양에 나와 아내는 잠깐 당황했다. 종업원에게 먹는 방법을 물어보았더니 종업원이 스푼을 들고 친절하게 시범을 보여준다. 스튜만을 먹으면 맛이 담담했지만 푸쉬와 함께 먹으니 맛이 잘 어울렸다.
 
해산물 스튜. 하얀 생선살과 홍합, 붉은 토마토, 감자가 양껏 어우러져 있다.
▲ 해산물 스튜. 하얀 생선살과 홍합, 붉은 토마토, 감자가 양껏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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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 안에는 하얀 생선살, 홍합 등의 해산물과 붉은 토마토, 감자가 양껏 어우러지고 있었다. 부드럽고 길다란 생선살이 올리브 오일 안에서 푹 끓여져 있는데, 생선의 맛이 스튜 안에 묘하게 녹아 들어 있었다. 스튜 안에 뿌려진 레몬은 깊은 풍미를 더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숙소의 커튼을 젖혀 보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오늘도 자그레브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마주한 크로아티아는 파스타, 리조또, 피자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자그레브의 식당들에서는 이 이탈리아 요리를 크로아티아 스타일로 발전시킨 맛으로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자그레브 구시가의 그라데츠(Gradec) 언덕과 캅톨(Kaptol) 언덕 사이의 경사진 작은 길을 내려가서 녹투르노(nokturno)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소위 가성비 좋은 식당이어서 음식값이 싸고 맛 좋은 곳이라고 소문난 자그레브 맛집이었다. 우리는 몇 개의 작은 홀로 이루어진 식당 내부보다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 운치 있는 야외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식전 수프로 버섯 수프(Juha Mix Gljive)를 주문했다. 큰 대접 안에 담긴 수프에는 빵 조각과 버섯이 가득 들어 있어서 이 정도 수프만 아침에 먹어도 식사로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오전에 맛보는 따뜻한 수프의 식감이 기도를 타고 온 몸으로 퍼져 갔다.
 
리조토와 라자냐. 약간 맛이 짠데 짠 맛은 크로아티아의 독특한 풍미이다.
▲ 리조토와 라자냐. 약간 맛이 짠데 짠 맛은 크로아티아의 독특한 풍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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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파스타의 일종인 채소 라자냐(Vege Lazanje)와 함께 녹투르노 식당의 대표 메뉴인 리조토 녹투르노(Rizoto Nokturno)를 맛보기로 했다. 라자냐는 큼지막한 버섯과 익힌 토마토를 머리에 인 채로 온통 치즈 안에 담겨 있었다. 치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즐길 만한 맛이다.

리조토 녹투르노는 듣던 바와 같이 맛이 약간 짰다. 우리나라에서 맛 볼 수 있는 부드러운 리조토 위에 소금을 조금 뿌린 듯한 맛이다. 바다와 가까워서인지 크로아티아의 음식 맛은 대체로 조금 짠 편이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나는 살짝 짠 이 맛이 크로아티아에서 느낄 수 있는 풍미라고 생각했다.
 
비 오는 거리. 녹투르노 식당 옆 비 오는 거리에 한 부부가 길을 가고 있다.
▲ 비 오는 거리. 녹투르노 식당 옆 비 오는 거리에 한 부부가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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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을 따라 긴 기와지붕처럼 연결된 야외 좌석의 지붕 위로는 이번 여행에서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편하게 앉아 카푸치노(Cappuccino)를 즐기는 우리 주변으로 수많은 자그레브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자그레브 대성당 쪽으로 이동하는 한 무리의 단체 여행객들도 우산을 쓴 채 줄을 지어 지나갔다.

우리는 비 오는 일리차(Ilica) 거리로 나섰다가 젤라또를 맛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유명한 디저트 가게, 빈첵 슬라스티챠르니차(Vincek Slasticarnica)를 만났다. 1977년에 자그레브 번화가 중심에 케이크 전문점으로 문을 연 이 가게는 현재 젤라또 와 맛 좋은 케이크, 파이를 판매하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다행히 줄을 오래 서지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콘의 종류를 먼저 고른 후 수많은 젤라또 중에서 이 가게의 대표 젤라또인 빈첵(Vincek) 젤라또와 치즈 케이크 젤라또를 골랐다. 나와 아내 모두 두 스쿱을 주문했는데 예상대로 젤라또 양이 너무 많았다. 크로아티아는 젤라또의 맛이 부드럽고 깊은 맛이 있는데 자그레브에서도 역시 젤라또 먹기는 실패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우리는 가게 좌석에 앉아 젤라또를 먹다가 좌석 위에 놓여 있는 총천연색의 디저트 메뉴판을 보게 되었다. 그 안에는 달달해 보이는 젤라또와 함께 세계의 명품 차(茶)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이 차들은 꿀과 함께 마시는 특제 차(Caj Superiore sa medom)라고 자랑스럽게 소개되어 있었다.

종업원을 기다리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서 손을 들고 조용히 종업원을 불러보았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 자그레브 청년이 웃으며 우리에게 와서 설명을 해주었다. 빈첵에서는 좌석에 앉아서 먹을 때에도 카운터 테이블에 가서 직접 주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빈첵의 차.  은은한 향과 예쁜 다기가 잘 어울리는 멋진 세트이다.
▲ 빈첵의 차.  은은한 향과 예쁜 다기가 잘 어울리는 멋진 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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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English Breakfast)와 함께 블랙 얼 그레이(Black Earl Grey)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잠시 후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예쁜 다기 세트가 나왔다. 찻물을 내리는 2층의 하얀 도기와 함께 빈첵 로고가 선명한 꿀이 함께 나왔다. 이 젤라또 가게는 자그레브 시민들에게는 유명한 찻집이었던 것이다.

아침 차의 대명사인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맛은 풍미가 풍부하고 전통 차의 맛이 느껴졌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블랙 얼 그레이는 맛이 강렬했다. 그런데 이 영국 차에 나비 문양이 그려진 크로아티아의 꿀물 한 방을 넣어 마시자 완전히 다른 맛의 세계가 열렸다. 아직도 나의 혀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맛들은 이 세계의 도처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구운 옥수수 가게. 예상 밖의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 구운 옥수수 가게. 예상 밖의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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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리차 거리로 나와서 걷는데 한 노점에서 맛깔스러워 보이는 구운 옥수수를 팔고 있었다. 이미 배는 불렀지만 옥수수를 좋아하는 아내가 이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나는 아내가 권하는 옥수수를 한번 베어 먹었다가 결국은 옥수수 한 개를 다 먹고 말았다. 옥수수에 어떤 비법을 부렸는지 옥수수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자그레브에 갈 곳이 많지 않다고 하였던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크로아티아를 떠나면서 너무나 아쉬움이 가득했다. 자그레브 시내에 가득한 박물관과 미술관은 아직 가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가방을 싣고 자그레브 버스터미널로 향하면서 넓게 펼쳐진 자그레브 시내를 자꾸 뒤돌아 보았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여행기를 게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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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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