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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성을 담아 노래하는 가수 전인권
 진정성을 담아 노래하는 가수 전인권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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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들국화는 1987년 해체됐고 1988년 발표한 첫 솔로 앨범 <파랑새>를 통해 선보인 '사랑한 후에', '돌고 돌고 돌고' 등이 크게 히트했다. 그러나 1991년 2집 '언제나 영화처럼'을 발표한 이후 대마초 흡연 등으로 10년 넘게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오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허무라는 게 가장 옳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맞는 답인 것 같아요. 허무를 알면 더 열심히 살게 되거든요. 능동적으로 생각하면 재미난 거예요. 허무함을 느끼면 좌절하기도 하지만, 좌절을 하도 많이 느끼다 보니 좌절이 희망이 되기도 하더군요. 여기서 잘 안 되면 다른 데서 잘 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허무주의를 희망으로 바꾸다 보니 늦은 나이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어요. 내 모든 것이 허무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고생한 만큼 철학을 갖게 됐죠."

다시 이제부터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지난 2003년, 3집 <다시 이제부터>를 발표하면서 꿋꿋하게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2012년 10월 들국화를 재결성했지만, 2013년 멤버 주찬권의 죽음으로 들국화의 활동이 중단되고 전인권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그는 탄핵 정국 시절, 촛불집회 등에 참여하면서 의식 있는 음악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무대 위에서 부른 '걱정말아요 그대'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며 큰 위로가 되어줬다. 이렇게 그가 진정한 국민가수로 인정받았던 시기에 표절 논란이 터졌다.  

"'걱정말아요 그대'가 한동안 표절이라고 그래서 참 기가 막혔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축구장에서 응원가로 쓰이기도 하고 그러는 걸 보면 참 신기한 거예요. 마음도 짠해지고. 노래하면서 혼자 울컥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 게 전달이 되어서 기분이 좋았죠. 노래하는 사람은 자기 할 일밖에 몰라요.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좋은 가수가 되는 거고요."

'걱정말아요 그대', '행진', '돌고 돌고 돌고', '그것만이 내 세상' 등 그의 많은 히트 곡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여러 후배들을 통해 다시 불려지고 리메이크 곡뿐만 아니라 원곡도 세대를 아우르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진한 진정성이 가득 담긴 덕이다.

그의 음악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전혀 예스럽거나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그야말로 명곡(名曲)이다. 그의 곡이 널리 불리고 사랑받는 만큼, 그는 후배 가수들과 협업을 하기도 하고, 언제든 새로운 작업을 함께 할 준비도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재능 있는 후배들이 마음껏 자신만의 재능을 가꿔나갈 수 없는 현실은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 정말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우수한 후배들을 10년 정도 내다보고 양성하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정말 타고난 거고, 천부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되는 후배들을 종종 만나는데 기획자들이 잘 이끌어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서 아쉽죠. 매니저나 회사가 히트에 연연하지 않고 가수를 좀 자연미 있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최근 눈여겨보고 있는 후배로는 <불후의 명곡>에 함께 출연한 이하이와 드라마 <역적> OST를 부른 안예은, 활동명 Lim Kim으로 컴백한 김예림을 꼽았다.

"이 친구들은 정말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성할 거라고 생각해요.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와, 멋있다는 생각이 드는 대가수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수가 대중의 애환을 모르면 소통할 수 없다"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는 명곡을 발표해온 가수 전인권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는 명곡을 발표해온 가수 전인권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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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대중성' 추구를 강조한다. 대중의 애환을 모르고는 음악으로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가수의 가장 큰 덕목으로 '진실성'을 꼽았다.

"지금은 진실함을 얘기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상한 세상이 됐어요. 그런데 무대에 올라오면 느껴져요. 그리고 소속감을 갖게 돼요. 관객들이 여기서는 내가 막 울고 좋아해도 되겠구나하는 그런 소속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흔히 예술가들이 여러 방면에 걸쳐 예술적 재능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데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에도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미술을 네 살 때부터 시작해서 그림 공부를 10년 정도 했어요. 군인이셨던 삼촌이 타고 온 지프차를 그리면 할머니가 굉장히 칭찬해주시곤 했지요. 난 별로 생각이 없는데 요즘 화가들이 보고는 굉장히 놀라요. 내 자랑인 것 같지만 그림은 정말 잘 그리는 것 같아요. 고흐가 28세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는데 나는 70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해요. 옛날부터 그림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그래서 음악을 만들 때도 그림처럼 장면을 생각하면서 만드는 것 같아요."

그는 벌써 일 년이 넘도록 새로운 형태의 콘서트를 고심하고 있다. 일명 '나눔콘서트'. 누굴 돕는 게 아니라 공연을 보고나서 자신의 만족도만큼의 공연비를 지불하는 일종의 후불제 공연을 말한다.

"새로운 세상이 됐으니까 서로 손에 손을 잡고 공연을 보고, 공연을 보고 나서는 방송국에서 홍보를 좀 해주고 개런티 없이, 한 사람당 2만 원씩만 낸다고 해도 만 명이면 2억이잖아요. 음향 등 기본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기부하는 거죠. 지금은 그게 어울릴 것 같아요."

삼청동 뒷길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좁고 가팔랐다. 집 앞에 다다르자 친하게 지낸다던 동네 할머니가 진작 주려고 김치를 담가뒀는데 새곰새곰해졌다며 얼른 집에 들어가 가지고 나온 작은 김치 통을 그에게 건넨다. 영락없는 삼청동 주민의 모습이다. 친근하게 인사말을 건네고 뒤돌아서니 하얗고 네모반듯한 대문이 보였다. 그 안으로 들어서는 그의 모습은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인생에서 음악은 '튼실한 나무' 같은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진실하게 만들어주고 엄격하게 해주는. 그래서 '나를 기르는 튼튼한 나무'라고. 그만의 세계에는 '진정성'이라는 뿌리 깊은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을 것만 같다. 그 뿌리가 오랜 시간 동안 대중에게 결코 잊히지 않는 그의 저력이라 함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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