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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노회찬 국회의원은 29일 오후 창원 상남동 유탑사거리에서 심상정 대선후보 지원유세를 벌였다.
 정의당 노회찬 국회의원은 29일 오후 창원 상남동 유탑사거리에서 심상정 대선후보 지원유세를 벌였다.
ⓒ 정의당 경남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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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회주의나 진보사상은 배척을 넘어 멸살의 대상이었다.

6ㆍ25전쟁과 긴 세월 냉전이 남긴 생채기다. 헌법에서 아무리 사상의 자유를 허용해도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현실공간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백색독재와 군사독재가 반공을 정치무기로 활용하면서 사회주의와 진보사상은 공산당의 4촌쯤으로 엮이고, 이를 모질게 탄압했다. 심지어 페이비어니즘과 아나키즘까지 동류로 엮었다.
 
해방 후 사회주의(민주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의 이념을 내세우며 정당을 만들었다가, (또는 정보기관에 의해 날조되어) 희생되거나 고난을 겪은 사람(단체)은 수없이 많다. 여운형ㆍ조봉암을 위시하여 진보당ㆍ혁신계ㆍ인혁당ㆍ인민노련에 이르기까지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다.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와 크게 다르다.

거칠게 요약하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장점과 공산주의의 장점을 조합하는 이데올로기체계다. 바꿔 말하면 자본주의 단점과 공산주의 단점을 버리자는 이념이다. 서구에서 페이비어니즘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킨 이데올로기로 인식되고, 1918년 영국 노동당의 강령으로 채택되어 오늘에 이른다.
 
여운형을 비롯하여 조봉암 등 이른바 좌파 정치인들이 추구했던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는 독일의 사상가 베른슈타인에 의해 정립되었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높은 생산성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인정하면서, (자본주의는) 실업, 과잉생산, 부의 불균등한 분배 등의 단점을 갖기 때문에 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농민)의 물질적 생활수준과 문화수준을 높이고, 이들이 인간적 품위를 가진 존재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노회찬 등이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창립할 때 "노동3권의 완전한 보장,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자유보장, 농민ㆍ도시빈민의 생존권보장, 표현의 자유 및 사상의 전면보장" 등을 강령으로 내세우며 사회주의 노선을 공개리에 천명했다. 베른슈타인의 사민주의에 속한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17일 오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에서 열린 유세출정식에서 노회찬
 국회의원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17일 오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에서 열린 유세출정식에서 노회찬 국회의원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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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은 이 해 10월 18일 밤 구속영장 없이 치안본부 대공분실 요원들에 의해 연행되어 20일간 밀실수사를 받고 공안검사들로부터 동료 13명과 함께 기소되고 사법부의 '복사판' 판결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징역 2년 6월, 자격 정지 2년 6월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우리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도 세계 어느나라 노동자들보다도 열심히 일함으로써 우리 사회 성장의 주역을 담당하여 왔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살아왔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또한 우리 노동자들은 이와 같은 물질적ㆍ외면적 혜택의 박탈뿐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사물과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내면적 자유조차 빼앗기고, 이와 같은 잘못된 현실을 개혁할 전망, 즉 자신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킬 일말의 희망조차 상실한 채 오직 굴종과 체념만을 강요당하며 살아왔습니다.
 
피고인들은 이와 같은 부당한 현실을 발견하고 이를 개선해보려는 순수한 정열로 대학 졸업자로서의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체험하고 노동자들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살아온 것입니다.
 
오늘 단지 이와 같은 이유만으로 피고인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이 법정에 서 있게 되었다는 점에 대하여 변호인으로서는 대단히 안타깝고, 국가보안법이 과연 악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주석 1)


이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조영래ㆍ윤종현 등 5인의 「변론 요지서」 일부에서 보이듯이, 노회찬 등은 노동자들의 권익보호와 자신들의 사상의 자유를 획득하고자 인민노련을 결성했다가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노회찬은 이후 진보정당에 참여 혹은 주도하고 국회의원 3선을 하면서 한번도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았다. 학자나 작가라면 몰라도 정당ㆍ정치인의 처지에서 사회주의자라는 타겟은 독재ㆍ부패정권의 하수인들에게는 맷집 좋은 표적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산주의와 시민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또는 알고도) 무지한 공안세력과 수구족벌 신문은 사회주의 정당이나 진보세력을 먹잇감으로 삼았고, 정치적 계기가 요구될 때는 어김없이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노회찬의 일대기를 꼽아 여기까지 오면서 그에게서 정통사회주의적 색깔보다 페이비어니즘의 색채를 더 강하게 느꼈다. 엄격한 의미에서 사민주의 정책을 진보적으로 추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와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어온 황광우 전 민노동 중앙연수원장의 분석에서 노회찬이 추구했던 사회주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 하다.

사람들은 노 의원의 이력에서 붉은 냄새를 맡을 것이다. 그렇다. 노 의원은 대한민국이 세계무대에 자랑해도 좋을 정통 사회주의자이다. 그는 소외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애타게 갈구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입으로만 사회주의를 외치는 분들과 달리 그는 정녕 사회주의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실천했고,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다.
 
지금 그들은 21세기의 사회주의를 고민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집권에 도전할 만큼 장성했을 때 국민들은 이 땅에서 태어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자란 그들의 형제로부터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부드러우면서도 용감한, 아름다우면서도 합리적인 사회주의의 새 면모를 보게 될 것이다. (주석 2)


주석
1> 윤철호, 오동렬 외,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 196~197쪽, 1990, 일빛.
2> 황광우, 「노회찬과 더불어 이렇게 살았다」, 『정운영의 책』, 86~8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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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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