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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13일 오후 2시 26분]

대한민국 역사는 친일파에 관대했다. 지난 1949년 이승만 정권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해산시켰다. 이후 6.25 전쟁을 겪으면서 친일파 청산의 기회는 역사 속으로 묻히고 말았다.

올해는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윤봉길, 유관순, 김좌진, 한용운 등 수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한 충청남도는 요즘 친일 잔재를 걷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일본인 교장 사진이 철거됐고,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 교칙도 바뀌고 있다. 백지동맹(일제강점기 시험거부)과 동맹휴학(식민통치에 항의하기 위한 휴학)과 같은 일제 강점기 교칙에 대한 개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최근 충남 홍성에서는 김석환 군수가 '공석'에서 친일 작사가 반야월의 노래를 불러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선뜻 전면에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는 이는 적었다. 심지어 사건을 처음 알린 제보자조차도 신상이 드러날까 봐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인 지역사회에서, 그것도 지역의 행정수장인 군수에게 쓴 소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디서나 '금기'를 깨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최종진(56) 민족문제연구소 홍성지회장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중병일수록 치유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며 "첫 단추를 잘못 꿴 우리 역사를 치유하는 데도 그만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잠깐 최 지회장의 이력을 살펴 보자. 최종진 지회장은 지난 2006년부터 2년 동안 교사생활을 했다. 공주사범대학 출신인 그는 뒤늦게 임용시험을 치고,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마흔이 훌쩍 넘어 시작한 교직 생활은 녹록지가 않았다.

그는 "내가 전교조에 가입했다가 잘린 것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초임 교사 월급으로 훌쩍 자란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다"며 "많이 아쉬웠지만 교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교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게 된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987년 민주항쟁 때 그는 홍성경찰서에서 의경으로 복무했다. 87항쟁은 서울에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다. 그는 "당시 홍성에서도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큰 집회가 있었다. 그때는 경찰들조차도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라는 외침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위대에 적대감을 갖지도 않았다. 상황이 무사히 종료되기만을 바랬다"고 말했다.

그가 풀어 놓은 '87항쟁의 경험담'에서 '입장이 달라도 의견은 얼마든지 같을 수 있다'는 힌트를 얻었다. 친일파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친일파 문제는 결국 '청산'이라는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실제로 올해가 광복 74주년이지만 '일본 제국주의'와의 싸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일본은 최근 지난해 대법원이 '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내린 판결을 문제 삼으며 경제 보복을 감행하고 있다. 물론 우리 국민들은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맞서고 있다. 지난 10일 홍성의 한 카페에서 최종진 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최종진 지회장
 최종진 지회장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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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대학 시절 임종국 선생이 쓴 <친일문학론>을 감명 깊게 읽었다. 그 뒤로는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친일파를 추적하고 알린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들어지고 후원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바로 회원으로 가입하고 후원을 시작했다.

우리 역사는 아쉬운 대목이 많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반민특위를 해체했다. 남북 분단 상황이나 사회문제의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결국 친일 매국노들을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반성이 필요하다." 

- <친일인명사전>의 경우, 국가에서 공식 발행한 책도 아니고 공신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국가에서 발행한 책이어야만 공신력이 있다는 뜻인지 묻고 싶다. <친일인명사전>은 박사급의 연구원들이 역사적 사실을 치밀하게 밝혀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박정희를 예로 들어 보자. 국가 기관에서 발행한 책에 과연 박정희를 친일파로 기록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그런 기록이 가능하다고 본다."  

- 최근 김석환 홍성군수가 친일 작사가 반야월의 노래를 공석에서 부른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작은 군단위에서부터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그것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래방도 아니고 공적인 자리에서 친일 작사가의 노래를 불렀다는 점, 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지적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김석환 군수도 자신의 부른 노래의 작사가가 친일파란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야월의 곡이 5000곡이 넘는다고 한다. 진짜로 몰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잘 살피겠다"는 정도의 유감 표명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군민의 세금으로 진행된 행사에서 친일 작사가의 노래를 부른 다는 것은 군민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 아베 정권이 한국을 우습게 여기는 것도 우리가 '친일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기 때문은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

- 요즘 일본제품 불매 운동이 한창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 연장선에서 한국에 경제보복까지 하고 있다. 당분간은 일본여행을 자제할 생각이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경우,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는 일본제품 중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더러 있는 것 같다. 또 국내 자영업자들이 유통시키는 상품도 많아서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일본 제품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바로 잡습니다
지난 12일 최초 보도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고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되어 있으며, 지난 2009년 11월 6일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 낸 '게재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바 있습니다. 

태그:#최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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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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