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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존재를 생산기계처럼 인식해 성과에 따라서만 가치를 매긴다면 인간의 정신은 깊이가 사라지고 영혼이 없는 로봇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주체성을 가질 수 없고 의미를 추구할 여유조차 없이 의무에 얽매여 매일같이 그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뒤쫓아가느라 급급해진다.

무척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다. 책 <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가 다루고 있는 것은 데이비드 프레인의<일하지 않을 권리>와 비슷하다.

<일하지 않을 권리>는 지나치게 일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현대인에게 일 외에 다른 가치는 없는지,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이 책도 그와 다르지 않다. 도발적인 제목과는 달리 인간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또 어떻게 사는 게 인간다운 삶인지를 파고들며 철학적 물음과 함께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일 따위에 삶에 보람을느끼지 마라>표지
 <일 따위에 삶에 보람을느끼지 마라>표지
ⓒ 김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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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이즈미야 간지는 정신과 의사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면서 예전에는 애정결핍이나 열등감, 인간에 대한 불신처럼 '온도가 높은' 고민 상담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고민, 존재 가치나 살아가는 의미에 관한 상담이 많아졌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은 주로 온도가 높은 고민이나 정신질환을 다루는 데 역점을 두었기에 이러한 '온도가 낮은' 고민에 대해서는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으로 유명한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의미'를 잃어버리면 정신이 쇠약해질 뿐만 아니라 생명 자체도 쇠약해져 마침내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프랭클에 따르면 강제 수용소라는 한계 상황에서만 인간이 살아가는 의미를 잃는 것이 아니라 겉보기에 평화로운 생활을 꾸려나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결국 살아가는 의미에 대한 실존적 물음의 상실은 오늘날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자아란 무엇일까? 자아를 갖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독립성을 갖는 일이다. 그래야 나만의 확고한 기준을 갖고 조금 더 주체적인 삶을 살수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기대나 시선에 따라 움직이며 자신만의 확고한 주체성을 잃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무언가를 직접 선택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한다. 사회는 가벼움만을 추구하고 소비를 부추기며 모든 것을 돈과 결부시킨다. 그로 말미암아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보편적인 삶을 당연한 것처럼 따른다. 문제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인지도 모른다.

나라는 주체성을 갖지 못하면 타인의 시선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지 못한다. 보편적인 삶에 편승하고 실존적 물음이나 의문을 갖지 못한다. 사회는 더욱 이러한 감정을 조장한다. 가벼움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끔 만들고,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소비사회로 내몰면서 소비에 대한 가치만을 부여한다. 결국 인간은 획일화되고 똑같은 가치관을 주입받고 보편적인 삶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삶은 결코 만족을 심어주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일은 어떠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는 직업, 또는 소위 폼 나는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런 직업에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자신의 성향이나 흥미와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일로 전락할 뿐이다.

데이비드 프레인의 <일하지 않을 권리>에 따르면 산업사회 이전의 인간은 필요한 만큼만 일했으며 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 체제가 확립되면서 인간의 노동은 전문적인 일이 아니라 단편적으로 분업화된 노동으로 변했다. 분업화된 노동은 마치 인간을 기계와 같이 만든다.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일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다. 생계의 수단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일이 없다면, 긴 시간 동안의 무료함을 견디다 못해 괴로움에 빠질 것이다. 인간은 늘 여유를 갈망하지만, 막상 완전히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그 권태를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은 지나치게 신성시되고 일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그렇기에 일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요소가 되고 그에 따라 직업에도 등급이 나누어진다. 때문에 직업적 가치는 인간적 가치를 뛰어넘어 돈이 전부인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왜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나에 대한 고민들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일의 기준은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소위 폼 나는 직업, 돈 잘 버는 직업이 우선순위가 되고 이러한 삶 속에서는 삶의 의미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의의를 추구하는 삶에 지쳤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다시금 의의를 물어본다고 해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지도 않다. 생산기계처럼 항상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온 우리는 의의 있는 일을 하라는 주술에 꽁꽁 묶여 초조해하고, 무엇보다 소중한 의미를 느끼며 사는 삶을 상상할 여유조차 없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자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직업을 갖는 이유를 흔히 생계수단과 자아실현이라 이야기하지만, 자아는 결코 일 속에서 얻어질 수 없다. 자아란 직업 안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직업이 자아실현의 도구로 칭송되면서 우리는 일 그 자체를 신성시하며 왜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은 사라지고 없다. 결국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지 못한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그것은 우울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자는 '살아가는 의미'는 무언가를 얻거나 성취해서가 아니라 인생에 의미를 묻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살아가는 의미가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해야만 얻을 수 있다면 우리가 보내는 대부분의 일상은 살아가는 의미를 느낄 수 없는 살벌한 의미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저자는 예술가의 삶을 대안적 삶의 모습으로 제시한다. 예술은 놀이와도 같다. 어린아이들은 무언가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면 스스로 거기에 빠져들고 열중해서 논다. 또 즉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모든 것에 목표를 갖고 사는 데 익숙해져 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철저히 모든 것을 계획하고 그것이 이루어져야만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즉흥성은 우연에 기반하므로 예상치 못한 즐거움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큰 고민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매번 고민해보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방황하게 된다. 삶과 관련해 여러 가지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 그 책들은 한결같이 여러 경험들을 강조한다. 예술가의 삶이 대안적 삶으로 제시되는 이유도 예술은 반드시 무언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예술은 매우 폭넓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예술은 우리에게 매우 등한시되는 것이지만, 산업사회 이전의 노동은 마치 예술과도 같은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우리의 삶은 마치 대량생산되는 물건들과 같이 획일화되었다. 결국 우리는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지만, 일 자체에 대한 고민 없이 일은 무조건 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이러한 관념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만다. 타인의 시선이 우선시되고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다. 자아를 잃은 인간은 늘 방황하게 되고 공허함 속에 살아간다. 유명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지나친 노동의 찬양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그것은 노동 속에서만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기 때문에 그 밖에 어떤 것에서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삶과 관련된 책들은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가치는 일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인생에서 일 외의 다른 가치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며 실행해나가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목표에 집착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현대인이 지닌 강박인지도 모른다. 결국 삶의 의미란 느긋함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쁨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에게 느림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듯이 모든 것은 원초적인 것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것은 사색적인 삶, 느리게 사는 삶이다.

일하지 않을 권리 - 쓸모없는 인간에 대한 반론

데이비드 프레인 지음, 장상미 옮김, 동녘(2017)


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 - 나답게 살기 위해 일과 거리두기

이즈미야 간지 (지은이), 김윤경 (옮긴이), 북라이프(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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