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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4일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키코(KIKO) 사기사건' 검찰 재고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금융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키코(KIKO) 사기사건" 검찰 재고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금융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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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KIKO) 사건의 분쟁조정 결과가 조만간 공개될 예정인 가운데 일부에선 은행들이 배상에 나설 경우 배임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감독당국이 은행들에게 손해의 20~30%를 보상하라는 권고를 내릴 것으로 보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금융권을 중심으로 이 같은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온 것.

하지만 법률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법적 제도인 분쟁조정 절차에 따라 배상하는 것을 은행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는 "배임이 되려면 고의성이 있어야 하는데, 배상 권고에 따르는 것은 배임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업무상 배임이 성립하기 위해선 은행 쪽 사람이 은행에는 손해를 입히고, 제3자에게는 이익을 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키코 피해기업들에게 배상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금융판 세월호'라 할 만한 대형 금융사건인 키코사태는 지난 2007년 말 은행들의 권유로 키코 상품에 가입했던 수 많은 중소·중견기업들이 큰 손해를 입고 파산한 사건이다. 이에 일부 기업들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2013년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하지만 은행이 잘못을 저지른 정황이 담긴 2010년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보고서가 뒤늦게 공개되면서 재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어 지난해에는 당시 키코 판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과도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담긴 보고서가 나오면서 금융감독원이 분쟁조정에 나섰고, 이르면 이달 중 결과가 공개될 예정이다. 

김 변호사는 "과거 KBS가 법원의 조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면서 배임죄로 기소됐었는데 결국 무죄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들이 금융감독기관의 조정에 따라 배상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감독당국도 배상 권고안이 나와 은행이 이를 받아들이더라도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률자문을 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 분쟁조정2국 분쟁조정총괄팀 관계자는 "배임의 경우 고의가 전제되기 때문에 (분쟁조정) 절차를 밟았다면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분쟁조정 합의=배임죄? "거부 명분 만들겠다는 것"

다른 법률전문가들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의견을 내놨다. 백주선 법률사무소 상생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는 "당국의 결정에 따라 배상에 나서면서 배임죄로 처벌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분쟁조정 절차는 공식적인 법적 제도인데, 이에 따르는 모든 회사들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다면 이 같은 제도는 무의미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의 말이다. 

"분쟁조정제도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따르면 형사처벌 한다는 것은 조정 결정에 따르지 말라는 말과 같다. (정부나 사법기관이) 그런 모순적인 행정이라든지 사법처리를 하진 않는다. 분쟁조정은 (손해배상 책임을) 따지지 말고 서로에게 일정부분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한발씩 양보해 합의에 이르게 하는 제도이다. 여기에 합의했다고 배임죄라는 건 법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 얘길 하는 건 분쟁조정에 따르지 않을 명분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일부에선 은행이 승소했던 대법원 판례와 민사상 손해배상 시효가 3~10년인 점을 감안하면 은행에 법적 배상의무가 없어 배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백 변호사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2013년 대법원은 대체로 은행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키코상품을 판매할 때) 설명의무를 충실히 하지 않은 은행에 대해선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몇몇 은행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는 이유만으로 키코 상품을 팔았던 모든 은행에 잘못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백 변호사는 "금융감독기관이 재판을 거치지 않은 경우에 대해 은행에 책임이 일부 있다며 피해금액의 일부를 배상할 것을 제시할 경우 이를 수용할지는 은행이 판단하게 될 것"이라며 "그렇지만 이를 받아들이면 배임이기 때문에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 얘기"라고 했다. 

 
지난해 5월 3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정치적 판결 키코사건 재심요구 기자회견'에서 키코 피해기업인이 '수출의 탑'을 망치로 부수고 있다.
 지난해 5월 3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정치적 판결 키코사건 재심요구 기자회견"에서 키코 피해기업인이 "수출의 탑"을 망치로 부수고 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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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죄 공소시효는 충분히 남았다

또 그는 기업마다 피해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는지는 따져봐야 하며 형사상으로는 공소시효가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백 변호사는 "민사상 시효가 끝났는지는 명백하지 않고, 특정경제범죄법(특경가법)에선 공소시효를 15년으로 적용해 시효가 지났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사기로 인한 피해금액이 50억 원 이상이면 특경가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기업당 피해액이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효가 충분히 남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성묵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형사로는 시효가 아직 남아있고, 민사로도 아직 손해배상 청구 시효가 남은 피해기업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효라는 것은 법적 다툼이 있을 때 이용하는 논리인데, 금감원 분쟁조정의 경우 시효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서 생명보험사의 자살보험금 문제도 법적으로는 시효가 지났었지만 금감원이 보험금 지급을 권고하면서 이와 관계없이 지급됐다"고 그는 부연했다. 

더불어 김 변호사는 은행이 분쟁조정 결과를 수용할지 판단할 때 기업 이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되기 때문에 업무상 배임죄를 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형사상으로 업무상 배임죄는 은행이 조정에 응할 의무가 없는데 그런 행위를 하면서 은행에 손해를 입힐 경우에 해당한다"며 "일종의 고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금감원 등 공적인 기관에서 조정을 권유하고, 은행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살펴본 뒤 조정에 응하는 것이 타당하다 판단한다면 배임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했다.

은행들이 양승태특별법을 고려해야 할 이유

송기호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 변호사(민변 국제통상위원장)도 "2013년 대법원 판결은 개별 구체적 당사자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판결을 받지 않은 피해기업들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배임죄의 본질은 회사와의 신뢰에 관한 것"이라며 "은행이 조정을 수용하면서 감독기관과의 협력 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분쟁조정 수용이) 은행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더불어 송 변호사는 은행 쪽이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면서 법적 다툼을 피할 수 있다면 오히려 은행에 이익일 수 있어 배임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특히 키코 사건의 경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사건에 포함되는데, 현재 재심특별법이 발의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의 사법농단 의혹사건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시행되면 키코 피해기업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기업들이 과거 패소했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재검토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금감원이 먼저 조정을 통해 피해액 일부 배상을 권고하고, 은행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배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송 변호사의 생각이다. 그는 "(조정을 받아들여) 형사소추의 위험성과 이로 인한 소비자 신뢰 상실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본다면 (조정 수용을) 더욱 더 배임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태그:#키코, #금융감독원, #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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