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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려다 급류에 휩쓸린 엘살바도르 젊은 아빠와 두 살 배기 딸
 강을 건너려다 급류에 휩쓸린 엘살바도르 젊은 아빠와 두 살 배기 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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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두 장이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기록한 사진. 하나는 리오그란데 강, 하나는 지중해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사진들이다.

리오그란데 강은 무겁다. 지난달 23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으로 가려고 강을 건너려다 급류에 휩쓸린 엘살바도르 젊은 아빠와 두 살배기 딸이 카메라에 잡혀 있다. 사람이 아닌 양 물에 휩쓸려온 그저 그런 물건들처럼. 밀려오는 건 슬픔을 넘어선 어떤 것이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버려짐이라고 해야 할까. 기자는 왜 이렇게 씁쓸한 프레임에 부녀의 죽음을 가둬놓았을까.

반면 지중해는 밝다. 지난달 29일 난민 40여 명을 태우고 이탈리아에 입항한 독일인 선장은 당차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 채 세상을 노려보고 있다. 입항을 가로막는 순시선을 들이찬 기세가 느껴진다. 당연히 카메라는 그런 눈빛을 담아내기 위해 선장의 얼굴을 중심으로 상반신만 클로즈업 한다. 리오그란데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냄새가 지중해에서는 삶의 활기로 바뀐다. 이렇게 두 사건의 주인공들은 사진을 통해 역사에 남는다.
 
"난민 40여 명을 태우고 이탈리아에 입항한 독일인 선장은 당차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 채 세상을 노려보고 있다."
 "난민 40여 명을 태우고 이탈리아에 입항한 독일인 선장은 당차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 채 세상을 노려보고 있다."
ⓒ 가디언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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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주인공의 등장

사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뒤이어 또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미국의 이민국장이다. 그는 말한다. 리오그란데 강의 불행은 강을 건너려던 아빠의 성급함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왜 정해진 입국심사를 위해 대기하지 않고 몰래 강을 건너려 했느냐고. 좁은 행정지침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며 사건을 개인화하고 우연화한다. 북중미 사정을 잘 모르고 더구나 국경지대 상황을 알 길 없는 사람들에게 젊은 아빠의 혈기가 빚어낸 사소한 사건으로, 일회성 사건으로, 혹은 범법적인 사건으로, 사건의 방향을 끌어가려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곧바로 저항에 부딪친다. 의견이나 주장이 아닌 사실의 발견 덕분이다. 천오백 킬로미터를 넘는 거리를 이동해온 난민들은 국경지대에서 발을 멈춰야 한다는 사실, 심사대기를 위해 최소한 수개월 길게는 2년이 소요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렇게 장시간 대기를 하는 동안 굶주림과 범죄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야 한다는 사실.

설마 이민국장이란 사람이 이런 정황을 몰랐을까? 고집스럽게 법과 지침에 집착하는 그, 아니 그가 이끄는 논리들, 바늘구멍으로 세계를 재단하려드는 세상의 한 모퉁이에 웅크리고 있는 사고들.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 판의 한 측면을 구부린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이탈리아 판사다. 불법난민지원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돼 최고 10년 형까지 선고받을 수도 있는 독일인 선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람. 이탈리아가 어떤 나라인가. 전진이탈리아, 동맹당, 이탈리아형제까지 극우정당들이 판을 치는 나라다. 동맹을 이끌고 있는 부총리는 공공연하게 독일인 선장을 범법자로 지목하며 처벌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누구나 독일인 선장이 중형을 선고받을 거라고 예상했던 상황, 그런 상황을 깨고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판사는 말한다. 선장은 직무상 생명보호의 의무를 다한 것뿐이라고. 판결의 정신은 생명을 구하는 의로운 일은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공리를 향한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가로막는 순시선을 들이친 일로 처벌한다면 누가 위험에 빠진 생명을 구하겠는가. 선장, 의사, 구호단체활동가, 구급대원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사상 최대 난민이라는 비극을 맞아

판결은 개인적이고 일회적인 사건을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물음으로 전환시킨다. 족쇄를 풀고 장애물을 치우려 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선장은 표류하던 바다에서 난민들을 구조해 냈다. 그런데 폭염이 덮쳐 왔다. 그런 선장의 앞길을 가로막은 순시선의 바리케이드. 바리케이드야말로 맹목적인 수단, 법과 행정지침이 만들어낸 맹목성의 논리인 것이다. 그리하여 구부러진 판은 다시 평평해진다.

사건은 계속된다. 사상 최대의 난민이라는 세기의 비극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주인공도 계속 등장할 것이다. 돌아오는 월요일엔 교황께서 미사를 여신다. 난민과 난민을 돕는 사람들을 위해. 유엔의 대응도 궁금하다. 리비아의 난민 캠프가 공격당했다. 튀니지 앞 바다에서는 난민선이 침몰했다. 또 누가 등장할 것인가. 역사는 흐르고 있다. 밀물과 썰물 조류들이 교차하면서, 역사의 주인인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부딪치면서.

덧붙이는 글 | 오현록 기자는 아주중학교 교사입니다.


태그:#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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