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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면 1

초등학생들이 학교생활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급식 시간과 체육 시간에 하는 피구, 축구 활동이다. 하지만 대전의 ㅈ 초등학교 6학년 김이수(가명) 학생은 피구 시간이 하나도 즐겁지 않다.

오늘도 반에서 피구를 제일 잘하는 두 아이가 나와 '뽀까뽀까'를 외치며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긴 아이가 먼저 함께 팀원을 뽑는다. 반 아이들은 서로 자기를 뽑아 달라고 손을 들고 애원한다. 그러나 이수는 애써 눈길을 피한다. 어차피 자기를 먼저 뽑아줄 리 없기 때문이다. 지명된 아이들 표정은 환한 반면 뽑히지 못한 아이들은 불안하고 부끄럽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이수는 아직도 이런 불편함과 부끄러움이 익숙하지 않다.

( * '뽀까뽀까'는 피구, 축구 편 가르기를 할 때 잘하는 아이 둘이 나와 가위바위보를 통해 원하는 아이를 우선 뽑는 방식인데, 이때 붙이는 구호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뽑기뽑기'라고 하기도 한다)

이제 아이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편 가르기 막바지 이수가 홀로 남았다. 두 아이는 '뽀까뽀까' 구호 대신 '콩 주워 먹기'를 외친다. 그리고는 이긴 아이가 이수를 가리키며 "쟤는 너희 팀 가져, 우리는 공 가질 테니까"라고 말한다. 

피구를 잘 못 하는 이수 대신 피구 공(먼저 공격할 권리)을 선택한 것이다. 상대 팀 아이들은 "우리도 쟤 필요 없어, 우리가 공을 가져왔어야 하는데"라며 아우성친다. 이런 광경 속에서 이수는 자신이 피구 공보다 못한 신세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모두가 함께 즐거워야 할 피구 시간이 이수처럼 피구를 잘못하는 친구들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쌓이는 시간이 되고 있다. 

# 장면 2

6월 말 대전의 ㄷ 고등학교 3학년 교실,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반에서 공부 좀 하는 친구가 "거기 조용히 좀 못해, 너희 때문에 공부를 못 하겠잖아"라며 소리를 지른다.

수다를 떨던 한 아이가 시계를 보며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6시부터"라며 "쉬는 시간 10분 남았어"라고 말해보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말고사 기간이잖아, 정신 안 차릴래?"라고 말한다.

교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수다를 떨던 아이가 머쓱해져 교실 밖으로 나갔지만 기분이 나쁘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맘대로 하는 우등생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수다 떨 때는 괜찮고, 공부할 때는 쉬는 시간인데도 조용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 장면 3

배달 노동자 김아무개씨는 햄버거 세트를 오토바이에 싣고 서둘러 고급 주택가로 배달을 갔다. 시험 기간 아이들 간식을 위해 햄버거를 배달시킨 듯했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서는 그의 등 뒤로 "야, 너희들 공부 열심히 해, 저 아저씨처럼 땀 뻘뻘 흘리며 개고생하지 않으려면"이라는 어른의 훈계가 들렸다. 김씨는 여러 번 듣는 소리이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3일간의 총파업을 마치고 향후 교섭 및 투쟁계획을 발표했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3일간의 총파업을 마치고 향후 교섭 및 투쟁계획을 발표했다.
ⓒ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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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일 전국학비노조 총파업이 있었다. 지지를 보낸 시민들도 있었지만 시험에 떨어져 비정규직이 되었으면서 뻔뻔한 요구를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일부의 반응도 있었다.

어른들이 만들어 낸 '뽀까뽀까'의 폭력성

우리 사회는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능력을 기준으로 차별이 일상화되어 있다. 어른들 세계야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동심을 지녔다는 초등학생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2012년 출간된 동화책 <짜장 짬뽕 탕수육>에서 주인공 종민은 전학 간 학교에서 낯선 경험을 한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아이들이 '거지'라고 놀린 것이다. 아이들이 소변기마다 '왕' '거지' 자리를 정한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종민은 다음번에 왕 자리에서 소변을 보지만, 뒤늦게 온 덩치 큰 친구가 제 맘대로 '왕, 거지' 자리를 바꾸는 바람에 또 '거지'라고 놀림을 받았다.
 
 [짜장 짬뽕 탕수육]에서 주인공은 큰 덩치의 '왕, 거지' 놀이로 상처 받는 아이들을 위해 '짜장, 짬뽕, 탕수육' 놀이를 제안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짜장 짬뽕 탕수육]에서 주인공은 큰 덩치의 "왕, 거지" 놀이로 상처 받는 아이들을 위해 "짜장, 짬뽕, 탕수육" 놀이를 제안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 재미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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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힘센 아이들에 의해 규칙이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약한 아이들이 상처받는 일은 있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며 <짜장 짬뽕 탕수육>의 저자이자 경기도 양평 서종초등학교 김영주 교장은 안타까워했다.

김영주 교장은 기자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요즘 경쟁 풍토가 그런 폭력을 낳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게임에 집중하면서 아이들이 놀이 자체에 즐거움보다는 승부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문제의 원인을 진단했다. 이어 "학원 스트레스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라며 "아이들이 과도한 사교육에 시달리다 보니 그 스트레스를 풀 배출구가 필요하고 그것이 때로는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왜곡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사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이른바 '스카이 대학'에 대한 욕망이 한층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과거와 달라진 부모들의 인식도 한 몫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주 교장의 암울한 진단은 계속되었다.

"부모들 스스로가 치열한 경쟁을 겪으면서 커서 자식들에게도 승리를 강요하고 있다. 부모들도 고립되어 있다 보니 협력의 경험을 아이들에게 주기보다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논리만을 주입하는 경향이 강하다."

결국 좋은 일자리가 날로 줄어드는 사회 현상과 맞물려 부모들은 자식들을 승리자로 만들기 위해 아이들 시간을 엄격히 통제하고, 이 때문에 자유와 선택권이 없어진 아이들은 그 불만을 결국 자신보다 더 약한 아이에게 쏟아붓는 악순환이 '뽀까뽀까의 폭력성'의 실체라고 지목했다.

동화는 현실과 다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짜장 짬뽕 탕수육>에서 종민은 소변기에 '왕, 거지' 대신 '짜장, 짬뽕, 탕수육'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자리에 서게 함으로 왕따, 놀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

동화 속 해결책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김영주 교장은 "동화처럼 어린이들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다"며 "교사와 학부모가 아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 교장은 우선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의 세 주체가 모여 스마트폰 사용 자제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의 이전 근무지였던 남한산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3년 전부터 학교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오지 않고 있다. 현재 근무하는 서종초에서도 자치대표자회의를 통해 스마트폰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 결정을 끌어낸 상태라고 한다.

둘째, 놀이의 다양성을 제시했다. 김영주 교장은 중간놀이 시간을 30분으로 늘리고 축구와 피구로 한정된 놀이 문화를 좀 더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콩주머니 놀이, 보드게임, 꼬리잡기 등 여러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쉼터를 만들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벼운 독서를 하는 등 분산이 중요하다고 했다.

셋째, 아버지 모임 등 여러 학부모 모임을 통해서 고립된 어른들부터 협력적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교사들이 '뽀까뽀까' 등의 폭력성에 주목하여 상처받는 아이들이 없는지 적극적인 문제 제기와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마음대로 하는 것과 같다"

이 문제에 대해 초등학생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처음 '뽀까뽀까' 제도에 대해 물었을 때 절반의 아이들은 '뽀까뽀까' 제도의 문제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편 가르기의 방법으로 여겼다. 사실 인식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피구를 잘하는 아이들이었다. 직접 뽑는 당사자이자 일찍 선택받는 아이들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상처에 대해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o 초등학교 5학년 김단(가명) 학생은 "강대국들이 약한 나라에 하는 거랑 똑같은 것 아닌가요"라며 지적했다. 같은 학교 이은서(가명) 학생은 마지막 남은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버린다'는 말 대신 '드린다'는 말을 사용한 경험을 말하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콩 주워 먹기' 대신 '콩 버리기'라는 말로 마지막 남은 아이를 결정하기도 한다.)
 
 '뽀까뽀까'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마음대로 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 어린이의 글
 "뽀까뽀까"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마음대로 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 어린이의 글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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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까뽀까'의 대안, 문제 해결책을 제시한 어린이
 "뽀까뽀까"의 대안, 문제 해결책을 제시한 어린이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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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까뽀까'를 없앤 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가위바위보를 해 편 가르기를 하는 방법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한 어린이는 '뽀까뽀까'를 잘하는 아이가 아닌 가장 못 하는 아이 둘이서 선택하게 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민주시민교육 확산에 애쓰고 있다. 4‧19 혁명부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그리고 촛불혁명까지 우리는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애써왔다. 그러나 아직 생활 곳곳에 민주주의와 인권이 확실히 뿌리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소소해 보이는 초등학생 놀이 문화지만 이 문화에 폭력성이 담겨 있다면 초등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고쳐나갈 수 있도록 교사와 어른들이 적절히 지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실질적인 민주주의, 인권이 보장되는 대한민국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강자 중심의 문화, 경쟁 중심의 문화를 걷어내고 협력과 공존의 문화가 뿌리 내려 우리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민주시민으로 잘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짜장 짬뽕 탕수육

김영주 (지은이), 고경숙 (그림), 재미마주(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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