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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외교적 고립을 풍자하는 합성사진. 빨간 원 안의 인물은 아베 신조 총리. 일본 네티즌의 트위터에 실린 사진이다.
 일본의 외교적 고립을 풍자하는 합성사진. 빨간 원 안의 인물은 아베 신조 총리. 일본 네티즌의 트위터에 실린 사진이다.
ⓒ @HON5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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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끝낸 아베 신조 총리가 자국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2일 치 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G20을 공들여 개최해 놓고도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 말들이 일본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이디가 @HON5437인 트위터 이용자가 제작한 합성 사진이 국내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판문점 자유의집 계단을 내려오며 담소를 나누는 문재인·김정은·트럼프의 모습에 아베 신조를 합성해 넣은 사진이다.

사진 속 아베는 청색 상의 및 회색 반바지에, 무릎까지 오는 흰색 양말을 신은 채 남북미 정상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반바지에 무릎 양말 패션은 아베 외교의 미성숙을 상징하는 장치다.

그 이용자는 합성 사진과 함께 남긴 글에서 "참 비참한 아베 외교"라면서 "이 역사적 회담이 열리는 것도 사전에 듣지 못한 채, 자택 텔레비전으로 회담 모습을 지켜봤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모기장 밖'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적으로) 완전히 내버려진 상태"라고 한탄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신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의집을 나와 김정은 국방위원장 쪽으로 걸어가기 15분 전인 6월 30일 오후 3시 29분에 사저로 들어갔다고 한다. '자택 텔레비전으로 회담 모습을 지켜봤다'는 표현은 그래서 나온 말이다.

일본은 왜 '패싱' 당하고 있나
 
 ‘모기장 밖’이란 표현.
 ‘모기장 밖’이란 표현.
ⓒ @HON5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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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장 밖'은 모기장 밖에서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모기를 가리킨다. 주류에서 소외된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 같은 아베의 처지가 너무나 딱해서 화면 속에서나마 남북미 정상들과 함께 있게 해주고 싶어 합성 사진을 만들게 됐노라고 위 이용자는 말했다.

지금의 북미관계는 동아시아 차원을 넘어 세계를 움직이는 핫이슈다. 세계 최강 미국에 대한 북한의 도전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고, 최첨단 무기인 핵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만약 미국이 이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경우에 따라 미국의 패권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상황 여하에 따라서는 세계질서를 심하게 요동치게 만들 수도 있는 사안인 것이다.

한국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중국·러시아는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이 관계에 개입하고 있다. 그에 비해 일본은 북한을 지척에 두고 이 관계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다. '모기장 밖 일본 외교'라는 탄식이 나올 만도 하다.

물론 일본 정부가 아무런 개입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의 교섭을 통해, 또는 한미일 3자 교섭을 통해 간접적이나마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과의 직접 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한국과 중국·러시아에 비해 소외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모기장' 밖에 있을 수밖에 없는 원인은 북일이 미수교인 데다가 상호불신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특수관계라는 이유로, 미국은 직접 만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적대관계라는 이유로, 중국·러시아는 북한의 동맹국이거나 과거에 그랬다는 이유로 북한 최고지도자와의 만남을 성사시키고 있다. 일본은 다소 어정쩡한 적대관계인 데다가 국교도 없고 상호 신뢰도 없기 '재팬 패싱'(Japan Passing)이라는 곤경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북일 양국은 1950년대부터 상호 교류의 가능성을 물색해 왔다. 주로 경제적 이유에서였다. 경제적 필요성은 북한뿐 아니라 일본에도 있었다. 북한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려는 일본 기업들의 의지가 일본 정부의 대북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양국의 수교는 번번이 무산됐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모두가 동일한 경험을 갖고 있다. 김일성 주석 때인 1991년 1월 30일, 북일수교를 위한 정부간 교섭이 개시됐다. 세계적인 탈냉전 분위기에 편승해서 이뤄진 회담이었다. 이 회담은 1992년 11월까지 평양과 베이징에서 총 여덟 차례 개최됐다. 하지만, 성과를 도출하지는 못했다. 1993년 제1차 북미 핵위기가 터진 게 결정적 이유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인 2000년에도 교섭이 재개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기 전인 그해 4월 북일 회담이 재개됐다. 이렇게 시작된 북일 회담은 김일성 때와 달리 평양·베이징뿐 아니라 도쿄에서도 개최됐다. 그만큼 분위기가 훈훈해졌던 것. 이 흐름이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평양 방문과 평양선언 도출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이때는 납치자 문제가 최대 쟁점이 됐다. 북한은 '사회주의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입북했다'고 주장하고, 일본은 '북한 공작원들의 꼬임에 넘어가 납북됐다'고 주장하며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은 일본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2002년 9월 17일 김정일은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관련 조치를 약속했다. 납치를 부인했던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은, 통 큰 결단으로 일본 여론을 호의적으로 바꿔 놓으면 북일 수교에 속도가 붙을 거라는 김정일의 판단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황은 김정일의 의중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북한이 납치 사실을 인정하자 일본 여론은 적대적으로 돌변했다. 북한의 반인권 행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수교보다 납치문제가 급선무라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우익 단체들이 도쿄 시내에서 선전용 차량을 끌고 다니며 납치문제를 이슈화시키는 한편, 조총련 한국인들에게 괴롭힘을 가하면서 북일관계는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북한과 일본 사이에 흐르는 강, '납치 문제'
 
 2002년 북일정상회담(출처: 일본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 팜플릿)
 2002년 북일정상회담.
ⓒ 일본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 팜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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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납치 피해자의 것이라며 보내준 유골을 일본 정부가 '가짜'라고 판정한 뒤 진짜를 보낼 것을 요구함에 따라, 또 제2차 북미 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장에서 일본이 번번이 납치문제를 제기해 쟁점을 흐리게 함에 따라 북일관계는 더욱 더 경색 국면으로 빨려들어갔다. 수교는 자연히 멀어져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우익 지도자로 급성장한 인물이 아베 신조다. 2002년 평양 방문 때만 해도 차관급이었고 고이즈미 총리보다 인기가 적었던 그는, 평양에서 돌아간 뒤 납치 문제에 관한 비판 여론을 확산시키는 과정에서 고이즈미를 능가하는 새로운 리더로 급부상했다.

노다니엘 교토산업대 세계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아베 신조의 일본>이란 책에서 "북한에 피랍된 일본인 문제 해결에서 아베는 상당한 활약을" 했다면서 그가 납치문제 관련 단체를 지원하면서 우익 여론을 주도한 결과로 "국민적 인기를 얻으며 북한 문제에 관하여 강경파를 주도하게" 됐다고 말한다. 납치문제가 북일수교를 무산시키는 동시에 아베 신조를 지도자로 만드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수교를 위한 북한의 노력은 지금의 김정은 때도 있었다. 그 결실이 2014년 5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도출된 5.28 합의다. 이때도 양국은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의를 약속하면서, 식민지배 및 납치문제 청산에 합의했다.

하지만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납치문제와 관련된 극도의 상호 불신 때문이었다. 신정화 동서대 교수의 논문 '북한의 국가발전 목표와 대일정책'은 '북한이 납치문제보다는 국교정상화와 식민지배 문제에만 관심이 있으며 이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만 얻으려 한다'는 일본의 인식이었다고 설명하는 한편, 북한의 인식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 측은 납치피해자의 생존을 발표하더라도, 아니면 사망 혹은 입국 사실이 없다고 발표하더라도 일본의 여론이 북한에 긍정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일본이 납치문제만 해결하고 나면 과거사 청산과 국교 정상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 북한연구학회가 2015년 발행한 <북한연구학회보> 제19권 제2호

이처럼 김일성 때는 핵문제 때문에, 김정일·김정은 때는 납치문제 때문에 수교가 번번이 무산됐다. 물론 북일수교를 가로막는 최대 요인은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과 일본의 대미 의존이지만, 표면적으로는 핵문제나 납치문제가 장애물이 돼 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핵문제보다 납치문제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모기장'을 더욱 촘촘히 만드는 것은 바로 납치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신조는 북일수교를 가로막는 납치문제를 발판으로 지금의 정치적 위치에 도달했다. 북일간 상호 불신을 가중시키는 납치문제를 기반으로 지지 기반을 확보한 아베로서는 납치 문제를 포기하거나 전향적 자세를 갖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지금 상태에서는 김정은과 한 자리에 앉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납치문제에 대해 새로운 입장을 취하게 되면, 지금의 위치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본 우익의 신망이 단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계속해서 우익의 지지를 받자면 납치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열자면 '톤'을 낮춰야 하는 것이 아베 신조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베 신조가 아니라 그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일본은 '재팬 패싱'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북미관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작동하는 지금 상황에서 '모기장 밖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한반도 문제를 시청하는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이 딜레마부터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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