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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이용자와 도서관 사서가 함께 쓴 도서관 역사 여행기입니다. 대한제국부터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역사 속 도서관,  도서관 속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편집자말]
(*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경성제국대학 졸업 후 이재욱은 조선총독부도서관에서 촉탁으로 일을 시작하며 '서지학'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총독부도서관 시절에는 경성방송국(JODK)에 출연해서 독서와 도서관 안내 라디오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당시 경성방송국 대중 강좌에 최남선, 이광수, 김진섭, 윤석중, 김태준이 출연했다고 하니, 당대 명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도서관'을 소개한 셈이다. 

1931년 이재욱은 조선어문학회 발기인으로 참가해서 1933년에는 대표로 위촉됐고, 1934년에는 진단학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35년에는 <농촌도서관의 경영법>을 출간하는데, 조선인이 쓴 도서관 분야 첫 책이 아닐까 싶다. 

우현서루와 초대 국립도서관장 이재욱 
 
초대 국립도서관장 이재욱 시인 고월 이장희의 조카인 이재욱 관장은 일제 강점기 도서관 분야 최고위직에 이른 조선인이다. 해방 후 초대 국립도서관장으로 재임한 그는 한국전쟁 발발 후 박봉석 부관장과 함께 ‘납북’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재촬영한 사진.
▲ 초대 국립도서관장 이재욱 시인 고월 이장희의 조카인 이재욱 관장은 일제 강점기 도서관 분야 최고위직에 이른 조선인이다. 해방 후 초대 국립도서관장으로 재임한 그는 한국전쟁 발발 후 박봉석 부관장과 함께 ‘납북’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재촬영한 사진.
ⓒ 백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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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대 졸업 후 줄곧 조선총독부도서관에서 근무한 이재욱은 1943년 조선총독부도서관 '부관장'에 임명된다. 이재욱은 일제 강점기 도서관 분야 최고위직에 있던 조선인이다. 1945년 낙향해서 경북도청 사회교육과에 근무하다가 해방 후 국립도서관장으로 위촉받아 '초대 관장'으로 취임했다. 이재욱은 사서 출신으로 국립도서관 관장 자리에 오른 '유일한' 사람이다. 

도서관계에서는 사서 출신 국립중앙도서관장으로 2013년 4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국립중앙도서관장 자리에 있던 임원선씨를 꼽나 본데, 임원선씨는 '사서 출신 관장'이 아니라 '관장 출신 사서'다. 무슨 말이냐면 그는 사서 출신으로 관장이 된 것이 아니라 관장이 된 다음에 사서교육원에서 교육을 받고 '사서 자격증'을 취득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국립도서관 역사상 유일한 '사서 출신 관장'은 이재욱뿐이다.

이재욱 생가 터를 가보면 우현서루를 운영한 이일우 집안과 얼마나 가까웠는지 알 수 있다. 가까운 거리뿐 아니라 이재욱의 삼촌 이장희와 이일우의 조카 이상화는 시인이면서 절친한 사이였다.

이장희의 유고(遺稿)를 이상화가 간직할 정도로 두 사람은 각별했다. 대구의 유력한 집안이었던 두 집안이 직간접적인 교류를 가졌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이재욱의 생가와 우현서루가 자리했던 곳은 3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다. 우현서루는 이재욱이 태어날 때부터 여덟 살 무렵까지 그의 집 바로 근처에서 운영되던 도서관이다. 

경성제국대학 졸업 후 조선총독부도서관에 취직해 조선인으로 최고위직인 부관장 자리에 올랐다가 해방 후 초대 국립도서관장이 된 이재욱. 어린 이재욱에게 당시 흔치 않던 우현서루라는 '도서관'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우현서루의 그 많던 책은 어디로 갔을까
 
경북대학교 도서관이 보존중인 ‘우현서루’ 장서 1952년 이일우의 손자 이석희는 일제에 의해 폐쇄된 우현서루 장서를 갓 출범한 국립 경북대학교에 기증했다.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고서실은 경주 이씨 집안이 기증한 우현서루 장서를 ‘특수문고’로 보존하고 있다.
▲ 경북대학교 도서관이 보존중인 ‘우현서루’ 장서 1952년 이일우의 손자 이석희는 일제에 의해 폐쇄된 우현서루 장서를 갓 출범한 국립 경북대학교에 기증했다.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고서실은 경주 이씨 집안이 기증한 우현서루 장서를 ‘특수문고’로 보존하고 있다.
ⓒ 백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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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권에 이르렀다는 우현서루의 그 많던 책은 어디로 갔을까? 

한국전쟁 기간 중인 1951년 5월 4일 이승만 정부는 대학교육에 관한 전시특별조치령을 공포, '전시연합대학' 운영을 시작했다. 전쟁 기간 중 6500명 이상의 학생이 전시연합대학을 통해 학업을 이어갔다. 1951년 9월부터 전시연합대학에 참여했던 각 대학이 개별적으로 개강하면서 전시연합대학은 해체되지만 부산을 필두로 전주, 대구, 광주, 대전에 설치·운영했던 전시연합대학은 이후 '지방 국립대학'으로 발전했다. 

1952년 10월 문교부는 대구, 전주, 광주에 국립대학인 경북대학교, 전북대학교, 전남대학교를 설립했다. 대구에는 이미 대구농과대, 대구사범대, 대구의과대 같은 3개 국립대학이 있었는데, 이들 3개 대학을 주축으로 '국립 경북대학교'를 설립했다. 

1952년 경북대학교 설립을 맞아 소남 이일우의 손자 이석희(李碩熙)는 우현서루 장서였던 482종 3937책을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했다. 일만 권을 헤아렸다는 우현서루 장서가 수천 권으로 줄어든 까닭은 뭘까. 1911년 폐쇄 후 우현서루 장서 상당수를 일제가 강탈했다고 하며, 40여 년의 세월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절반 이상의 장서가 흩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석희가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한 책 중에는 우현서루 시절 이후의 장서도 포함되어 있다. 기증 도서 중 <사부총서>(四部叢書)는 1921년 상하이 상무인쇄관에서 간행한 책으로 경(經), 사(史), 자(子), 집(集) 중 당대 구할 수 있는 최상의 판본을 사진판으로 낸 총서다. 

경북대학교 도서관은 1952년 3개 대학에서 모은 8866권의 장서로 첫 발을 내디뎌 1953년 130평짜리 목조 건물에서 문을 열었다. 출범 초기 가교사 형태의 도서관은 지금의 출판부 자리에 있었다. 경북대학교 도서관 출범에 맞춰 기증된 우현서루의 장서는 지역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한 '경대'의 장서에 소중한 '밀알'이 되었을 터.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고서실 특수문고 중에 지금도 '우현서루'가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경북대학교 도서관 일대에서 만나는 여정남의 흔적
 
경북대학교 옛 도서관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지만 중앙도서관을 짓기 전까지 경북대학교 도서관으로 썼던 건물이다. W자 모양의 건물 외관을 가진 이 건물은 서울 정동 미국 대사관저와 서울 종로 YMCA, 부산 구세군 본부를 설계한 건축가 조자용의 작품이다. 경북대학교 옛 도서관은 1974년 3월 21일 유신 체제를 반대하는 <경북대학교 반독재민주구국선언> 유인물이 배포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 시위는 유신 체제를 반대하는 ‘전국 최초의 시위’였다.
▲ 경북대학교 옛 도서관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지만 중앙도서관을 짓기 전까지 경북대학교 도서관으로 썼던 건물이다. W자 모양의 건물 외관을 가진 이 건물은 서울 정동 미국 대사관저와 서울 종로 YMCA, 부산 구세군 본부를 설계한 건축가 조자용의 작품이다. 경북대학교 옛 도서관은 1974년 3월 21일 유신 체제를 반대하는 <경북대학교 반독재민주구국선언> 유인물이 배포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 시위는 유신 체제를 반대하는 ‘전국 최초의 시위’였다.
ⓒ 백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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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도서관은 원래 지금의 박물관 건물에 자리했다. 1956년 12월 10일 개관한 옛 도서관 건물은 건축가 조자용의 작품이다. W자 모양의 도서관 건물은 제트기가 웅비하는 모습과 날아가는 박쥐 형상으로 행운을 상징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도깨비 박사'로도 알려진 조자용은 미국 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를 설계한 사람이다. 하비브 하우스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내가 머문 숙소 중 가장 인상 깊은 집"이라는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박물관 건물에 머물던 도서관은 중앙도서관을 새로 지으면서 1982년 3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갔다. 

경북대학교 본관과 옛 도서관 사이 공간은 경북대학교에서 집회와 시위가 자주 열린 공간이다. 1960년대 이후 경북대학교는 '한강 이북엔 서울대학교가 있고 한강 이남엔 경북대학교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생운동을 주도한 학교다. 대학 본관과 옛 도서관(지금의 박물관) 사이 로터리에서 집회를 가진 학생들은 시내로 진출해 시위를 이어가곤 했다. 

새로 지은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북문으로 향하는 길목엔 대강당이 있고, 그 앞에는 '민주광장'이 있다. 경북대 도서관은 수많은 유인물이 학우들에게 배포된 장소이며, 민주광장은 숱한 교내외 집회가 열린 현장이다. 한때 민주광장에는 1991년 4월 9일 경북대학교 총학생회가 세운 '여정남 추모 기념비'가 있었다. 민주광장의 여정남 추모 기념비는 1996년 6월 18일 새벽 2시 30분 3개 중대 병력을 앞세운 경찰이 '강탈'해갔다.

여정남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여덟 명 중 한 사람이다. 박정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여덟 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바로 다음 날 이들의 사형을 집행했다. 여정남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1975년 4월 9일은 세계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로 기억되고 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경북대학교 학생운동을 이끈 청년 여정남은 유신의 광기 속에 그렇게 스러졌다. 

그로부터 32년 후인 2007년 1월 23일 재심을 통해 여정남을 비롯한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8년 경북대학교는 수차례 제적으로 졸업하지 못한 여정남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뛰어난 '활동가'이자 '독서가'였다는 여정남, 경북대학교 옛 도서관인 박물관과 중앙도서관, 본관과 사회과학대학 일대는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이다. 

4월의 맑은 하늘 아래 
 
경북대학교 본관 경북대학교 옛 도서관인 박물관에서 바라본 본관. 경북대학교 본관과 옛 도서관 일대는 수많은 시위와 집회가 벌어진 공간이다. 본관 주변의 로터리, 대강당 앞의 민주광장, 사회과학대학 앞의 여정남 공원은 경북대학교 학생운동사의 현장이자 여정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 경북대학교 본관 경북대학교 옛 도서관인 박물관에서 바라본 본관. 경북대학교 본관과 옛 도서관 일대는 수많은 시위와 집회가 벌어진 공간이다. 본관 주변의 로터리, 대강당 앞의 민주광장, 사회과학대학 앞의 여정남 공원은 경북대학교 학생운동사의 현장이자 여정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 백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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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4월 9일 경북대학교 교정에서 '4월의 맑은 하늘 아래'라는 시가 낭송되었다. 여정남의 큰 형이 토로한 동생 잃은 슬픔을 대구청년문학회 4.9추모시창작단이 시로 지었다. 
 
"떼로 자라지 못한 네 어릴 적 까까머리 같은 현대공원 네 무덤. 사십구재를 지내기 위해 형제를 두고 부모님 남겨두고 스물아홉 창창한 나이에 살해당한 네 저승길 보살피기 위해 낡은 봉고차에 '유신독재 반대' 써 붙이고 너의 아름다운 영토 너의 교정을 지나 여기에 왔다. 

초여름 따스한 햇살이 피를 돌게 하는 눈부시게 맑은 날. 무덤 하나 덩그라니 남겨두고 너는 없다. 세상 어디에고 네가 남긴 숨결 새록새록 싹트겠지만 너는 훤칠한 키, 맑게 웃던 네 모습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너 살아 있던 시절 수많은 시간의 풍경들을 어찌 잊으며 살까. 

경북고 2학년 네가 가출했던 봄 낙동강 가에서 풋내 나는 손놀림으로 골재 채취를 하며 막일하는 사람들 틈에서 풋내기 삶에 눈 뜰 때 봄 햇살에 그을린 시커먼 얼굴로 대문을 들어섰을 때 뒤뜰 개나리 소리 없이 지고 있었지. 그 기막힌 봄날의 시간 동안 너는 봄날의 슬픔 속으로 고통받는 사람과 사람 이 나라의 슬픔 속으로 성큼성큼 갔지.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정진회 사건에 제적과 복교, 투옥과 출소를 거듭하면서.

언젠가 효성여대 앞 허름한 소피국 골목에서 숨죽이며 우리 형제 만나 뜨거운 소피국으로 가슴 데우던 수배시절. 교사 월급 박봉에 돈 만 원씩 건네주던 나에게 어쩌면 어쩌면 이번에 잡히면 죽을 수도 있다며 비장한 모습 보이던 네가 잡혀간 후 면회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대법원 상고기각 스무 시간도 지나지 않은 봄날의 새벽 동지들과 함께 살해당하고 말았지. 

그 처참한 학살의 분노 어떻게 삭히며 살아야 하나. 해 지는 네 무덤 서산 노을 고운데 져서 아름다운 저 노을보다 차라리 살아서 감옥에 갇혀있는 들 이리 가슴 저리지는 않으리. 눈물 흐르지는 않으리. 너 가고 없는 수많은 나날들을 나는 무엇으로 너를 기억하며 살아야 할까. 네가 싸워  왔던 막막한 권력 앞에서 무엇으로 견디며 살아야 할까. 짧지만 아름다웠던 네 생애를 어떻게 지키며 살아야 할까."  

이 날 경북대 행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숨진 이들을 위한 첫 공식 추모행사였다.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박정희 흉상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1층에 새겨진 박정희 흉상 부조. 1971년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동창이자 당시 경북대학교 총장이 건립했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경북대 총장을 연임한 김영희 역시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동기다.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재문서와 관련 자료 969점을 비치한 ‘박정희자료실’도 있다.
▲ 박정희 흉상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1층에 새겨진 박정희 흉상 부조. 1971년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동창이자 당시 경북대학교 총장이 건립했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경북대 총장을 연임한 김영희 역시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동기다.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재문서와 관련 자료 969점을 비치한 ‘박정희자료실’도 있다.
ⓒ 경북대학교 대학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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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에는 '박정희 흉상'이 청동 부조로 새겨져 있다. 경북대학교는 대구사범대, 대구농과대, 대구의과대 3개 학교를 합쳐서 출범했다. 박정희가 졸업한 대구사범학교는 경북대학교의 전신이기도 하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박정희 흉상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 
성실한 교육자 
용기있는 혁명가 
민족중흥의 위대한 정치인 
1937년 이 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 모교를 위하여 이 교사를 세우다"

1971년 박정희 흉상을 새겨 그를 기리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에 2019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나붙었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이 진정으로 기억할 사람은 박정희인가, 일제 강점기 독립과 참스승의 길을 걸었던 이름 모를 교사들인가'를 되묻는 대자보였다(관련기사 : 스승의 날 경북대엔 '박정희 흉상 철거' 대자보 나붙어). 

사범대학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회과학대학 앞에 '여정남 공원'이 있다. '후배' 여정남은 왜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이자 '선배'인 박정희를 격렬히 비판하고 유신 체제에 저항했을까. 교육자이자 혁명가, 위대한 정치인 박정희는 후배를 포함한 대구 지역 진보인사를 '살해'한 걸까. 

경북대학교가 기억하는 상징과 조형물은 이처럼 극단적인 '대립항'이 함께 공존한다. 

대구는 왜 '보수화'됐을까
 
여정남 공원 2007년 1월 23일 서울지방법원은 재심을 통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유가족과 경북대학교 동문은 여정남 열사의 명예회복을 위해 애썼고, 2010년 4월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앞에 ‘여정남 공원’을 건립했다. 경북대 62학번인 여정남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 투쟁, 1969년 3선 개헌 반대 투쟁, 1971년 <반독재 구국선언문> 사건, 1974년 반유신 시위를 실질적으로 이끈 경북대학교 학생운동의 리더였다.
▲ 여정남 공원 2007년 1월 23일 서울지방법원은 재심을 통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유가족과 경북대학교 동문은 여정남 열사의 명예회복을 위해 애썼고, 2010년 4월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앞에 ‘여정남 공원’을 건립했다. 경북대 62학번인 여정남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 투쟁, 1969년 3선 개헌 반대 투쟁, 1971년 <반독재 구국선언문> 사건, 1974년 반유신 시위를 실질적으로 이끈 경북대학교 학생운동의 리더였다.
ⓒ 백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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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대구는 지금은 '보수의 아성'처럼 인식되는 도시다. 한때 '남조선의 모스크바', '제1야당의 도시'로 불렸다는 대구는 왜 '보수화'됐을까. 

일제 강점기 대구는 많은 항일투사를 배출했다. 해방 이후 1946년 대구 10월 항쟁, 1947년 2.7 구국투쟁,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1960년 2.28 학생의거, 3선 개헌 반대와 유신 반대 투쟁 과정에 이르기까지 대구는 항쟁의 중심에 있었다. 1956년 3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 조봉암은 대구에서 10만 1천 표 이상을 얻어 3만 8천여 표를 얻은 이승만을 압도했다.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대구 경북보다 광주 전남에서 득표율이 더 높았다.

저항과 항쟁이 이어지고 영남 출신 정권의 탄압과 지역 분열 정책이 지속되면서 대구의 진보 세력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특히 박정희는 고향인 대구 경북에서 저항 세력을 뿌리 뽑고 자신의 정치적 텃밭으로 삼기 위해 집중적인 탄압을 가했다. 서울과 광주를 제외하고 이런 시련을 겪은 대도시는 흔치 않다. 

경북대학교만 해도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남민전 사건을 연이어 겪으면서 여정남, 이재문이 사형 당하고, 백 명이 넘는 사람이 구속되고, 구속자의 징역 기간을 합하면 수백 년이 될 정도로 집중적인 탄압을 받았다. 

경북대학교를 비롯한 대구 경북의 진보세력이 해방 이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앞장섰고 큰 희생을 치렀음을 알 수 있다. '한강 이남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였던 대구는 이런 과정을 거쳐 '보수화'됐다. 대구의 보수화는 민주주의를 위해 열렬히 싸웠던 이 도시가 지닌 또 다른 '상흔'이다. 

우리가 현모할 '현고'는 누구일까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경북대학교 도서관은 1952년 개교 당시에는 지금의 출판부 자리에 목조 건물로 있다가 1958년 박물관 건물로 옮겼다. 1982년 지금의 자리에 새롭게 건립한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은 1990년 중앙도서관 옆에 ‘신관’을 새로 지어 ‘구관’과 ‘신관’으로 나뉘었다. 2000년에는 도서관 건물을 증축했다.
▲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경북대학교 도서관은 1952년 개교 당시에는 지금의 출판부 자리에 목조 건물로 있다가 1958년 박물관 건물로 옮겼다. 1982년 지금의 자리에 새롭게 건립한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은 1990년 중앙도서관 옆에 ‘신관’을 새로 지어 ‘구관’과 ‘신관’으로 나뉘었다. 2000년에는 도서관 건물을 증축했다.
ⓒ 백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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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도서관을 선구적으로 운영한 경주 이씨 집안이 우현서루 장서를 경북대학교에 기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 대학에 장서를 기증해서 지역과 나라의 인재를 길러내는데 밑거름으로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은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장서량을 자랑한다. 경북대학교가 보유한 수백만 권의 장서 중에 우현서루 고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장서가 지닌 역사와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우현서루가 존속한 시간은 짧았다. 짧은 기간에도 우리가 우현서루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 미래가 '인재'에 달려 있다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 현실에서 인재와 사람에 기반하지 않으면 사회 존립 자체가 어렵다는 점은 식민 시대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공교롭게 경북대학교 캠퍼스가 자리한 복현동(伏賢洞)은 '엎드려 현모한다'(謹而伏以賢慕)는 뜻을 담은 곳이다. 논쟁적인 질문이지만 경북대가 각별히 기리는 두 사람, 박정희와 여정남 중 나라를 구한 '현고'와 같은 인재는 누구이며, 우리가 현모할 사람은 누구일까.

[우현서루 옛터 : DGB대구은행 북성로지점]

-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81
- 이용시간 : 09:00 - 16:00 
- 휴관일 :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 이용자격 : 이용 자격 제한 없음
- 홈페이지 : https://www.dgb.co.kr/
- 전화 : 053-253-4083
- 운영기관 :  DGB대구은행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 주소 : 대구광역시 북구 대학로 80 
- 이용시간 : 구관 자료실(학기중 08:00-21:00, 방학중 08:00-18:00, 토요일 08:00-17:00) U-Lounge·CRETEC Zone·B-Zone, 대출반납실, 연속간행물실(학기중 09:00-21:00, 방학중 09:00-18:00, 토요일 09:00-17:00) 신관 열람실(학기/방학중 2-4층 06:00-24:00, 학기/방학중 지하열람실 06:00-익일 02:00, 시험기간중 2-3층 06:00-익일 02:00, 시험기간중 지하열람실 24시간) S-Lounge(학기/방학중 06:00-24:00) 개인문고실(평일 09:00-18:00, 토요일 휴관)
- 휴관일 : 구관 자료실, U-Lounge·CRETEC Zone·B-Zone, 대출반납실, 연속간행물실(법정 공휴일 및 국경일 휴관) 신관 열람실, S-Lounge (설날, 추석 당일 휴관)
- 이용자격 : 재학생과 교직원(졸업생 및 외부 이용자는 연회비 낸 뒤 이용 가능)
- 홈페이지 : http://kudos.knu.ac.kr/
- 전화 : 053-950-6519 
- 운영기관 :  경북대학교

덧붙이는 글 |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는 격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우현서루와 경북대학교 도서관'을 다룬 이 기사는 ①편과 ②편 2개의 기사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글은 ②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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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해서 책사냥꾼으로 지내다가, 종이책 출판사부터 전자책 회사까지 책동네를 기웃거리며 살았습니다. 책방과 도서관 여행을 좋아합니다.

사람사이에 조용히 부는 따스한 봄바람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 동물, 책을 좋아하는 고양이 집사입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지금은 소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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