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지난달 27일 교육단체들이 청와대 분수대에서 연 '자사고 일반고 전환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든 피켓
 지난달 27일 교육단체들이 청와대 분수대에서 연 "자사고 일반고 전환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든 피켓
ⓒ 전교조

관련사진보기

  [이전 기사: '자사고는 어쩌다 '재수생 사관학교'가 되었나

학교는 아이들에게 삶의 현장이자 배움의 공간이다. 말하자면 삶과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다. 나와 다른 가정환경, 사회적 지위, 인생관, 세계관이 교차하며 서로 배우게 된다.

성적이나 점수로 학생들을 분리해 수월성 교육의 욕구는 충족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교육이 지향하는 사회통합의 가치는 철저하게 배제되고 소외됐다. 정답은 늘 현장에 있다. 필자가 가르친 고등학생들 사례를 바탕으로 일반고 중심 고교체제 개편의 방향성을 모색해 본다.

삶과 교육이 일치하는 순간

A는 신입생 예비소집에서 예상치 못한 장면을 목격한다. 12월 추운 겨울 날씨에 얇고 구멍까지 나서 낡아버린 하얀색 실내화를 신은 채, 낡은 점퍼를 입고 예비소집에 나타난 친구 B를 보게 된다. 귀가해서도 온종일 그 모습을 떨쳐낼 수 없었다. 엄마에게 울먹거리며 부탁했다고 한다. 아무도 모르게 친구 B가 입을 수 있는 겨울 점퍼랑 따뜻한 신발을 사주면 안 되겠냐면서 말이다. 그때 가장 강조했던 건 겨울옷과 신발을 학교에서 사주는 것으로 해달라는 간청이었다.

A 학생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국립대 의대 교수였다. A는 나중에 자신을 성찰하며 남긴 글에 스스로 온실 속 화초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들 가운데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으며 크게 깨달았다고 했다. 훗날 자신이 의사가 되더라도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헌신하는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교육은 이런 것이다. 삶과 교육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C는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값비싼 영어 원서도 여러 권을 지니고 있었다. 기초생활 수급자였던 D가 어느 날 수업 시간 영어교재로 사용하던 원서교재를 C에게 빌렸다. 한 주가 지나도록 빌린 책을 돌려주지 않자 늦은 시간에 C가 D를 찾아갔다. 노크해도 문이 열리지 않자 '다 자나?'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기숙사 방문이 열렸다.

문을 연 친구 D의 눈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놀란 C가 못 본 척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괜찮다며 들어와도 좋다는 D의 말에 방안으로 들어섰다. D와 한 방을 사용하던 나머지 친구들도 눈가가 젖어 있었다. C도 방에 들어가 함께 앉아 들어보니 D를 포함해 친구들이 각자 자신이 살아온 삶을 친구들과 솔직하게 나누고 있던 자리였다.

가난 때문에 엄마, 아빠, 본인, 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고 있고, 아빠는 낮에도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까지 하며 잠잘 시간조차 없이 돈벌이에 나섰고, 어느 날엔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집안으로 쳐들어와 빨간 딱지를 붙이며 압류 조치했던 사건 등등.

그날 한 방에서 D의 이야기를 들었던 친구들은 왜 울고 있었을까? 함께 가슴 아파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르치는 교과서와 관련 성취기준들에 따른 교육이 언제 한 번이라도 '삶'이라는 이정표와 정확하게 겹쳤던 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C가 써낸 글을 보며, 언젠가 세월이 흘러 C가 성인이 되고 국가의 주요 정책을 다룰 수 있는 자리에 가더라도 최소한 어떤 마음으로 누굴 위해 일해야 하는지 정도는 명확한 입장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다른 사례도 많았다.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될 정도로 지독하게 가난한 삶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았던 E가 입학하기 어렵다는 자사고에 합격했다. 입학 첫날부터 세상이 그리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자신은 중학교 시절 방과 후 보충수업비를 교육청에서 지원해 주기 때문에 그 정도 수준의 수업만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입학해보니 고등학교 수학 과정까지 모두 마치고 입학한 친구들이 수두룩했다. 수업 시간이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고난도 문항을 척척 풀어내는 친구들을 보며 자신의 가난이 미웠다. 동시에 솟아오른 분노와 증오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을 향했다. 눈에 띌 정도로 극도의 분노와 저항감을 표출했다.

시간이 흘러 고3이 됐을 때, E는 1학년 때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하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과 대단히 잘 어울리며 가깝게 지냈다. 옛날 모습이 떠올라 물었다. 제자가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선생님, 제가 몰랐던 것이 많았어요. 저는 가난해서 많이 불편했지만 제가 판단하고 결정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근데 집안 형편이 넉넉한 친구들은 불쌍하기도 해요. 매일 저녁 늦은 시간이 되면 그 친구들이 엄마랑 통화하는데 무슨 내용인지 대충 알 수 있거든요. 근데 무엇 하나라도 자신들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군요. 그래서 어찌 보면 세상은 참 공평한 것 같아요. 저는 가난했지만 스스로 고민하고 주체적으로 결정하며 살아왔고, 친구들은 부유했지만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던 거잖아요."

'분리'와 '특권'을 거부합니다

 
 울시교육청이 사실상 자율형 사립고 폐지 수순에 들어가면서 서울지역 자사고교장연합회가 공동대응에 나서며 양측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앞서 서울교육청은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반고로 자진 전환하는 자사고를 '서울형 중점학교'로 지정하고 5년간 최대 14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학교 현장에서 만났던 제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이야말로 시대의 스승이었다. 이 아이들이야말로 삶의 현장에서 교육과 삶이 일치하는 숱한 장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삶'을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일깨워준 친구들이니 이들이 내겐 스승이었다.

교육은 이래야 한다. 나와 다른 계층,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친구들이 서로 어우러져 갈등도 경험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안고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자사고 정책이 실패한 정책이라고 믿는 이유는 바로 이런 '분리교육'이 갖는 폐단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성세대로서 '수월성' 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에 너무 많은 사회적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이 참된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어야 한다. '경쟁'과 '배제' 그리고 '분리'와 '특권'의 가치를 거부하고 '협력'과 '배려' 그리고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전경원은 하나고 해직교사(2017년 복직)였습니다. 올해부터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문학박사 / 하나고 교사 /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 청렴사회 민관실무협의회 실무위원 /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공익신고센터장 / 내부제보실천운동 운영위원 /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공익내부제보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