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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대 트레일 중 가장 길고 험하다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이하 피시티) 4300km. 미국 LA 문화단체 '컬쳐앤소사이티' 기획으로 고난의 행군을 자처한 한국 하이커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 기자말

(* 1편에서 이어집니다.)

세상 떠난 삼촌과 4300km를 걷다
 
미국으로 돌아오며 배낭 머리 부분에 삼촌 이름 석 자를 실로 자수했다. 삼촌과 함께 걷고 싶었다.
 
'삼촌, 미국 여행은 안 해 봤지? 내가 미 서부 곳곳을 데려다줄게, 잘 지켜봐 줘. 같이 가 보자!'
 
트레일 복귀 후 첫날밤 남부 캘리포니아인 카사 데 루나(Casa de luna, 운행 38일, 운행거리 769km)에 도착했다. 그날 또 다른 사망 소식을 들었다. 한국인 피시티 하이커 한 명이 삼촌 기일에 하이킹 중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다. 그분의 트레일 네임은 '해피데이(Happy Day)'였다. 한인 피시티 단체 채팅방에서 늘 밝게 대화하시던 분이었다.
 
겁이 났다. 나도 죽으면 어떡하지… 다음날 걷지 않고 텐트에서 골몰히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배낭에 자수한 삼촌 이름 옆에 해피데이 선생님 이름을 함께 새겼다. 그리고 기도했다.
 
"선생님 이름을 제 가방에 자수하겠습니다. 대신 부탁 한 가지만 들어주세요. 하늘나라에 가셔서 우리 삼촌에게 선생님의 해피 바이러스를 전달해주세요."
 
각오를 다졌다. 완주하리라. 이제 포기는 없다.  
 
실로 자수한 삼촌의 이름과 Happy day 선생님.
 실로 자수한 삼촌의 이름과 Happy day 선생님.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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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나, '스피디 곤잘레스'로 재탄생
 
피시티에서 하이커들은 서로 특징을 관찰하고 별명을 지어준다. 이것을 트레일 네임(Trail Name)이라 부른다. 내 이름은 '스피디 곤잘레스(Speedy Gonzales)'다. 하이커들은 남미판 '톰과 제리' 만화영화 속 제리라고 했다. 하이커들은 크지 않은 체구에 빨리 걷는 내가 생쥐 같았나 보다.

사실은 트레일에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걷게 되면 잡생각이 떠오르고 삼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숨이 차도록 걸었다. 그래도 삼촌이 생각나면 소리치며 울며 걸었다. 산은 내 투정을 군말 없이 받아주었다.
 
나의 모든 투정과 슬픔을 따듯하게 끌어안아주었던 산.
 나의 모든 투정과 슬픔을 따듯하게 끌어안아주었던 산.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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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매일 아침 하이킹 출발 전, 등산 폴대로 삼촌과 해피데이 선생님 이름이 적힌 배낭을 톡톡 쳐 문안 인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혼잣말을 한다. "오늘도 가 보시죠! 배낭 잘 붙들고 계세요!" 풍광이 좋은 곳이면 배낭을 내려놓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삼촌과 해피데이 선생님 영혼이 함께한 '단체사진'이다. 매번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할 수 있다. 아니 해낸다!'
 
늘 함께 했던 삼촌과 선생님.
 늘 함께 했던 삼촌과 선생님.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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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봉에서는 누드 사진을
 
5월 2일 출발해 52일째, 드디어 남부 캘리포니아 구간을 마치고 중부인 하이 시에라(High Sierra) 구간 출발점 케네디 매도우(Kenedy Meadow)에 도착했다. 하이 시에라는 '피시티의 꽃'이라 불리는 구간이다. 전체 구간 중 가장 예쁘면서 험난하기 때문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태풍 예보와 지난겨울 내린 눈 때문에 하이커들이 운행을 멈추고 인근 지역에서 쉬고 있었다.
 
5월 16일 출발 66일째. 나도 휴식한 뒤 케네디 매도우(Kenedy Meadow)로 돌아왔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많았다. 폭설이 온다는 소식도 있었다. 내 비자 기간 6개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입산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할아버지 마법사인 간달프를 닮아 트레일 네임이 간달프인 친구와 미국 최고봉인 휘트니 산(Mountain Whitney, 해발 4421m)에 올랐다.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 밤 12시에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전날 내린 눈 때문에 길은 보이지 않았다. GPS를 보고 길을 짐작해가며 나아갔다.
 
고도가 급격히 올라가니 고산증으로 숨쉬기가 힘들었다. 암흑 속 들리는 거라곤 발자국 소리와 내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할 수 있다!" "우리가 이긴다!" 소리치며 걸었다. 오전 5시쯤 정상에 도착했다. 5분 뒤 해가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감상에 빠졌다. 산악인들이 왜 히말라야 같은 높은 산을 동경하는지 얼핏 알 것 같았다.

피시티에서 재미있는 문화 중 하나는 랜드마크에서 누드사진 찍기다. 나는 마운틴 휘트니로 정했다. 옷을 하나 둘 빠르게 벗어던지고, 두 손을 번쩍 들어 사진을 찍었다. 10초 동안 거대한 미국을 맨몸으로 정복한 느낌이었다.
    
이것은 도전인가 객기인가

겨울 산행의 또 다른 어려움은 야영이다. 얼음장 같은 추위에 선잠을 자야 한다. 피시티에서 가장 높은 구간인 포레스트 패스(Forest Pass, 해발 4009m)를 가기 전이었다. 우리는 패스 직전 캠프 사이트에 도착했다. 바닥은 온통 눈으로 덮여 텐트를 칠 자리가 없었다.

눈 치울 장비가 없어 손과 발, 가방으로 눈을 파냈다. 눈 밑에는 또 얼음이었다. 결국 얼음 위에 텐트를 쳤다. 가지고 있는 모든 옷을 입고 물을 끓여 물통에 넣어 끌어안고 잠을 잤다. 하지만 얼음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무용지물이었다.
 
"모두 살아 있니!(Are you guys still alive!)"
 
다음 날 하이커들의 첫 인사말이다. 굿모닝이 아닌 서로의 생존 여부를 묻다니, 피식 웃음이 났다. 또 문제가 생겼다. 똥 싸고 오줌 누기 위한 공간이 없었다. 은폐할 곳이 없어 한 명씩 순서대로 텐트에 나와서 눈을 파고 똥을 쌌다. 출발 전 텐트 주변에는 하얀 종이에 노란색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 오줌 자국이 널려 있었다. 우리는 '옐로우링(Yellow Ring)'이 생겼다며 깔깔대며 웃었다. 눈 속 똥 지뢰가 숨어 있어 조심히 걸어야 했다.
 
눈을 파고 얼음 위에서 자던 날. 아직은 해맑은 나.
 눈을 파고 얼음 위에서 자던 날. 아직은 해맑은 나.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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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캘리포니아 비숍(Bishop, 운행 72일째, 운행거리 1269km, 중부 캘리포니아)을 지나고 해발 3690m 핀촛 패스(Pinchot Pass, 운행 77일째, 운행거리 1299km)를 넘고 있을 때였다. 그날은 해발 3686m 마더 패스(Mother Pass) 앞에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눈이 녹아 발이 빠지는 '포스털링(Postholing)' 현상을 피하기 위해 새벽 6시부터 걸었다. 오전 10시쯤, 목적지 캠프 사이트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시간이 남아 더 걸었다. 2017년 여성 하이커 2명이 강물에 휩쓸려 죽었던 킹스(Kings) 강을 건넜다.

강은 무사히 넘었지만 안전을 위해 등산화를 벗지 않아 등산화와 양말이 다 젖었다. 시간이 지나자 발에 감각이 사라졌다. 아차 싶어 신발을 벗어 마른 수건으로 발을 닦고 마사지를 했다. 해가 뜨자 포스털링 현상도 나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이 눈에 더 깊이 빠졌다.
 
보통 시간당 6km 정도를 걷는다. 하지만 눈길은 1~2km밖에 걷지 못했다. 체력 소모도 컸다. 시간은 오후 2시를 넘었다. 남미식 옥수수 전병인 토르티야와 소시지를 먹었다. '앵꼬 난' 자동차에 휘발유를 퍼붓듯 정신줄을 놓고 식사를 했다. 나도 모르게 3일 치 점심을 한 번에 다 먹어치웠다.
 
감각없는 발을 말리며 가장 아끼던 특식 Honey Bun 또한 먹어버렸다.
 감각없는 발을 말리며 가장 아끼던 특식 Honey Bun 또한 먹어버렸다.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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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폴대로 얼음을 깨며 걸었다. 가파른 언덕에서는 돌을 붙잡고 걸었다. 미끄러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한 발 한 발 신중히 확인하며 올랐다. 정상까지 단 15m. 그때 몸 절반이 눈 속에 푹 빠졌다. 길이 너무 가팔라 기어서 올라갈 수도 없었다. '떨어지면 즉사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등산 폴대로 몸이 미끄러지는 것을 막았다. 그 사이 눈은 가슴 높이까지 찼다. 눈을 감고 기도했다. '도와주세요, 삼촌. 도와주세요, 해피데이 선생님.' 눈을 뜨고 아주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30초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20분 넘게 걸어서 빠져나왔다.
 
눈물 콧물 마시며 걸은 176일 하이킹 
 
캐나다 국경지대를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워싱턴주를 걷고 있을 때다. 캐나다 근방에서 큰 불이 나 트레일이 막혔다는 뉴스를 접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 사이에 있는 피시티 종점인 매닝파크 모뉴먼트(기념비)를 봐야 하는데 허탈했다. 할 수 없이 우회하기로 했다.
 
캐나다로 가기 전 마지막 마을인 워싱턴주 마자마 빌리지(Mazama village, 운행 171일째, 운행거리 4170km)에 도착했다. 와이파이를 연결해 인터넷을 확인했다. 이 무슨 일인가! 화재로 막혔던 길이 오늘 아침 열렸다는 뉴스였다. 할렐루야! 아 신이 도와주신 것가. 아니면 삼촌과 해피데이 선생님께서 도와주신 건가. 기적 같았다.
 
캐나다까지 남은 거리 98.3km, 3일 정도치 거리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이 길을 시작할 때 10km, 100km를 지나가며 언제 끝이 오나 생각했는데 곧 그날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9월 3일 오전 8시, 출발 176일째. 마지막 도착지인 캐나다 국경지대 매닝파크 모뉴먼트에 도착했다. 멀리 마을에서 챙겨온 맥주를 따 건배를 외쳤다. 해냈다!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하이커들끼리 포옹하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가방을 모뉴먼트에 내려 두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물이 흘렀다. 삼촌에 대한 미안함과 완주에 대한 부담감만큼 눈물이 떨어졌다. 가방을 꼬옥 안았다.
 
"삼촌, 해피데이 선생님, 저 해냈어요. 그동안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맘 편히 쉬세요. 여기서부터는 혼자서 제 인생의 피시티를 걸어갈게요."  
 
앞으로 내 인생의 어떠한 길을 걸어갈지 모르겠지만, 자신 있다. 그 길이 어떠한 길이든.
▲ PCT 시작과 끝 지점에서. 앞으로 내 인생의 어떠한 길을 걸어갈지 모르겠지만, 자신 있다. 그 길이 어떠한 길이든.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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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PCT, #PACIFIC CREST TRAIL, #장거리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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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고 따듯한 햇살과 함께하는 모닝커피를 사랑한다. 스스로의 발전은 있으되 만족하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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