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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대 트레일 중 가장 길고 험하다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이하 피시티) 4300km. 미국 LA 문화단체 '컬쳐앤소사이티' 기획으로 고난의 행군을 자처한 한국 하이커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 기자말
  
평소보다 일찍이 하이킹을 끝마치는 날이면 주로 전자책을 읽었다.
 평소보다 일찍이 하이킹을 끝마치는 날이면 주로 전자책을 읽었다.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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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에 찾아온 날벼락

낯선 병명, 눈 통합 기능 장애(Eye team's ability dysfunction). 최근 2년 사이 롤러코스터 인생을 살았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배우겠다며 한국을 떠나 세계여행을 했다.

호주 동부 소 도축장, 아보카도 농장에서 일하며 '극한직업'을 체험했고 멜로 영화를 꿈꾸며 도전했던 장거리 도보여행은 교양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로 전락했다. 지금은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시대'를 혼자 찍고 있다. 가족과 친구는 희소병 원인을 '피시티(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라 지목했다.
 
"너 피시티 때문에 눈 다친 것 아니야?"
"산속에서 그 고생을 하니까 눈이 남아나겠어?"

 
피시티 완주를 하고 캐나다에서 여유작작하며 책을 읽던 중 갑자기 눈 초점이 풀려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고, 눈을 비벼 봐도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눈을 몇 분간 감고 뜬 뒤에야 초점이 잡혔다가 곧 다시 풀렸다.

'피곤한 건가' 가볍게 여기고 중남미 코스타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상태는 더욱 악화했고 두통마저 생겼다. 남은 여정을 뒤로 한 채 귀국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눈통합기능장애'라는 희소병이 진단됐다. 세무사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로맨스를 꿈꾸고 떠난 4300km 고행길
 
2년 전 호주에서 일하고 여행하며 행복한 한 해를 보내다 다음 여행지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2013년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국토대장정 600km를 하며 첫사랑을 만났던 터라 도보여행이야말로 사랑과 여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산티아고 자료를 찾다가 보지 말았어야 할 영상을 보고 말았다. 미 서부 종단 4300km를 걷는 여행, 피시티(PCT∙Pacific Crest Trail)에 관한 영상이었다. '산티아고보다 긴 거리를 걷다 보면 더 많은 경험을 하지 않을까?' 하여, 나는 걷기로 했다(물론 크나큰 착각이었다).

첫 스텝부터 꼬였다. 당시 호주 멜버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인터뷰를 봤다. 미국 비자 담당 직원은 "호주에서 일한 경험이 있냐?" 물었다. 나는 당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있어 "네(YES)"라고 대답했다. 그 말 한마디에 직원은 서류에 '거절' 도장을 찍었다. 이유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미국에 가서 일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가 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 이민 정책도 한몫을 했던 것 같다.
 
일주일 뒤 다시 인터뷰 신청을 했다. 모든 미국 일정을 파일로 인쇄해 영사관 직원에게 보여주며 왜 내가 미국에 가는지 설명했다. 결국 '승인' 도장을 받았다.

텐트를 덮고 자던 하이커, '슈퍼 미니멀리스트'가 되다
 
피시티 도전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일상적 여행, 그 일부라 생각했다. 완주한다고 인생이 크게 변하지 않을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였을까?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고생길이 펼쳐졌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꿈에도 모른 체 피시티의 시작점에서 즐거워하는 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꿈에도 모른 체 피시티의 시작점에서 즐거워하는 나.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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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12일 미국 최남단 멕시코 국경 마을 캄포에 도착했다. 다가올 고난과 역경도 모른 채 싱글벙글 웃으며 사진도 찍었다. 역시나 첫날부터 문제에 직면했다. 첫 번째, 피시티는 평탄한 길을 걷는 것이 아닌 산행을 하는 것이었다. 산행 경험이 전무한 나는 체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두 번째는 물이었다. 첫날 물이 있다는 곳을 향해 24km를 걸었는데 물이 다 말라버려 8km를 더 걸어야 했다. 캘리포니아 레이크 모레나(Lake Morena, 운행 1일째, 운행거리 32.2km)에 도착해 간신히 물을 마셨다. 준비가 너무 없었다. 텐트도 한 번 쳐보지 않았었다. 첫날밤 텐트도 제대로 못 쳐 텐트를 이불처럼 덮고 잠을 잤다.
 
운행 3일째 캘리포니아 라구나 산(Mountain Laguna, 운행거리 67km)에 다다랐을 때 태풍이 불었다. 하이커들은 산행을 멈추고 모텔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나는 나약해질 수 없다는 생각에 산을 계속 올랐다. 그런데 웬걸, 바람이 너무 강해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나뭇가지가 꺾여 날아다니고 안개는 자욱해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추운 날씨에 휴대전화도 꺼졌다. 등골이 오싹했다. 전년도에 피시티 하이커 11명이 죽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운행 나흘째, 날씨는 개었지만 온몸에 낀 먹구름은 개지 않았다. 한 발자국 디딜 때마다 무릎이 아팠다. 무거운 배낭은 어깨를 짓눌렀다. 휴식을 위해 가까운 마을 워너 스프링스(Waner Springs, 운행 6일째, 운행거리 176.3km)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을 발견했다. 무게였다.
 
푹푹 찌는 무더위 속 사막의 저녁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푹푹 찌는 무더위 속 사막의 저녁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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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티에서는 무게는 곧 생명이다. 하이커들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고안한다. 어떤 하이커는 바닥에 까는 매트리스를 반으로 잘라 목에서 엉덩이까지만 깔고 잤다. 어떤 친구는 칫솔 대를 잘라 대가리만 가지고 양치를 한다. 배낭 무게 1g이라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남자들은 속옷도 버리고 노팬티로 걷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나는 80L 가죽 배낭에 여벌 옷, 모자 3개, 소설책 등 쓸데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결국 입고 있던 반바지와 셔츠만 빼고 모든 것을 마을에 버렸다. 나중엔 상비약도 3알만 가지고 다녔다. '슈퍼 미니멀리스트'가 됐다.  
 
주인 잘 못 만나 고생 많이 한 내 다리.
 주인 잘 못 만나 고생 많이 한 내 다리.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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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상해버린 무릎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나아지겠지 하며 계속 절뚝거리며 걸었다. 내리막길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지옥이었다. 몸이 너무 아파 주변 경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행도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매일 진통제를 먹었다. 결국 남부 캘리포니아 아쿠아 둘세(Aqua Dulce, 운행 29일째, 운행거리 731.4km)에서 LA로 들어가 한의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휴식을 하며 피시티를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백패킹 1인용 텐트. 너무 작아 허리도 펴기 힘들 정도였다.
 백패킹 1인용 텐트. 너무 작아 허리도 펴기 힘들 정도였다.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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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부터 전송된 부고, 여행 스승 삼촌의 죽음

"카톡" 
 
그때 어머니가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머니: "종훈아…"
나: "무슨 일이에요?"
어머니: "삼촌이 돌아가셨다."
나: "네!?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왜요!!? 교통사고 나셨어요? 지금 당장 한국으로 갈게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연락을 받은 시각은 오전 8시 30분.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는 오전 11시였다. 택시에 탑승해 공항으로 가는 길에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10시에 공항에 도착해 바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막둥이 삼촌은 41살로 나와 13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장남인 나에게 삼촌은 형 같은 존재였다. 나에게 여행을 가르쳐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삼촌은 초등학생이던 나를 데리고 인천 무의도, 경기도 화성 등을 데리고 다녔다. 지금도 홈페이지 회원 가입을 할 때 패스워드를 찾기 위한 질문인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에서 나는 '무의도'로 늘 답한다. 그런 삼촌이 죽다니. 믿기지 않았다. 버팀목이 무너진 것 같았다.
 
장례식장 흑백 영정사진 앞에 섰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진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나는 삼촌 이야기 한 번 들어줄 시간이 없었던가. 왜 소주 한잔 같이 기울이지 못했나. 내가 원망스러웠다.
 
장례식장에서 술만 마셨다.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삼촌을 납골당에 모시고 난 후 생각했다. '아 정말 이렇게 한국에 있다가는 미쳐버릴 수도 있겠다' 이틀 후 LA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 도착한 지 5일째 되던 날이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피시티, #4300KM, #PCT, #PACIFIC CREST 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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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고 따듯한 햇살과 함께하는 모닝커피를 사랑한다. 스스로의 발전은 있으되 만족하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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