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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신부전증 3기 판정을 받은 가을이는 처방약을 복용하며 꿋꿋하게 지냈다. 하지만 단백질을 제한하는 대신 지방에 의존한 식단 때문에 1년 후 췌장염이 왔다. 신장이 상한 아이들이 겪는 수순이라고 했다. 췌장염은 통증이 심하기로 악명 높다. 점차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줄었고 먹어야 하는 약이 많아졌다.

가을이는 다행히 내가 만든 채소죽을 잘 먹어줬고 매일 즐겁게 산책도 했다. 순간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곧 몸에 근육이 빠져 버틸 힘이 없어지자 배변 실수를 하게 됐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힘든 건 아무리 식이조절을 하고 약을 먹어도 주기적으로 설사를 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그때마다 심하게 탈진하여 오랜 시간 누워 있었다. 속 깊은 가을이는 언제나 미안해 했다.

가을이가 응급실로 가던 날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 나간 것. 내가 너에게 해준 유일한 자랑거리.
▲ 나의 사랑스러운 강아지 이봄가을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 나간 것. 내가 너에게 해준 유일한 자랑거리.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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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과는 가을이 밥을 먹이고 바람을 쏘여준 뒤 미끄러지거나 부딪히지 않게 주변을 정리해 두고 뛰쳐나갔다가 부리나케 돌아와 다시 앞의 순서를 되풀이하는 거였다. 가을이는 때로 배변판에서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거나 엉뚱한 곳에 발톱이 걸려 헉헉대고 있었다. '자꾸 왜 이러지' 하는 가을이에게 괜찮다고, 내가 있으니 얼마든지 괜찮다고 말해줬다.

밥을 넘길 수 있는 양이 점점 줄어 두 숟가락마다 물 한 모금 넘기고 쉬었다가 다시 두 숟가락을 먹였다. 조금씩 자주 먹으니 화장실도 서너 시간마다 갔다. 때로는 그냥 배가 아파서 끙끙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다 나도 지쳐가서 가을이를 끌어안고 많이도 울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가을인 여전히 바깥 활동 좋아하는 정갈한 아이였다. 한줌 허리가 유일한 노화의 증거였을 뿐이다.

2019년 3월, 종합백신을 맞으러 갔을 때만 해도 병 관리를 잘 했다고 칭찬을 들을 정도였다. 가을이는 4월부터 눈에 띄게 체중이 줄었고 고개를 꼿꼿이 들지 못했다. 혈액 검사를 하니 신장, 심장, 간의 수치가 다 위험한 상태였다. 수액을 맞는 통원치료를 시작했다. 이 무렵 가을이가 평소와 달리 무릎강아지가 되었다.

원래는 병원 의자에 각자 앉아 대기했는데 그 즈음엔 내게 꼭 붙어 있어 나는 마냥 흐뭇했다. 치료 6일째, 신장 수치는 돌아왔지만 아직 간의 상태가 불안했다. 그 와중에도 스스로 일어나 물을 마시고 볼일을 보는 아이가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른다. 이대로 천년이고 만년이고 함께 살자고 얘기했다.

이튿날 새벽, 갑자기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가을이가 온몸을 떨었다. 아이를 꽉 안고 이름을 불렀지만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더 지체하지 말고 응급실로 가란다. MRI를 찍을 수 있는 24시간 병원을 찾았다. 이동 중에 발작은 멎었지만 안구진탕의 기미가 보였다.

"신부전증, 췌장염이 있었고 어제 간수치를 떨어트리는 약을 먹었어요!"

오전 6시 30분. 간호사들이 축 늘어진 가을이를 받아 안고 치료실로 달려갔다. 16살, 허리디스크, 방광염, 결장염, 심장사상충 치료로 인한 심부전... 다른 이력은 차트에 써서 제출했다. 가을이는 여린 팔에 카테터를 꽂고 항경련제를 맞았다. 원장의사가 출근할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전 9시. 의사는 지금까지의 비용이 얼마가 나왔고 지금부터 얼마가 나올 거라며 치료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하루에 약 백만 원 꼴로 청구된단다. 가녀린 숨을 붙들고 있는, 언제 발작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 애를 이제 와 다른 병원에 데려갈 순 없었다. 겁이 많은 아이니 각별히 신경써 달라고 당부 또 당부했다. 그날부터 4일간, 내 평생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흐른다.

가을이의 마지막 "정말 멋진 강아지였어"

중환자실에 들어간 가을이와는 하루 10분의 면회가 허용됐다. 그리고 기존 병원에서 검진 결과를 다 받았음에도 수십 가지 검사를 처음부터 다시, 매일 해야 한다고 했다. 가을이는 지쳐 있다. 가장 싫어하는 일이 사지를 잡아당겨 배를 눌러대는 초음파 촬영이다. 주사 바늘에 하도 찔려서 혈관이 숨어버린 탓에 목에서 피를 뽑는다.

그때마다 구슬프게 운다. 허리가 아픈 애를 억지로 붙잡아 차가운 판 위에 늘어트려 엑스선을 찍는 과정은 또 어떤가. 치료를 위한 거라지만 가을이에겐 끔찍한 과정일 뿐이다. 원장에게 호소했다.

가을이가 단 하루만이라도 편히 쉬게 해 달라고. 담당의는 호통 치듯 거절했다. 검사와 치료를 병행하든지 아니면 데리고 가라고 한다. 병원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의미가 없다면서. 의사에게 가을이와 나의 입장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저렇게 검사만 받다가 숨이 멎을 수도 있잖아요."
"당연히 그럴 수 있죠."
"노령인데다 건강한 장기도 없는데… 치료 후 희망은 있나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죠."


이런 식이었다. 빠져나갈 구멍 만들기에 급급한 무책임한 답변. 이곳은 전투적으로 치료하는 곳이고 여기에 왔으면 따라야 한다는, 약해질 대로 약해진 보호자의 마음을 이용한 협박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가을이에게 마음 속으로 말을 걸고 또 걸며 병원에 머물렀다. 집에 갔다가 혹시 가을이 상태가 안 좋아질까 봐, 그땐 와 봐야 늦을 테니 돌아갈 수 없었다. 의사는 나를 못 본 척 지나쳤다.

다시 그 새벽으로 돌아가, W병원이 아니라 A나 B병원으로 갔다면 가을이는 덜 힘들지 않았을까. 아이를 물건 다루듯, 공장을 운영하듯 소란스럽고 삭막했던 이 병원이 아니라 다른 곳을 선택했다면 가을이와 나의 마지막은 조금이라도 평화롭지 않았을까. 나는 평생 이 질문에 시달릴 것이다.

의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가을이의 검사를 강행하는 건 무의미하고 지나친 처사라고 입을 모았다. 4일째, 가을이를 집에서 돌보기로 결심했다. 다른 의사가 인수인계 받아 퇴원 수속을 했다. 치료실에서 나와 숨을 헐떡이는 가을이에게 집에 가는 거라고 알려줬다.

지독히 쇠진한 모습이지만 천천히 안도의 기색이 돌아왔다. 비강에 연결한 호스로 약과 유동식을 어떻게 먹이는지 배웠다. 4시간마다 물, 밥, 약을 먹이며 심박수를 확인해야 했다. 2019년 5월 1일 오후 2시. 가을이가 집에 왔다. 산책하기 좋은 따사로운 날이었다.

미리 대여해 놓은 산소방에 가을이를 뉘였다. 익숙한 냄새에 편안해진 표정이다. 전달받은 돌봄 규칙에 따라 일정표를 짰다. 매 시각 가을이의 호흡과 구토 여부를 확인해야 하므로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인 셋이 돕겠다고 했다. 서로 가능한 시간을 정하면서 틈틈이 가을이를 살폈다.

가을이는 손발에 경련이 오기도 하고 받쳐준 방석에 침을 흘리기도 했다. 더워하는 것 같기도 추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빠트리지 않고 다 기록했다. 산소를 만들어내는 기계의 열기와 진동이 생각보다 무척 커서 다가올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딱 한 시간만 자야겠어서 엄마에게 부탁하고 거실로 나왔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만큼 피로했다. 십분 쯤 눈을 붙였을까. 산소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가을이가 반쯤 몸을 일으킨 채 입을 벌려 숨을 가쁘게 쉬고 있다. 산소를 가장 세게 틀어 코에 대줘도 역부족이다. 약 기운이 떨어져 아픈 건가 싶어 배운 대로 호스에 넣어줬다. 반창고 붙인 팔이 조여서 불편한가 싶어 그것도 제거했다.

자세가 불편해서인지도 몰라 방향도 바꿔줬다. 아니다, 모두 아니다. 가을이가 다리에 힘을 빼며 옆으로 누웠다. 분홍색 혀가 하얗게 변해 갔다. 발과 입의 움직임이 멈추고 서서히 눈이 먼 곳을 향했다. 빠르게 뛰던 작은 심장은 새가 날개를 접듯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가을이가 완전히 가버리기 전에, 넌 정말 멋진 강아지라고, 나와 살아줘서 고맙다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고, 큰 소리로 말해줬다. 밤 10시. 집에 온 지 7시간만이었다.

방뇨를 한 가을의 몸을 닦고 한 번 꼭 안아줬다. 아팠던 아이는 강직이 빨리 오기에 얼른 수의를 입히고 수건을 깐 관에 뉘였다. 비강 호스를 제거할 수 없었고 눈을 감기지도 못했다. 식어버린 가을이를 바라보다 곁에 누웠다. 잠이 너무 부족했다. 엄마는 방문 밖에서 훌쩍였다. 스밀라(고양이)도 어쩐 일인지 방에 들어오질 않았다. 자려고 노력했지만 이상하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코에도 목에도 무언가 막힌 것처럼 갑갑하고 몸 전체가 딱딱하게 경직됐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 옷을 껴입다가 복받치듯 울음이 터졌다. 내장을 찢어내는 고통이 치밀고 올라왔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온 얼굴을 적셨다. 내가 가을이에게 얼마나 형편없는 보호자였는지 마구 떠올랐다. 무능력한 나 때문에 저애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절절히 깨달았다. 비명 지르듯 울고 또 울었다.
 
가을이가 떠난 뒤 온갖 여린 것들만 봐도 눈물이 난다.
▲ 가을이 마지막 모습 가을이가 떠난 뒤 온갖 여린 것들만 봐도 눈물이 난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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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잠이 들었다가 4시 즈음 깼다. 이것저것을 만지작거리다 가을이가 밥을 받아먹던 숟가락을 붙잡고 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엄마는 내 등을 쓸어주며 너무 슬퍼하면 가을이가 떠나는 길에 자꾸만 뒤돌아본다고 했다. 가을이를 끌어안고 싶었지만 그애는 혼자서 냉동고에라도 들어 있는 듯 몸서리쳐지게 차가웠다.

가을이를 닮은 흰 꽃을 넣어주고 소나무관의 뚜껑을 덮은 뒤 보자기로 감쌌다. 생전에 다니던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다. 동네 어느 한 구석도 이 아이와 안 간 곳이 없다. 찬란한 햇살이 비치고 꽃과 나무가 싱그러운데 가을이만 세상에 없다.

이제 그애를 만질 수 없다. 볼 수도 없다. 가을이는 없다. 고개를 떨구고 아무렇게나 몸을 구겨 잠든 가을이의 모습을 나는 기억해야 할까 잊어야 할까. 털이 거의 빠진 다리와 앙상해진 엉덩이에 변을 묻힌 이 애의 냄새를 나는 잊어야 할까 기억해야 할까. 비틀거리면서도 졸졸 따라다니던 또각또각 발소리를 나는 기억해야 할까 잊어야 할까. 두 눈에 어린 물기는. 목욕이 싫다고 발버둥 치던 고집은. 그러나 인형처럼 가벼워져 버린 몸무게는.

동물이 존중받는 세상을 바라며

나의 다음 세대들에게는 이런 사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 반려동물 입양시 보험가입비나 가족탄생 축하금, 필수 용품을 지원해주는 나라. 입양한 아이가 노령일 경우 건강 검진비나 수술비를 보조해주고, 먼 훗날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정중한 위로와 함께 마음을 담은 조의금을 전하는 세상. 물론 펫숍이 아닌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정당한 절차를 따른 가정에만 입양을 허가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입양한 이와 입양된 생명은 지자체에 등록되어 유기할 수 없도록 하며 학대에 대한 처벌은 무겁게 실행되어야 한다. 또한 생명을 유희로 즐기려는 태도가 아닌 그들을 아끼고 책임져야 한다는 교육이 선행돼야 하겠다. 대한민국 인구의 1/5이 반려동물과 살고 있다. 비인간동물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인간도 행복할 수 없다.

입양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아이가 빠르게 늙어가는 과정을 마주해야 한다. 그애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진다. 아이가 편안한 노후를 맞도록 최대한 애써야 한다. 아이의 목숨이 다 했을 땐 의연하게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애가 느껴져 당신은 텅 빈 집안을 서성일 것이다.

가끔 그애가 건네는 다정한 말이 들리기도 한다. 어쨌든 그애는 죽었고 당신은 남은 생을 마저 살아내야 한다. 이렇게 가혹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입양한다. 왜? 선한 눈동자, 보드라운 감촉, 마음으로 전해지는 무수한 이야기들. 원망도 짜증도 모르고 그저 기다리고 이해해주는 유일한 존재. 나를 살게 하고 웃게 만드는 아이를 안아볼 수만 있다면 무엇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태어나 보호소에 버려져 10년을 살다 나에게 온 이봄가을. 6년 2개월 3주 동안 사랑을 가르쳐주고 떠났다. 내가 이 상실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유기견 입양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이봄가을이를 아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태그:#이봄가을, #유기견, #무지개다리, #강아지별, #열여섯살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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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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