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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괜찮게 지내고 있지만, 한 번씩 괜찮지 않은 날들이 있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어쩐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만 두기를 반복한다. 괜히 잘 지내고 있는 사람에게 나의 우울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보고 싶은 얼굴들을 한쪽으로 조심스레 밀어놓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잠을 자는 것, 요리를 하는 것, 그리고 책 속에 숨는 것. 그중에서도 나는 책 속에 숨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기분이 심하게 가라앉는 날에는 동물과 식물에 관한 책이 특효약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순한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식물의 위로>도 그런 이유로 읽게 되었다.
 
 <식물의 위로>, 박원순 지음, 행성B
 <식물의 위로>, 박원순 지음, 행성B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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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위로>는 다정한 책이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꼭 맞춤한 식물 처방전이라고나 할까. 발음하기 어려운 식물들의 이름과 가보지 못한 나라의 이름을 읽으며 왠지 모를 위로를 받는 날들이 있다. 삽화가 더 풍부하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글을 읽으며 모양을 상상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참에 식물들의 이름을 한 번 더 적으며 기억해 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박원순은 서울대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기획자로 일하다가, 꽃과 정원, 자연이 좋아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여미지식물원에서 가드닝 실무를 익혔다.

체계적인 가드닝 수업을 받고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히는 미국 롱우드가든에서 국제 가드너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그 후 2년을 더 머물며 델라웨어대학교 롱우드 대학원에서 대중 원예를 전공했다. 현재는 에버랜드에서 가드너로 재직하며 꽃 축제를 기획하고 연출한다. 저서로 <나는 가드너입니다>가 있다.

나무와 꽃을 생각하면 나는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어렸을 적 우리 집 마당에는 나무와 꽃들이 많았다. 동생과 함께 목련나무 아래 평상에서 인형놀이를 하던 기억, 골목마다 특이한 모양으로 피어있던 맨드라미, 친구들과 깔깔대며 샐비어 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던 기억들.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아름다운 장면들이다.

나는 지금도 목련나무를 좋아한다. 이른 봄, 하얀 꽃이 탐스럽게 핀 목련나무를 보면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오르며 내 마음도 환해진다. 한편, 어릴 때 그렇게 많이 보이던 맨드라미는 어찌 된 일인지 보기 힘들다.

그 많던 맨드라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할머니 집에 있던 담요를 닮아 포근한 느낌이 났던 맨드라미가 문득 보고 싶어진다. 나의 딸들에게도 이런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아파트에 사니 그게 참 아쉽다.

아파트에서도 화분에 식물들을 키울 순 있지만, 우리 집에는 식물이 하나도 없다. 식물을 키우지 않는 것에 대한 나름의 변명을 해보자면 이렇다. 나는 식물들은 밖에서 자라는 것을 좋아하지 답답한 집에서 살고 싶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집에서 키우는 건 이기적이고 식물에게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변명이고, 더 중요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나도 몇 번인가 방울토마토나 다육 식물을 집에 들여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가져오거나, 선물 받은 경우다. 그때마다 매번 키우는 데 실패했다. 죽이는 게 더 힘들다는 선인장조차도 우리 집에만 오면 시름 시름 앓다가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그러니까 내가 바로 그 악명 높은 '식물 저승사자'였던 것이다.
 
어떤 환경에 두어도 둔감한 식물이 있는가 하면 아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한 식물이 있다. 실내에서 키우는 반려 식물들도 서로 다른 군상들이 모인 커뮤니티다. 원산지도 다르고 자라 온 환경도 다르다. 종류가 다양할수록 그 차이는 더 크다. 소리를 내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이 식물들에게 사람은 거의 신과 다름없는 존재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이 식물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밥과 물을 책임지는 사람,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치료해 주고 병해충을 예방해 주는 의사 역할, 제때 꽃이 피고 번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산파 역할, 건강하게 살기 힘든 곳에 놓인 식물들의 고충을 파악하고 환경을 개선해 주려고 노력하는 주민센터의 민원 담당 공무원 역할 등을 성실하게 해 주어야 한다. (188쪽)

저자의 말에 따르면 나는 그냥 게으르고 무관심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꽃은 그냥 물만 주고 햇빛만 받게 해주면 알아서 잘 자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식물을 키우는 것도 공부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긴, 이 세상에 알아서 잘 자라는 것이 어디 있는가. 동물이든 식물이든 다 관심과 애정으로 돌봐줘야 잘 자라주는 거지. 그런 간단한 사실조차도 모른 채 나는 식물을 못 키우는 사람이라느니, 아파트에서는 식물이 못 산다느니 하는 핑계만 대고 있었으니 나도 참 한심한 인간이다.
 
나는 선인장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개중 좋아하는 종류가 몇 가지 있다. 백도선선인장이 그중 하나다. 처음 이 식물을 키울 때 겨울 동안 물도 안 주고 추운 곳에 놓아두니 회색빛으로 말라 가며 상태가 나빠졌다. 봄에 온도가 올라갈 때 다시 물을 주니 때깔도 좋아지고 새싹이 나기 시작했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어느 정도 믿음을 갖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꾸준히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지켜보면서 너무 늦지 않게 제때 필요한 걸 제공해 주고, 이런 경험을 통해 깨닫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 식물의 생리와 원래 자라던 환경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135쪽)

책에는 저자가 식물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곳곳에 묻어 있다. 그 사랑스러운 마음이 읽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저자가 다정하게 소개해주는 식물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는 동안 캄캄했던 내 마음도 환한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그중에 집에 데려와 키워보고 싶은 식물들의 이름도 몇 개 적어두었다. 접란과 보석란, 염자, 그리고 영화 <레옹>에서 마틸다가 들고 다녔던 화분 속 식물 아글레오나마 '실버 퀸'. 모두 키우기가 까다롭지 않아 초보자에게 추천하는 식물들이라고 한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꽃집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아이들도 분명 좋아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꽃에 물을 주고, 꽃 이름을 알려주는 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저자도 이 책에서 미국에서 경험한 식물 체험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식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씨앗을 헤아리고 식물의 성장을 측정하며, 수학적 개념뿐 아니라 정원 속 식물의 다양한 모양을 찾아내는 기하학, 꽃과 잎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미술 분야를 자연스레 접한다. 또 즉각적인 자극과 만족을 원하는 아이들이 식물을 기르며 인내와 책임감을 알게 된다. 계획을 짜고 문제를 해결하는 법도 배운다. 국내에도 수년 전부터 식물 교육 프로그램이 등장했는데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만족도가 꽤 높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초록 식물을 좋아하고, 그것을 기르는 일을 좋아한다. 또 그러한 활동을 통해 신체와 정서를 전인적으로 발달시키고,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 사람들의 관계를 살필 줄 알게 되니 이보다 더 좋은 교육이 있을까 싶다. (193~194쪽)

우울한 마음을 달래보려 읽기 시작한 책이 이렇게 나의 마음을 밝히고, 나의 아이들에게까지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간다. 초록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깨끗한 산소를 내뿜는다. 더불어 나의 마음속 어두운 기운을 가져가 밝은 에너지로 돌려주기도 한다. 그러니 언제나 자연에게서 위로를 구할 것. 초록 식물은 언제나 옳다.

식물의 위로 - 매일 조금씩 마음이 자라는 반려식물 이야기

박원순 (지은이), 행성B(행성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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