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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30일 오후 12시 07분]

비행기 안에서 영화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출/귀국 전에 기내 영화 목록을 확인하기도 한다. 유난히도 파랗던 하늘을 비행하던 어느 날, 나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박열>이었다. 나는 영화의 여운을 잊지 못해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사건에 대한 문헌 조사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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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박열 .
ⓒ 영화진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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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은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진이 일어난 1일 저녁부터, "조선인이 폭탄을 투척해 도쿄를 습격하려고 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서 일본인을 죽이려고 한다" 등 괴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는 2일 밤에 긴급 칙령에 따라 계엄령 '조선인 폭동 단속'을 선포한다.

군대와 경찰은 계엄령 아래 움직이기 시작했고, 5일에 가메이도(亀井戸) 경찰서는 선동자로서 조선인 6명과 일본인 사회주의자를 구속하였다. 당시, 가메이도 경찰서는 조선인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가메이도 학살 사건'이라 부르기도 한다. <매일신보>는 위와 같은 괴소문의 내용을 '강도, 능욕, 방화-불량 조선인의 폭동은 이와 같음'(1923.09.10)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였다.

일본 정부의 잘못된 책동을 믿은 일본인들은 자경단(自警團)을 결성하여, 조선인을 폭행/살상하기 시작한다. 9월 1일 지진 당일, 자경단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은 500명이 넘는다. 심지어 1일부터 6일 사이에 학살된 조선인의 수는 6,000여 명에 이르며, 지진으로 죽은 사람보다 학살로 인해 죽인 사람이 더 많았다. 또한, 계엄령에 의해 군대와 경찰에게 구속된 도쿄 부근 한인만 1만 5천 명에 달했다.

일본 정부가 자경단의 행동을 제재시키게 된 것은 자경단의 만행이 외국 언론에 보도되어 비난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인 대학살 사건'에 대한 피해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군대와 경찰 그리고 자경단원도 증거불충분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신한민보>는 당시의 사건을 1923년 9월부터 1924년 7월까지 약 1년간에 걸쳐서 '한인 1만 5천 명을 가두어'(1923.09.13), '한인은 다 죽였다고 말한다'(1923.11,08), '한인 학살 사건의 진상'(1924.06.12/06.19/06.26/07.03) 등의 기사로 상세히 보도하였다.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세워진 도쿄 도립 요코아미쵸 공원

문헌 조사 중, 나는 도쿄에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사건에 관한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세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석 있는 곳은 도쿄 도립 공원인 요코아미쵸 공원(横綱町公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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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아미쵸 공원 정문 .
ⓒ 심오선(snap the5/Right4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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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아미쵸 공원은 역사 공원으로도 불리는 곳으로 관동 대지진으로 죽은 진재(震災) 희생자와 도쿄 대공습으로 죽은 전재(戰災) 희생자의 유골이 위령당(慰霊堂)에 안치되어 있다. 도쿄 대공습은 1945년 3월 10일 미국군이 도쿄에 대량의 소이탄을 투하하여 약 15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요코아미쵸 공원에는 꽃으로 장식된 화려한 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도쿄 대공습 희생자 추도비'이다.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는 '위령당'과 '도쿄 대공습 희생자 추도비' 사이에 검은 돌로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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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아미쵸 공원 위령당 .
ⓒ 심오선(snap the5/Right4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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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공습 희생자 추도 및 평화 기원 비 .
ⓒ 심오선(snap the5/Right4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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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
ⓒ 심오선(snap the5/Right4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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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잊히고 있는 '조선인 대학살 사건'

나는 요코아미쵸 공원에 답사하러 갈 때마다, 공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조선인 대학살 사건'이 역사 속에서 잊히고 있음을 실감했다.

요코아미쵸 공원은 도쿄 내의 초등학교에서 매년 견학을 오는 곳이다. 학교가 아니더라도 역사에 관심 있는 단체에서 견학을 신청하여 방문하기도 한다. 공원 내에는 부흥기념관(復興記念館)이라는 전시관이 있다. 견학자들은 부흥기념관에 있는 사진과 유물을 보며 역사의 아픔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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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흥기념관 .
ⓒ 심오선(snap the5/Right4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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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기념관에는 '유언비어에 의한 치안 악화(流言飛語による治安の悪化)'라는 제목으로 '조선인 대학살'에 관한 내용이 적힌 게시물이 하나있다. 그러나 역사문화사의 설명은 관동 대지진과 도쿄 대공습을 중심으로 다루어지며, '조선인 대학살 사건'은 무심히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진재(震災)와 전재(戰災)만 언급하고 인재(人災)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었다. 때문에, 일본인 견학자들은 자신들이 피해자였던 역사만 배우고 갈 뿐, 가해자였던 역사는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돌아간다. 우리가 늘 분노하는 '일본의 피해자 행세'가 여기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일본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우리의 태도가 그동안 너무나 무심했다. 나는 수차례 답사하는 동안, 공원에서 단 한 명의 한국인도 만나지 못했다. 일본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의 무심함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에서 일본은 '조선인'에, 한국은 '학살'에

공원 한쪽에 세워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는 '1923년 9월에 발생한 관동대지진의 혼란 속에서 잘못된 책동과 유언비어 때문에 6천여 명의 조선인이 귀한 생명을 빼앗겼습니다(1923年9月発生した関東大震災の混乱のなかで、あやまった策動と流言蜚語のため6千余名にのぼる朝鮮人が尊い生命を奪われました)'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요코아미쵸에 방문하는 일본인은 '당시에는 도쿄에 한국인이 많이 살았으니, 지진으로 죽은 한국인도 많았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라는 긴 단어에서 일본은 '조선인'에, 한국은 '학살'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 관광국(JNTO)의 통계에 의하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2015년에는 4백만 명, 2016년에는 5백만 명, 2017・2018년에는 7백만 명이 넘었다. 오직 관광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역사가 숨 쉬는 곳에는 침묵만 가득하다. 우리의 침묵은 일본이 원하는 대로 역사의 한 구절이 소멸되어 가도록 방치해 버렸다.

당신의 수줍은 관심으로 우리의 역사가 우아해지길

요코아미쵸 공원은 JR료고쿠 역(両国駅) 서쪽 출구에서 도보 10분, 도에이선 료고쿠 역(都営線 両国駅) A1 출구에서 도보 2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아키하바라, 신주쿠, 이케부쿠로와 같이 한국인에게 유명한 주요 관광지와의 거리는 30분 이내로, 일본 여행에서 단 1시간만 시간을 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이다.

요코아미쵸 공원은 24시간 무료로 개방되며,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는 야외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편한 시간에 추도할 수 있다. 단, 위령당, 부흥기념관, 위령협회 사무소는 평일 09:00~16:30까지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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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의 헌화 작약 .
ⓒ 심오선(snap the5/Right4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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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온 대지를 감싸 안은 초여름. 나는 작약꽃 한 송이를 사서 요코아미쵸 공원을 방문했다. 일본에서는 작약을 '우아한 꽃'이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작약의 꽃말이 '수줍음'이라고 한다. 지난 세월이 비참하고 원통하여 우리의 역사가 초라했던 것이 아니고, 우리의 무관심이 지난 세월을 초라하게 만든 듯하여 가슴이 아려왔다. 당신의 수줍은 관심으로 우리의 역사가 우아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양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역사, #김보예, #도쿄, #요코아미쵸공원, #조선인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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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여행에서 1시간만 마음을 써 주세요” 일본의 유명 관광지와 멀지 않은 곳에 우리의 아픈 역사가 깃든 장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보 부족과 무관심으로 추도 받아야 할 장소에는 인적이 드뭅니다. 많은 분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져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 교육학 박사. 고려대/국민대 강사. 학교/학교메일을 통해 정식으로 연락주세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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