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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초입에 들어서자 지난해 한반도를 강타한 폭염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난해의 살인적인 더위는 가히 재난이라 칭할 수 있었습니다. 약자에게 재난은 더욱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작년 폭염의 기억과 더불어 지난 강원산불 당시 기본적인 수어 통역조차 지원되지 않았던 재난방송의 기억을 떠올리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이번 월간평등UP 주제를 '재난과 차별'로 잡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생존자의 권리'에 대한 글입니다. 

재난과 차별을 주제로 한 차제연의 지난 기사 <장애인은 재난에서 제외? 누구에게나 '살아나올 권리'가 있다 http://omn.kr/1js9f>는 '살아나올 권리'를 위해 고려되어야 할 점들을 이야기하였다. 재난참사를 마주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고 대피하는 것, 그 과정에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은 중요한 원칙이다. 

그런데 그렇게 재난참사 현장에서 빠져나오면 그것만으로 상황이 종료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재난참사가 발생한 당시에는 몸을 지키고 대피해야 한다는 목표가 모든 것을 넘어 우선이 된다. 그러나 일단 살아나온 뒤에 재난 생존자로서 마주치는 상황은 각자가 놓인 위치에 따라 상당히 복잡해진다. 누군가는 심신을 다쳐 치료를 받아야 하고, 누군가는 거주지를 잃어 임시거주 시설에서 장기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재난참사가 지나간 후 일상으로 다시 회복하기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도 재난 생존자의 이러한 권리들은 오해와 무지 속에서 무시당하곤 한다. 때로는 '살아남은 것만으로 고마워해라'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 등과 같은 말들을 통해 생존자들의 권리 요구를 무리한 투정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나아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차별이 이러한 생존자들의 권리행사를 가로막는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재난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지 참사 현장을 빠져나온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재난 직후 신체적, 심리적 안정을 누리고, 임시대피시설을 이용하고 개별적 피해에 따른 지원을 받아 회복하는 전 과정이 재난 생존자의 존엄과 평등을 지키기 위해 요구된다. 재난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이 겪는 하나의 경험만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경험하고 회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는 주로 생존자의 권리로서 요구되는 대피시설에서 안정을 누릴 권리, 회복을 누릴 권리를 차별 없이 보장받기 위한 사회적 조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피와 안정을 취할 권리는 모두에게 주어지는가 

재난현장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임시대피시설에서 거주하게 된다. 이러한 거주는 일시적일 수도 있고, 주거지가 훼손된 경우 장기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피시설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열린 공간인가? 

1) 모두를 위한 대피시설 : 유니버셜 디자인 

2017년 12월 장애인권익옹호활동단 삼별초와 경남아자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창원시 내 재난대피소 315곳에 대해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지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315곳 중 모든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대피소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그중 절반인 156곳이 경사로가 없거나 문제가 있어 휠체어 접근이 어려웠으며, 거의 대다수인 302곳에는 점자블록이 없어 시각 장애인의 접근을 제한했다. 역시나 대다수인 307곳에 청각장애인이 인지할 수 있는 시각 경보기가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전 기고 글에서 장애인들이 살아나올 권리에 있어 차별을 받고 있음을 얘기했는데, 살아나온 이후 대피할 권리에서도 장애인들은 차별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규정의 미비에서도 오는 점이 크다. 현재 대피소와 같은 임시주거시설에 대해서는 재난구호법 제4조의2를 기반으로 한 '재해구호계획 수립지침'에서 그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제시되는 내용은 일반적인 원칙 정도에 불과하여 장애인, 노령자, 아동, 이주민 등 재난대피 과정에서 배제 받기 쉬운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구체적 지침이 되기 어렵다.

이에 비해 미국의 경우 임시주거시설 관련 주요지침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을 고려한 구체적인 지침을 두고 있다. 2018년 발행된 한국주거학회논문집의 '재난약자 중심의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이 적용된 미국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공간계획 관련 지침분석' 연구에 따르면 관련 지침들은 진입공간, 주차공간, 위생 공간 등 각 공간에서 유니버셜 디자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설계 기준을 두고 있다. 가령 출입구에는 목발, 지팡이, 스쿠터,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출입문이 있어야 한다. 화장실에서도 휠체어, 스쿠터의 이동반경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유아를 위한 임시위탁과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을 위한 특수공간에 대한 지침도 마련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지침이 모든 사용자를 위한 일반적 내용과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아동 등 소위 '재난약자'를 위한 내용이 모두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반영된 대피소들을 만날 수 있을까. 다행히 한국 정부도 대피시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2017년 '실내구호소 운영 지침'을 별도로 제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아직 그 구체적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2) 재난 앞에 배제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재난 피해를 겪은 후 살아남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장애인만이 아니다. 이성애 중심주의와 성별 이분법에 의해 제도적, 사회적 차별을 받는 성소수자 역시 이러한 소외를 겪는다.

영화 <불온한 당신>을 보면 동일본 대지진 후 커밍아웃을 하고 결혼식을 올린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이 커밍아웃을 한 이유는 '살기 위해'였다. 대지진 이후 부부관계를 맺지 않는 동성 커플들이 피난 과정에서 뿔뿔이 흩어지고 서로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게 되는 모습들에서 생존의 위기를 느껴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재난을 겪고 대피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들은 여러 가지 차별적 상황을 마주한다. 동성 커플이 법률혼은 물론 사실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률상으로는 남남인 이들은 앞서의 논과 텐의 사례처럼 서로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다. 법률상 성별과 성별 정체성 및 사회적 성별이 다른 트랜스젠더 역시 어려움을 겪는다. 성별로 나누어진 대피공간에서 성별 정체성에 맞지 않는 공간이 배정되거나 적절한 구호물품을 받지 못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일본 구마모토 시민국 남녀공동참획과에서 만든 매뉴얼은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피소에서의 성소수자 지원을 위한 구체적 지침을 담고 있다. 매뉴얼은 재난 시에는 누구나가 피해자이기에 자칫 성소수자의 존재가 잊힐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성소수자 생존자가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 비추어 한국은 어떠할까. 아직 한국에서 성소수자들이 재난과 관련해 겪는 어려움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발생하지 않은 것이 아닌 우리가 아직 모를 뿐이다.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사회적 고민들이 이루어질 때 그동안 몰랐던 또 다른 재난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회복할 권리를 가로막는 차별
 

한편 재난현장에서 생존하고 안전히 대피하였다고 해도 재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사실 재난참사를 겪은 이후 이전의 상태로 완전히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난의 피해를 입고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은 이후로도 삶을 이어나가지만, 이는 그날의 기억을 잊고 아무 일 없이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은 아니다. 재난참사는 필연적으로 생존자 본인은 물론 그를 둘러싼 모든 관계, 나아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킨다. 그렇기에 재난에서의 회복 과정은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재난을 통해 회복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이 이러한 회복 과정을 가로막는다. 가령 2006년 인도양에서 지진해일이 발생한 이후 인도에서는 하층민 지역이 사는 지역의 경우 다른 지역보다 복구 작업이 늦게 이루어졌다. 인도 사회에서의 오래된 신분상 차별이 재난참사라는 비극 앞에서도 재현된 것이다. 한편 똑같은 지원을 받더라도 사회적 낙인에 의해 특정 집단에 왜곡된 시선이 가해지기도 한다. 가령 2012년 미국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를 겪은 후, 똑같이 식료품을 찾아 들고 가는 백인과 흑인의 모습을 보도하면서 언론들은 흑인들이 식료품을 '약탈'해 가는 모습이라고 보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회적 차별은 재난참사를 겪는 피해자와 유가족의 회복 과정을 가로막기도 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교사 중 고 김초원·이지혜 교사는 3년이 넘도록 순직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2017년에야 비로소 공무원연금법 시행령이 개정되며 이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기간제 교사로서 받는 차별은 끝나지 않았다. 경기도 교육청이 맞춤형 복지제도를 운영하면서 정규직 교사와는 달리 기간제 교사에는 생명, 상해 보험 가입을 시켜주지 않았기에 보험금을 받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고 김초원 교사의 유가족은 경기도 교육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 1월 패소했다. 세월호 참사 후 5년 아직도 차별은 유가족의 회복할 권리를 가로막고 있다.

재난 이후의 삶이 존엄과 평등해지기 위해

2013년 호우피해 주민 148명을 대상으로 재난 발생 이후의 장기적 심리적 증상을 조사한 연구 '자연재난 생존자들의 장기적인 심리적 증상들에 대한 예측요인으로서 외상 당시의 해리, 외상 후 부정적 신념 및 사회적 지지 부족'에 따르면, 재난 생존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 불안 증상, 우울 증상이 개인의 심리적 상태만이 아닌 사회경제적 지위, 배우자와의 동거 여부, 사회적 지지와 같은 사회적 조건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참사라는 대규모의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사건 이후의 삶은 각자가 처한 삶의 조건과 사회적 환경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재난은 결국은 사회적, 국가적 문제이다. 재난으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을지, 어떻게 대피하고 안정을 취할지,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어떻게 회복할지는 모두 사회가 재난참사 피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와 연관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4월 인권운동사랑방이 발간한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가 어떻게 보장되는가는 그 사회가 재난참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하는지와 맞닿아있다." 

누구나 존엄과 평등한 삶을 누릴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며 이는 재난참사라는 사건 앞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재난 이후의 삶이 비록 이전과는 같을 수 없겠지만 그 삶이 또다시 차별과 낙인 속에서 왜곡되지 않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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